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 후 귀촌, 전직 공무원이 시골마을 반장 된 비결

기사 요약글

농촌에서 시작하는 2라운드 인생. 쉼터를 꿈꾸겠지만 삶터이자 일터이기도 하다. 낭만이 아닌 현실의 귀촌 생활, 어떻게 해야 잘 뿌리내릴 수 있을까?

기사 내용

 

 

 

 

서울시 공무원으로 37년간 근무했던 장영각 씨(68세). 정년퇴직을 1년 앞두고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자신이 섬기던 교회 일을 위한 과감한 결단이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은퇴 후 고향 충북 옥천으로 귀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교회에서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에 종교시설을 건축하면서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공무원으로 토목 및 건설 관련 업무를 했던 그는 자신이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가평은 서울과 멀지 않으면서도 한적한 시골 풍경을 간직한 곳이에요. 명예퇴직 전 1년 정도 서울과 가평을 오가는 이중생활을 병행했는데, 어느새 이 마을이 너무 좋은 겁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가려던 계획을 접고 이곳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낯선 시골에 정착하려니 시작부터 여러 문제들과 직면했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살 집이었다. 장 씨는 땅을 매입해 집을 짓는 대신 농가 주택을 매입했다.

 

“교회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마을 반장님이 좋은 집이 매물로 나왔다고 소개해주더군요. 지은 지 10년 정도 된 집이었는데 입지조건 이 너무 좋았어요. 집에서 용문산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 풍경에 반해 이튿날 바로 계약했습니다.” 

 

이 마을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에 자리한 옻샘마을. 마을 주변으로 잣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 싸여 있으며 자연 환경도 잘 보존되어 있다. 178가구 약 300여 명이  살만큼 비교적 규모가 있는 시골마을로 오랫동안 제갈 씨들이 모여 살았지만 최근 귀촌인들이 속속 정착하면서 마을 인구의 60%를 차지한다.   

 

 

 

 

고향 대신 낯선 곳에서 시작한 귀촌 

 

 

그의 집은 대지 150평에 40평 규모의 2층 전원주택이다.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개방형 구조로  1층은 살림집이고 2층은 취미생활을 위한 공간이다. 특히 유리 통창에 원목을 덧댄 2층의 분위기는 아늑하고 집 앞에는 텃밭도 있다. 

 

“당시 시세가 2억 5천만원 정도였는데 저는 좀 더 저렴하게 샀어요. 주택 리모델링비에 3천만원 정도를 썼습니다. 그런데 제가 살아보니 시골생활에서 집이 절대 크고 넓을 필요가 없어요. 규모가 크면 관리가 힘듭니다. 시골집으로는 부부 단둘이 산다면 15~20평 규모면 충분해요.

 

단, 텃밭은 있어야 하니 대지는 적당한 크기면 좋습니다. 집 짓는 데 비용을 과하게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요즘은 조립식 농가주택도 있습니다. 6평인데도 내부가 호텔처럼 안락하고 2층에 다락까지 갖춰져 있습니다. 이런 조립식 주택은 땅에 기초를 다져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허가도 필요 없습니다. 6평이라고 해도 좁게 느껴지지 않아요. 가격도 대략 1천 8백~2천 만원 정도입니다. 시골생활은 되도록 가볍게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자두 농장 통해 천만원 이상 부가수익 거둬 

 

 

그렇게 이곳에 둥지를 틀고 산 지 어느덧 6년. 그의 삶은 온종일 바쁘다. 아침 일찍부터 아내와 함께 텃밭을 가꾸고 농사를 짓고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집 앞 텃밭에는 옥수수, 가지, 상추, 오이, 토마토 등 제철 채소들로 가득하다. 아내 건강을 위해 차조기라 불리는 약초인 자소엽도 키운다. 전업 농사는 아니지만 소일거리로 자두 농사도 짓고 있다. 낯선 마을에서의 정착처럼 자두 농사 역시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2018년 3월 면사무소에서 전화가 왔어요. 자두 과수원이 있는데 운영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죠. 처음에는 주저했습니다. 과수원 농사는 경험이 전혀 없었어요. 틈틈이 농사를 배우긴 했지만 텃밭 가꾸기 수준이었죠. 과수원집 딸 출신인 아내가 해보자고 하더군요. 아내가 아니었으면 엄두 내지 못했을 일입니다.” 

 

농장은 무상임대였다. 중간에 실패하더라도 경제적 손실이 없는 만큼 곧장 실천에 옮겼다. 먼저 인터넷부터 검색하며 자두 농장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지인들의 조언, 선배 농사꾼의 가르침도 받았다.  

 

“가지 치는 법도 몰라 처음부터 하나씩 배워나갔죠. 모르는 것은 무조건 작목반 회장이나 총무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다들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셨죠. 시골에 살려면 자신의 옛 경력에 사로잡혀 우쭐해서는 안됩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정확하게 말하는 게 도움을 얻는 지름길이에요.”  

 

 

 

 

 

천 여 평 남짓한 자두농장에는 10년 이상 된 자두나무 130여 그루가 있다. 조생종인 대석(6월 말 수확) 14그루, 후무사(7월 말 수확) 60여 그루, 추희(9월 중순 수확) 60여 그루 등이다. 운영 첫 해 자두 수확은 예상외로 풍성했다. 교과서대로 때에 따라 가지를 쳐주고 풀도 깎고 관리를 하며 착실하게 농사를 지었더니 고맙게도 자두나무는 건강하고 튼실한 열매로 보답했다. 첫 해 천 만원 정도의 부가수입이 생겼다.

 

“벼 농사의 경우 1천 평에서 500만 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자두 농사는 수익이 괜찮죠. 자두 농사가 특별히 어렵다고는 할 수 없어요. 다른 농사와 같이 부지런해야만 해요. 여름 땡볕에서 수확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자두 밭에서의 일은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착실히 연구하고 공부한 덕분에 올해는 냉해와 기록적인 장맛비 가 있었음에도 지난해보다 30% 이상의 수익을 기대한다. 판로 걱정은 하지 않는다. 농장 위치가 국도변이라 홍천을 오가는 사람들이 주요 소비자다. 자두따기 체험을 통한 수익도 크다. 입소문이 난 덕에 가족 단위 체험객들이 많다.

 

 

 

 

귀촌에 성공하려면 꼭 필요한 것들 

 

 

그는 귀촌 후 삶의 질을 위해서 시골 문화와 마을 사람들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시골 사람답게, 동네 사람답게 살면 됩니다. 너무 당연하지만 아주 중요한 자세죠. 비슷한 시기에 귀촌한 어떤 분은 6년 동안 살았는데도 마을에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합니다. 귀촌해서 담치고 대문 달고 거기에 CCTV까지 설치하는 분도 봤습니다. 시골에 와서 도시에서처럼 살면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저에게 집을 파신 분도 귀촌해서 10년 정도 살았다고 하더군요. 제가 이사 온 후 주민들을 초대해 식사대접을 했는데 다들 10년 만에 이 집에 처음 와봤다고 하더군요.” 

 

장 씨는 주민들과 자주 접촉하고, 마을 행사 및 각종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덕분에 올해부터는 마을 반장으로도 선출되었다. 2년 임기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마을 일로 더 바빠지긴 했다. 

 

 

 

 

“귀촌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일과 취미입니다. 일은 소일거리를 말합니다. 봉사활동, 텃밭 가꾸기 등입니다. 시골에서도 봉사할 게 많아요. 두 번째는 취미생활입니다. 농한기나 비올 때 저는 서예와 색소폰을 연주합니다. 공직생활하면서 15년 이상 서예와 색소폰을 배웠어요. 현재 면사무소에서 운영 중인 주민자치센터 문화예술 프로그램에서 색소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귀촌 이후 일상은 매우 바빠졌지만, 삶은 더 여유로워졌다는 장영각 씨. 그는 자신의 귀촌 정착기를 공유하기 위해 올해 초부터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시골반장귀촌생활TV’ 채널이다. 옻샘마을 소개, 농사일, 자두농장 이야기, 취미생활 등 시골생활의 소소한 일상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해서 올린다. 배경음악은 직접 연주한 색소폰 연주곡이 대부분이다. 서툴지만 일상에 자잘한 재미를 또 하나 추가했다고 웃는 그다.

 

“귀촌 이후 넉넉한 자연의 품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알게됐어요. 무엇보다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인생의  문제를 내 방식대로 잘 풀어가고 있는 것 같아 좋아요.” 

 

김남희 사진 이근수(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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