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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이후 무엇을 계획하고 어떤 일상을 꿈꿨나요?
은퇴하면 주부의 삶에 충실해보고 싶었어요. 특히 사 먹는 음식이 지겨워서 매 끼니 건강하게 집밥을 차려 먹어봐야겠다 마음먹었죠. 해보니 적성에 잘 맞더라고요. 특별한 일이 없을 땐 길 건너 사는 네 살 손녀 등·하원시키는 것이 가장 주된 일상이에요. 그 사이사이 주 1회씩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스피치와 설득 커뮤니케이션 과목을 강의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손녀를 챙기다 보니 체력이 관건이더라고요. 그래서 걷기를 시작했어요. 요즘은 서울 도심 구석구석을 두 발로 걸으며 체력도 다지고 일상에 활력도 충전하고 있어요.
걷기는 언제든 손쉽게 할 수 있다 보니 그 효과와 재미를 간과하기 쉬운 것 같아요.
저도 남들 하는, 요즘 좋다고 하는 운동은 다 시도해본 것 같아요. 골프만 해도 구력이 20년이나 되어가는데 여전히 ‘명랑 골프’ 수준으로 실력이 늘지 않더라고요. 운동에는 영 소질이 없어요. 헬스장에 가서 러닝 머신 위에서 걸어보고, 한동안 수영도 열심히 배워봤고, 최근 6개월 동안에는 요가도 해봤는데 도리어 몸살이 나서 혼났어요. 걷기는 저 같은 운동치도 특별한 기술 없이 충분히 즐기면서 할 수 있잖아요.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실내 운동을 꾸준히 하기 힘들었는데, 밖으로 나가 걷는 건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그 덕을 톡톡히 봤죠.
의지만으로 지속적인 행동을 이끌어내긴 힘든데, 어떻게 걸어야 흥미를 붙일 수 있을까요?
정해진 시간에 일정한 코스를 매일 규칙적으로 걷기보다 서울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골목골목을 여행하듯 걷는 편이에요. 집이 마포인데 가까운 마트 대신 일부러 조금 멀리 있는 망원시장까지 걸어가거나, 어느 날엔 경의선숲길을 따라 걷고, 또 어느 날엔 한강변을 걷는 식으로 말이죠. 목적지가 같아도 그날그날 기분과 날씨에 따라 마음 가는 대로 코스를 다르게 걷죠.
그렇게 걸으면서 계절이 바뀌는 풍경과 세상 돌아가는 모습,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 등 길 위에 펼쳐지는 변화무쌍한 하루를 눈에 담아요. 보통 일상은 반복의 연속일 수밖에 없잖아요. 당연히 지루하죠. 그런데 마치 탐험하듯 새로운 길을 찾아 걷다 보면 늘 새로운 자극이 생기고, 일상에도 활력이 되더라구요.
중장년의 걷기는 단순히 운동 이상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기분 전환을 위해 늘 신던 운동화 차림으로 북한산을 다녀왔는데 확실히 이전과 달랐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오르다 보니 점점 좋은 풍경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다 중턱까지 훌쩍 다녀오게 됐죠. 전에는 장비 없이 가기에는 힘들던 코스인데, 가뿐히 오르게 되더라고요. 노년의 걷기는 곧 자신감으로 직결되는 것 같아요.
친구들을 보면 뭘 하나 하려고 해도 허리, 무릎, 고관절 등 여기저기가 아파서 못 하게 되는 것이 하나둘 생기는 거예요. 순발력이 떨어지고, 균형감각도 예전만 못하고요. 조금만 무리하면 앓아눕기 일쑤고 마음처럼 몸이 따라 주지 않으니 뭘 하려고 해도 걱정부터 앞서기 마련이죠. 그런데 잘 걸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겨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요.
서울에 오래 살아도 가보지 못한 길이 많아요. 걷기에 좋은 서울 길을 추천해주신다면요?
평소에 다리 건너 상암동 쪽을 자주 걸어요. 평화의 공원이나 예전에 석유 비축기지를 공원으로 조성해놓은 문화비축기지, 하늘을 넓게 볼 수 있는 하늘공원 등 그 일대가 다 좋아요.
지도를 펼쳤을 때 서울 도심에서 녹색이 가장 많은 곳이 부암동 백사실계곡 쪽인데, 드라마 <커피 프린스> 촬영지였던 산모퉁이 카페를 지나 백사실계곡으로 향하는 부암동 길도 한적하게 걷기 그만이에요. 서대문구 일대도 구석구석 많이 다녀봤는데, 걸을 때는 안산(무악산으로도 불린다)을 추천해요.
특히 안산에서 무악재 하늘다리를 건너면 인왕산으로 연결되고, 그 길로 국사봉까지 다녀올 수 있거든요. 꼭 자연이 아니더라도 추억을 하나씩 되새기며 강북 도심을 걸어도 나름대로 힐링하는 느낌이 들어요. 강북삼성병원 언덕배기에 있는 홍난파 가옥이나 사직터널 위 행촌동 권율 장군의 은행나무, 그 옆의 딜쿠샤 하우스, 남편이 다녔던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에 들어선 정독도서관, 북촌, 혜화동로터리, 삼선교로 해서 예전에 살던 돈암동까지 걸어보니 새록새록 추억이 떠올라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서울만 해도 정말 다양한 걷기 코스가 있네요.
서울엔 걷기에 좋은 능과 고궁도 많잖아요. 지난 여름에 처음 정릉을 걸어봤는데 키가 큰 나무들이 늘어선 울창한 숲을 걸으며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얻었어요. 고궁은 특히 단풍과 낙엽이 지는 가을에 걷기 그만이죠. 한번은 국회의사당 뒤쪽에서 당산철교 방향으로 한강을 따라 걷는데, 마치 부산의 을숙도처럼 키가 큰 억새가 울창한 길이 나오더라고요. 지금 딱 이 계절에 걷기 예쁜 길이에요. 일단 걷다 보면 의외의 보물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앞으로 걷고 싶은 길이나 도전해보고 싶은 코스가 있나요?
우리나라 해안선 도로를 걸어보는 게 꿈이에요. 예전에 남편과 함께 서해안과 동해안 지도를 그려가며 차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해본 적 있는데, 다시 한 번 그렇게 해안선을 따라 걸어보고 싶어요. 그때의 좋았던 기억 속 자연 풍경과 장소들이 지금도 여전한지, 아니면 어떻게 달라졌는지 자분자분 두 발로 걸으며 되새겨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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