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식객 임지호, 길 위를 떠도는 진짜 이유

기사 요약글

예전처럼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긴 힘들지만, 온라인 집콕 극장에선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사람의 향기가 그리워지는 요즘, 사람 사이의 농밀한 감정을 '사랑'이란 단어로 묵직하게 그려낸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기사 내용

 

 

 

길에서 만난 식구, 영화 <밥정>

 

 

혼밥, 간편식의 시대에 듣는 <밥정>이라는 제목에는 꽤 묘한 울림이 있다. 말 그대로 ‘밥으로 쌓은 정’이다. 한국 사람들은 안부를 물을 때도 밥 얘기를 꺼내는 유일한 민족이라 하지 않던가. 외국어로 정확한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고유의 개념인 ‘정’에 눈길이 가기도 한다. 이 따스한 언어에는 정확히 무엇을 향한 것인지 모를 그리움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밥정>은 유명 셰프인 임지호의 인생과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다. 전국을 떠돌며 잔디, 잡초, 이끼, 나뭇가지 등 지천에 널린 것들을 재료 삼아 요리를 만드는 그에게 세상은 ‘방랑식객’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이는 잘 알려진 면이고, 다큐는 알려지지 않은 사연을 들춘다. 기행에 가까운 길 위에서의 삶은 임 셰프의 개인사에서 비롯됐다.

그는 길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 특히 노인을 지나치지 못하고 기꺼이 손수 만든 음식을 대접한다. 그 기저에는 어머니를 향한 해갈되지 않는 그리움이 자리한다. 어릴 때 집을 뛰쳐나와 식당을 전전하며 음식을 배웠던 임 셰프는 이곳이 혹시 생전 어머니가 온 곳이었을까, 어머니와 관계된 사람을 스쳤을까 하는 마음으로 길을 떠돈 것이다.

 

 

 

 

특별한 인연도 만났다. 지리산에서 만나 10년 가까이 정을 쌓아온 김순규 할머니다. 그러나 끝내 김 할머니까지 세상을 떠나자, 임 셰프는 낳아주고 길러준 그리고 마음을 나눠준 세 어머니를 위한 상을 준비한다. 그가 3일 밤낮 휘몰아치듯 108가지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다큐의 하이라이트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표현하기에는 모자라다. 임 셰프의 모습과 그를 담는 카메라에서는 종교와 철학과 그 외의 많은 것을 뛰어넘는 기운이 감지된다. 그것은 세속적이지 않은 무언가이며, 여기엔 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낮과 밤이 뒤바뀌며 형형색색의 음식이 차려지는 과정. 이 번뇌와 고통과 치유의 과정은 그 어떤 종교의식보다 숭고하게 다가온다. 

“얼마나 소중한 인연이오. 이 빚을 내 생애 다 어떻게 갚을까.” 길에서 우연히 만나 임 셰프와 동행하고, 그의 요리를 선사받은 이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임지호라는 개인을 통과해 만난 <밥정>은 크게는 결국 인간사의 인연과 정을 말한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 하지만 우리가 자꾸만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 말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 영화 <조제>

 

 

영화 <조제>에는 두 개의 원작이 존재한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과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다. 자신을 프랑수아 사강 소설 속의 주인공 조제라고 소개하는 여자 쿠미코와 그런 쿠미코를 사랑하게 되는 남자 츠네오의 이야기다. 장애가 있어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조제와 평범한 대학생인 츠네오의 사랑은 애틋하지만 유통기한이 있다.

다만 이것은 조제의 장애 때문이 아니다. 모든 사랑에는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충돌하듯 시작이 있으며, 감정이 서서히 소멸되면서 맞이하는 끝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은 특별한 듯 평범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한국 리메이크 버전인 <조제>도 같은 내용이다. 다만 만들고 참여한 사람들이 다르기에 작품의 톤 앤 매너는 다르다. 영화는 조제(한지민)와 영석(남주혁)의 우연한 만남을 시작으로 이들이 함께하며 사랑했던 한 시절을 다룬다.

 

 

 

 

영석은 조제의 마음과 삶으로 깊숙이 들어온 거의 유일한 세계다. 자기만의 세상을 단단하게 구축하고 그 안에 오래도록 침잠해 있던 조제는 영석을 만나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다르게 흐르던 두 사람의 시간이 하나로 합쳐져 나란히 흐르는 모습을 영화는 고요하고 쓸쓸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조제>에서 중요한 건 인과관계가 아니다. 부분적으로는 섬세하고 전체적으로는 과감한 진행 안에서 몇몇 대목은 불친절하게 생략되기도 한다. 대신 이 영화의 중심은 상황 속 인물들의 감정이다. 계절의 풍경도, 두 사람을 둘러싼 주변의 관계도 이를 위해 존재한다. 요컨대 <조제>는 사건이 아니라 정서를 중심으로 흐르는 영화다. 시간이 흐르며 버려진 것들, 외로워진 것들이 모인 풍경에 대한 묘사다. <최악의 하루>(2016), <더 테이블>(2016) 등을 연출했던 김종관 감독의 장기가 한껏 발휘된 결과다. 

한지민이 연기한 조제가 뒤돌아서도 생각나는 여운을 남기는 인물이라면 남주혁이 연기한 영석은 조용히 얼굴을 쓰다듬고 싶은 인물이다. 영석의 뒷모습은 언젠가 자신의 사랑을 버겁게 느낀 적 있는, 그래서 쓸쓸하게 자신의 비겁한 태도를 책망해본 적 있는 우리 모두의 그것과 닮았다.

 

 

기획 우성민 이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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