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 키운 공연기획자, 이유있는 '20년 폐교살이'

기사 요약글

자우림, 긱스 등 유명 밴드들을 기획한 1세대 문화기획자 이선철 대표가 30대 중반, 연고도 없는 평창 폐교를 임대해 무작정 살기 시작한 세월이 20년이다. 이제 그는 ‘비교적 전성기’라는 인생의 시즌2를 맞았다고 말한다.

기사 내용

 

 

평창에서 서울, 용인, 원주, 영주, 봉화, 태백, 춘천, 속초, 강릉, 정선까지. 감자꽃스튜디오 이선철 대표의 한 주 일정이다. 1년에 7~80,000km를 달린다고 하니 그의 하루가 얼마나 촘촘히 움직일지 절로 가늠된다. 숙명여대, 경희사이버대, 연세대, 국민대 등 총 7개 대학교에서 겸임 교수로 강연을 하고,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의 기관에서 보내온 SOS로 방방곡곡 창업을 준비하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멘토링을 하고 있다.

 

 

서울 호시절 접고 택한 평창 폐교살이

 


이선철 대표는 그야말로 1세대 문화 기획자다. 20대에는 10여년간 김덕수패 사물놀이 공연 기획 실장으로 일하고, 30대가 되어서는 자우림, 긱스, 노영심 등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의 음반 발매 및 공연을 기획하는 소속사 대표로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그런 그가 2002년 갑자기 평창살이를 선언했다.

 

그것도 99년에 폐교된 평창초 노산분교를 임대해 사무실 한 켠을 거처로 택했다. 당시 나이 36세, 한창인 때에 평창으로 떠난다니 주변에서는 이 대표가 엄청난 사연이 있는 줄 알 정도였다. 빚에 시달리거나 큰 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니냐며 놀라서 물었다.

 

 

 

 

“자연이 좋아 온 거지 시골이 좋아 온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가 평창을 찾은 이유는 단순 명료했다.

“살 빼려고 온 거에요. 귀농귀촌을 했다고 말하긴 어려워요. 저는 자연이 좋아 온 거지 시골이 좋아 온 게 아니에요. 서울에서 직업 특성상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았고, 잦은 음주, 과식으로 겉잡을 수 없이 살이 쪘어요. 그러던 어느 날 팔 다리에 감각이 없고 말도 어눌하게 나오더군요. 곧장 응급실로 달려가니 뇌경색을 진단 받았고, 콜레스테롤, 동맥경화 등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심각한 비만 합병증을 선고 받으니 당장 자연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렇게 그는 평창으로 향했고, 다른 귀농귀촌인처럼 농사를 짓거나 지역 산물을 이용한 새 직업을 찾은 것도 아니다. 그저 자연에 둘러싸인 노산분교에서 살기로 했을 뿐이다. 서울에서 하던 모든 일을 급히 정리하기는 어려워 몇 년간은 평창과 서울의 삶을 병행했다.

 

 

 

 

긍정 요소가 한 데 모인 시기

 

그러나 '평창이 집'이라는 개념은 확실히 했다. 하루가 어디서 끝나건 평창에 돌아와 잠을 자고 아침을 맞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니 우울감에서 해방되고 정신을 차리게 됐어요. 또 산이 가까워 매일 오르내리니 자연스레 운동이 됐죠. 삼시세끼도 강원도의 단순하지만 자연친화적인 식단으로 직접 해먹었어요. 덕분에 지금까지 대체로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별 것 없지만 서울에서의 식습관과 정반대인 평창살이 1년 만에 이 대표는 30키로 이상 체중을 감량했고, 몸의 기운도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서울토박이가 잘 나가던 삶을 미련 없이 접고, 연고도 없는 평창을 찾은 일이 그의 인생에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왜 폐교였을까

 


자연이 좋아 평창에 온 것까지는 이해가 간다. 왜 굳이 폐교를 임대해 살기로 했을까?

 

“사람들은 제가 평창에 와 폐교에 살기 시작한 게 지금의 문화 공간, 감자꽃스튜디오를 만들려고 계획한 일인 줄 알아요. 폐교를 임대한 건 앞서 폐교를 임대해 공간을 만든 여러 차례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대표는 김덕수패 기획 실장으로 있을 때 충남 부여의 폐교를 허물어 사물놀이 학교를 만든 적이 있었고, 양평의 폐교를 전통 악기 공방으로 개조한 경험도 있었다. 공간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한 폐교를 찾고 임대하는 일이 그에게는 비교적 익숙하고 쉬운 일이었다. 그가 노산 분교를 1년 임대하는 데 지불한 비용은 500만 원. 이 외에 온돌을 깔고 싱크대를 설치하는 등의 기본적인 시공에만 200만 원 정도 들였다. 700만 원으로 1년 머물 곳을 마련한 셈이다.

 

 

 

 

감자꽃스튜디오가 될 운명

 


먹고 자기 위한 이 대표의 평창읍 이곡리 333번지의 폐교가 평창을 대표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자 강원도의 성공적인 도시 재생 사례로 꼽히는 지금의 감자꽃스튜디오 모습으로 거듭난 것은 그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당시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일반 사람이 한 명 들어와도 환영인데 문화 기획 하던 이가 강원도에 와있다니! 혼자 살지 말고 주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 달라”며 그를 직접 찾아와 부탁을 하기도 했다. 이 대표 역시 매년 일시불로 내야 하는 임대료의 부담을 덜 수 있고, 문화 기획 일은 그가 여태껏 해오던 일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강원도지사의 방문으로 모든 일이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군에서 아예 학교를 매입하고 도에서는 리모델링 자금을 지원했다. 그렇게 박물관, 책다방을 비롯해 요리 수업을 하거나 공용 주방으로 활용하는 이종욱키친, 드럼 세트, 앰프, 음향 기기까지 완비된 소극장 등이 있는 지금의 모습으로 꾸며졌다. 

 

 

 

 

 

잘 하던 일의 연장선

 


이후 그는 지금까지 하던 일을 계속했을 뿐이다.

 

“서울에서 자우림을 키운 내공이 평창 고등학생들의 락 밴드를 이끄는 것으로 이어졌죠. 클라이언트가 음악가들을 좇는 팬들에서 교육청, 군청으로 바뀌었을 뿐이고요.”

 

그렇게 그는 문화관광부 예산을 지원 받아 평창 초, 중학교 학생 전원에게 국악을 가르쳤고, 평창 고교에 풍물 동아리, 락 밴드 등을 만들어 이끌었다.

 

또 감자꽃스튜디오에 있는 그랜드피아노나 음향 기기를 활용해 마을의 남녀노소 누구나 음악 동호회 모임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이 외에도 음악, 목공 등을 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무료로 감자꽃스튜디오의 공간을 빌려주고 홀로서기를 지원하는 등 이 대표의 평창살이는 서울에서의 삶과 다를 바 없이 문화기획자로서 매 순간 바삐 흘렀다.

 

 

 

 

시즌2에 대접 받으려면

 


공간 대여, 숙박 등 감자꽃스튜디오의 모든 활동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 대표는 공간 자체로 직접 수익을 창출하지 않는 대신 수많은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으로 ‘감자꽃스튜디오 이선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길을 택했다. 덕분에 여러 대학교들의 겸임교수로 월 350만 원 정도의 고정 수익을 내고 있다. 이와 함께 1회 30~50만 원 정도 지급 받는 기관에서의 문화 기획 멘토링 업무도 매일 하고 있다. 어림짐작으로 계산해도 남에게 싫은 소리 할 필요 없이 경제적으로 충분한 삶이다.


“저는 일찍이 평창에 와 인생의 시즌2를 보내고 있는데, 시즌1에서 하던 일을 시골에서도 그대로 하고 있죠. 지금 저와 나이가 비슷한 50대 중 귀농귀촌으로 2막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요. 하지만 무작정 시골에 터를 잡으려 하면 어려울 거에요. 이전 경력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게 좋아요. 본업을 충분히 활용하고 주변 인맥을 잘 이용해야 시골에서의 시즌2도 대접 받을 수 있습니다.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자신의 이력서를 다시 작성해보세요. 그 과정만으로 인생이 정리됩니다.”

 

 

Tip. 폐교를 임대해 공간으로 꾸미려면
폐교 임대에 대한 절차와 필요한 서류는?
폐교재산은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제29조에 따라 일반입찰공고를 통해 대부하고 있으므로 원하는 지역 교육청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수시로 확인하거나 폐교가 많이 나오는 1월경 직접 전화 문의해 입찰에 참가하면 된다.
년, 월 임대료는?
대부료는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시행령 제31조에 따라 개별공시지가, 시가표준액, 대부요율, 면적 등을 적용하여 산출하거나 또는 감정평가액으로 결정된다. 또 계약 기간의 총 대부료는 일시로 납부해야 한다.
임대 시 리모델링 가능 범위는?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제13조에 따르면 공유재산에 건물, 도랑· 교량 등의 구조물과 그 밖의 영구시설물을 축조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유재산을 사용함에 있어 필요 시설(전기, 수도, 냉난방 등)을 제외하고 원상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임대 기간은 최대 얼마?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제31조에 따라 토지와 그 정착물은 5년의 기간을 초과할 수 없으나, 「같은 법 시행령」 제30조제1항의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20년까지 대부할 수 있다.

 

 

기획 임소연 사진 이근수(스튜디오 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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