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누리' 창립멤버-중동 테러전문가에서 수제 맥주로 3라운드

기사 요약글

성공한 IT 프로그래머 출신의 대테러 컨설턴트라는 전문가의 삶을 접고, 시골로 내려가 지역 특산 수제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이 있다. 술 빚는 재미로 2라운드를 넘어 3라운드를 풍미 넘치게 살고 있는 홍성태 대표의 인생 스토리.

기사 내용

 

 

 

수제 맥주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충북 제천의 '뱅크 크릭 브루잉'은 ‘솔티8’ 맥주를 생산하는 곳이다.

 

수제 맥주 제조에 한창이던 홍성태 대표는 사실 술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PC 통신이 대세이던 시절, 나우누리 창립 멤버로 경력을 쌓고 IT 업계에서 다양한 업무를 익혔다.

 

“입사 6개월 만에 인사고과 최고점을 분기 연속으로 받고 회사에 3년간 300억 원의 매출 달성을 안겼어요. 하지만 IMF가 터졌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죠.”

 

IMF로 사정이 어려워진 회사는 그에게 부하 직원 둘을 내보낼 것을 권고했다. 아직 낮은 연차의 후배들은 이직이 어려울 것을 알았기에 홍 대표는 자신이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고 일본, 미국 등 해외로 눈을 돌렸다.

 

 

 

 

성공한 컨설팅 전문가로서의 삶을 접다

 

 

열심히 이력서를 돌려 일본, 홍콩에서 차례로 경력을 쌓았다. 타국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홍콩에서 4년간 다닌 직장을 정리하고 30대 후반, 가족과 함께 바레인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곳에서 통신서비스 쪽의 IT 프로젝트를 여러 번 성공시키자 이번에는 뉴욕에 있는 지인에게서 제안이 왔다. FBI, CIA 출신이 즐비한 회사에서 진행하는 ‘대테러 컨설팅’ 업무였다. 5년간 중동에서 도감청, 요인/VIP 암살 방지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국가에서 가지 말라는 곳 빼고는 다 다녔어요. 위험한 상황이 많았죠.”

 

워낙 위험한 일을 하다 보니 협박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40대 중반, 더 늦기 전에 안정된 삶을 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맥주’가 떠올랐다.

 

평소 술을 좋아해 어느 도시를 가건 술을 마셨다. 미국에서는 크래프트 에일을 만드는 브루어리를 자주 찾았다. 나이를 먹어도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일, 수제 맥주가 딱이었다.

 

 

 

 

4년의 배움, 벨기에 스타일 수제 맥주의 탄생

 

 

처음 양조장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게 2011년, 국내 주류법상 수제 맥주 유통에 제약이 많던 시기였다. 섣불리 도전하기보다 공방을 만들어 양조 연습을 하고, 사람들을 사귀며 해외 양조장의 문을 두드렸다.

 

“미국 맥주 전문가 마이클 잭슨이 잡은 체계를 공부하며 미국에 갈 때마다 지역 양조장을 찾아가 노하우를 물었어요. 그런데 배울수록 본류는 벨기에라는 것을 알게 됐죠. 그때부터 벨기에로 날아갔습니다.”

 

맥주 레시피를 대부분 오픈하는 미국 양조장과 달리 벨기에는 정보 개방에 보수적이었다. 아침마다 숙소에서 100km를 운전해가며 일을 도왔지만, 박했다. 틈틈이 어깨너머로 수집한 정보를 조합해서 “이게 맞느냐”라고 물으면 그제야 하나씩 호응을 해주는 식이었다.

 

“맥주의 퀄리티는 결국 발효 기술에 있어요. 환경이 무척 중요하죠.

양조장마다 맥주 레시피를 공개하기도 하는데, 그대로 따라 해도 맛은 80%밖에 구현이 안 돼요. 결국 나머지 20%를 따라잡고, 더 나은 나만의 맥주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거죠.”

 

미국, 일본, 벨기에, 슬로베니아 등 해외 양조장을 찾아다니며 배우기를 4년, 드디어 2014년 법이 바뀌고 제천에 터를 잡았다. 당시 ‘유기농 농사를 짓는 모임’에 참가하느라 집이 있는 분당과 제천을 오가던 아내의 영향 때문이었다.

 

 

 

 

‘솔티8’ ‘배론 에일’, 지역색을 담은 맥주

 

 

그가 8종의 수제 맥주 중 자신 있게 내놓은 대표 상품은 ‘솔티(SOLTI)8’이다. 구한말 제천 지역 의병장인 의암 류인석 장군의 의병 봉기에 쓰인 격문 ‘팔(八)도에 고하노라’에서 착안해 탄생한 제품이다.

 

일제에 맞서 나라를 구하고자 한 의인의 뜻을 기리며 가장 씁쓸한 더블 IPA 맥주를 만들었고 도수도 8%, 이름도 8로 지었다. ‘솔티(SOLTI)8’의 솔티는 '뱅크 크릭 브루잉'이 자리한 솔티 마을의 이름에서 따왔다.

 

“저희 브루어리에서 만드는 맥주는 모두 두 번 발효를 거칩니다. 발효를 거듭할수록 풍미는 깊어지고 맛의 균형이 잡히죠.

최근에 개발한 ‘배론 에일’은 세 번 발효한 트리플 에일이에요. 제천에 있는 ‘배론 성지’에서 이름과 라벨 디자인을 따왔죠. 지역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배론 성지의 신부님들을 오랜 시간 설득하고 노력한 끝에 탄생시킨 상품이에요.

상품 판매 수익의 일부는 배론 성지 내에 있는 ‘살레시오의 집’에 기부됩니다.”

 

홍 대표는 처음부터 지역과 함께하는 청사진을 꿈꿨다. 그의 양조장 ‘뱅크 크릭 브루잉’의 이름 역시 ‘제천’의 뜻을 영어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이다. 맥주 하나로 단 2주 동안 2만여 명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50억 원 가까이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러시안 리버 브루어리’가 롤 모델이다.

 

 

 

 

끊임없는 도전, 첫 번째 코리안 에일을 향한 꿈

 

 

'뱅크 크릭 브루잉'은 2018년 기준 3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홍성태 대표는 기업인으로서 2019년 3월, 벨기에 국왕 부부 방한 때 청와대에 초청받는가 하면 만찬 상에 ‘솔티(SOLTI)8’과 ‘솔티(SOLTI) 오리지널 브라운’ 2종의 맥주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홍 대표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다. 제품 퀄리티를 높이고 재료 국산화를 통해 최초의 ‘코리안 에일’을 만들기 위해서다.

 

“양조장 초창기에 홉 묘목을 들여와 솔티 마을 주민들과 홉 농사를 지었어요.

하지만 완성된 맥주에 홉 함유량은 몇 퍼센트 되지 않기 때문에 국산 맥주로 인정받을 수 없고, 한살림이나 농협 같은 곳에서 판매할 수 없었죠. 제품의 70% 이상 국내산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라도 일대 농가들과 협약을 맺고 국내산 맥주보리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재료 국산화 작업에 이어 품질 향상을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홍 대표는 대한민국 맥주 시장의 5%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별성과 독특한 맛을 앞세워 도수 12%, 17%의 상품 개발도 이어가고 있다.

 

8264㎡(2500평)가 넘는 농지에서 수확하는 홉과 그 홉으로 만든 맥주를 마시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이로 인해 활기를 띨 제천의 미래를 꿈꾸는 홍 대표의 의지가 또렷하게 전해졌다.

 

 

기획 문수진 김태정  사진 이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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