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전원’, 모차르트 ‘레퀴엠’ 중년을 위한 음악 처방전

기사 요약글

코로나로 인해 답답하고 무기력한 상황의 연속이다. 이럴 때 기분을 전환하는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는 음악을 듣는 것이다. 바리톤 안우성이 코로나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상비약으로 음악을 처방했다.

기사 내용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외출이 제한되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면서, 우울증과 무기력함을 느끼는 ‘코로나 블루’와 답답하고 화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화병인 ‘코로나 레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증상을 완화하기 좋은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가벼운 운동, 명상, 반신욕, 가까운 이들과 전화. 모두 좋은 방법이나 바리톤 안우성은 음악을 권한다.

 

“평소 건강관리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운동을 좀 해야겠다’고 하면서 조깅을 하시거나 헬스장에 가실 거예요. 이런 분들은 건강상 문제가 별로 없겠죠. 그런데 스트레스가 심하고 심신이 괴로울 때는 무엇을 할까요? 와인을 마시거나 영화를 보거나… 자신만의 답이 있는 분들은 괜찮겠지만, 정작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으실 거예요. 그럴 때 찾아 듣는 음악 두세 개만 있다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는데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의사는 약을 처방하고, 음악가는 음악을 처방한다. 안우성은 코로나19 시대 명약으로는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과 슈만의 ‘어린이 정경’ 모음곡을 골랐다. ‘전원’은 제목처럼 평화로운 선율이 아름다운 교향곡으로, 잔잔히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나 새소리도 들리는 등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준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은 어린이를 위한 곡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곡으로, 모음곡 중 ‘트로이메라이(꿈)’는 꿈을 구는 듯 부드러운 선율로 유명하다.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은 1악장 표제가 ‘시골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즐거운 감정’일 정도로, 깊은 숲을 산책하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어요. 2악장 ‘시냇가의 풍경’은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나요. 똑같은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감옥에 있는 것과 들판을 바라보는 것은 다를 거예요. 이제껏 바쁜 삶에 익숙해 왔는데, 이런 음악을 들으며 여유를 누리는 법을 슬기롭게 배웠으면 좋겠어요.”

 

 

 

 

위로가 필요할 땐 모차르트의 ‘레퀴엠’

 

 

안우성은 위로가 필요한 순간, ‘레퀴엠’을 처방한다. 레퀴엠은 장례식 미사에서 연주되는 곡으로, 모차르트 최후의 작품인 ‘레퀴엠’을 비롯해 베르디, 포레 등의 작곡가가 같은 종류의 작품을 남겼다.

 

“차분해지고 싶고 편안한 휴식이 필요할 때 서울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에 가요. 자판기 커피 하나 뽑아 들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온몸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복잡한 마음이 차분해져요. 저는 천주교 신자지만(웃음), 종교와 상관없이 공간에 들어가는 것만 해도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길상사에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들게 하는 음악이 있을까 생각했더니 ‘레퀴엠’이더라고요. 신에 대한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공포스러운 감정도 있지만 감상하고 나면 여러 가지 기분이 잦아들더라고요.”

 

‘음악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가.’ 안우성이 사회인으로 구성된 합창단 ‘오싱어스’를 이끌고, 신문에 칼럼을 연재해 오며 늘 던져온 화두다. 

 

“음악은 우리를 산책으로 이끌고 사색으로 인도합니다. 음악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고 내 감정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주며, 식은 마음에 온기를 더하고 딱딱하게 굳어 깨지기 직전의 어둠에서 구원해 주죠.”

 

코로나19 시대, 더욱더 음악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다.

 

 

 

 

감정 표현이 부족한 중년 남자라면 클래식이 해법

 

 

안우성은 20대 후반 독일로 유학을 떠나 프라이부르크 국립음대 석사과정과 최고 연주자 과정을 졸업 후 독일, 이탈리아, 영국 오페라·리사이틀 무대에서 활동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만난 스승들이 자신의 롤모델이며, 그들에게서 남자의 사회성을 배웠다고 말한다.

 

“음악을 공부한다는 건, 결국 감정을 공부하는 거예요. ‘왜 이렇게 표현되어야 하는가’하는 것들을 배우는 거니까요. 음악에 관해 공부하면서 교수님들과 많은 것을 이야기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남자의 사회성, 남자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독일에서 만난 교수님은 제게 산책을 알려주셨고, 아내와 귓불이 빨개지면서 전화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어요.”

 

그가 담당 교수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교수는 음악을 틀어 놓고 그의 아내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낭만의 세계로 타인을 인도하고 순간순간 작은 감동으로 채울 수 있는 남자가 진정한 젠틀맨”이라 는 걸 느꼈다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할 때,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리 자기 이야기를 하거나 감정 표현을 하는데 솔직하다고 하잖아요.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겠지만, 제가 만난 유럽인들은 자기가 꼭 멋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때 자기 생각이 탁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 같아요. 하나 마나 한 이야기 취급받거나 잘난 척한다고 핀잔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죠. 꼭 그렇게 멋지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죠.”

 

음악은 누구에나 필요하나, 특히 우리나라 40대 이상 남성들에게 클래식 음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는 중년 남성들이 많아요. 하지만, 막상 그들과 음악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음악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죠." 

 

 

 

 

 

 

성악가인 그가 오페라나 성악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던 그의 아버지 덕분이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그의 눈높이에 맞게 소개하며 음악을 흥미를 느끼게 했다. 이를테면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을 들려주며, “자, 지금 군대가 정렬한다.” “지금 나오는 음악은 프랑스 애국가야” 같은 식이었다.

  

 

 

 

클래식은 고상한 음악이 아니라 힐링 음악

 

 

안우성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살려 클래식 음악에 입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남자의 클래식>이라는 책도 펴냈다. ‘남자’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나, 음악이 필요한 모든 이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에는 그동안 그가 경험했던 음악적 순간이 담긴 에세이와 주제에 맞는 음악을 선곡해 들려준다. ‘들려준다’ 가 가능한 이유는 곡 설명 말미에 QR코드를 삽입해 스마트폰만 있으면 그곳이 어디든 즉석에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껏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는 책과 달리, 해설이 있는 콘서트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뉘앙스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작곡가나 연주자들이 음악으로 뭔가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거예요. 그런 욕구는 어디서부터 왔는지, 그래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또 그걸 어떻게 구현하려고 했는지 등에 대해 그 사람이 처해있던 배경, 사건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려 했어요. 또 이들이 특별하고 고상한 가치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일상을 살아오고 똑같은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적인 면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음악은 악기별, 장르별로 고르게 분배해 클래식 음악 안에서도 다양한 장르와 악기를 접하게 했다. 모두 오래 옆에 두고 들을 만한 음악들이다.

 

“음악사적으로 대표적 작곡가와 주목할 만한 연주자들을 뽑고, 제가 평소 강의를 하거나 합창단을 이끌면서 ‘이런 것들은 보편적으로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내용으로 채워봤어요. 여기 수록된 내용이 종자씨가 되어, 다른 음악을 들을 때 기초가 될 수 있는 내용 들이에요. 이 정도 이야기라면 친구들과 대화한다거나 사색을 할 때 좋을 거리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고상한가?’ 그는 이에 대한 답으로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모차르트의 남성 6중창 ‘내 엉덩이를 핥아’를 들려준다.

 

“독일 유학 시절, 친구가 어느 날 모차르트의 편지를 보여줬어요. 원색적인 표현이 가득 찬 편지였는데, 똥을 주제로 한 편지만 수십 편에 달했어요. ‘위대한 작곡가가 이렇게 시답지 않은 농담이나 하다니!’하고 그동안 가져온 모차르트의 이미지가 깨지더군요.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엄숙주의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고상한 이미지를 깨고 싶었어요. 고상한 음악을 하는 사람도 이렇게 저급한 내용의 모티브를 가진 음악을 즐길 수 있고, 반면 고상하지 않은 삶을 살더라도 충분히 고상한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걸 반증한다고 생각해요. ‘미스터트롯’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 말라는 법은 없죠.”

 

 

 

 

그의 책 제목처럼, 음악을 아는 남자는 정말 외롭지 않을까. 그는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낭만과 행복을 이야기했다.

 

“남자들은 ‘나이 드니 남은 건 음악밖에 없다’는 말을 해요. 단골 술집에 가는 이유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줘서라는 겁니다. 즐겁고 좋은 이야기를 나눠도 단골 술집에서 듣는 음악만큼 행복한 건 없죠. 그 음악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들으며 힐링이 돼요. 단순해 보이지만 그게 정말 슬기롭게 외롭지 않게 라이프스타일을 누리고 있는 거예요. 로맨틱한 순간, 음악이 없으면 얼마나 어색하겠어요. 음악은 아주 특별한 순간 더 로맨틱하게 만들고, 내가 진짜 외로울 때 음악은 외로움을 즐길 수 있게 만들죠.”

 

안우성은 클래식 음악을 쉽게 접할 방법을 제안했다. 라디오 93.1MHz KBS 클래식FM을 듣기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옆에 있기다.

 

“코로나19 상황이 좀 괜찮아진다면, 문화센터나 음악 감상 모임에 걸음을 하면 좋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24시간 동안 클래식 음악을 장르별로 들려주는 클래식 FM 들으시는 게 가장 좋아요. 세계 각지에서 녹음된 최고의 연주만을 엄선해서 틀어주거든요. 1, 2년만 꾸준히 듣는다면 음악 평론가가 될 수 있을 정도랍니다.”

 

 

기획 이인철 두경아 사진 박충열(스튜디오 텐)

장소협조 파리뮤직포럼in자양스테이션 (www.parismusicforu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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