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중 배운 꽃차로 소믈리에 되다

기사 요약글

항암치료 후 마음을 달래준 꽃차에 빠져 소믈리에가 된 50대 여성 이야기.

기사 내용

 

 

 

쉰 세 살에 접어든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의 일이다. 유방암 선고를 받았을 때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그저 멍해졌다. 아무리 암이 흔해져 3명 중 1명 꼴로 걸린다지만, 왜 그 1명이 바로 나란 말인가? 유방암은 초기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난 벌써 2기까지 진행돼 있었다.

 

 

항암치료 전 가장으로 살아온 삶

 

 

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은 2000년대 초반 IT업종이 붐을 이루자 퇴사하고 선후배들과 벤처기업을 차렸다. 하지만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나는 소위 ‘경단녀(경력단절 여성)’였다.

 

재취업은 쉽지 않았기에 학습지교사, 방문판매원, 마트 계산원, 보험설계사 등 할 수 있는 일은 기회가 닿는 대로 가리지 않고 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번 돈으로 작은 집도 장만했고 편의점을 차려 남편과 운영하면서 생활의 안정을 이뤄나갔다.

 

 

항암치료 후 새 삶에 대한 욕심

 

 

그러던 차에 암이라니,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유방암의 경우 치료가 잘 되고 치료 뒤 생존 가능성도 크다는 주위의 격려에 용기를 잃지 않았다.

 

덕분에 항암치료를 성공적으로 끝냈고, 새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 가족이 먼저라는 생각 등으로 나 자신은 늘 뒷전으로 미뤄두었다. 이제부터는 최대한 내 몸을 위하며 살고 싶다는 의지가 솟아났다.

 

물론 그저 원망스러운 마음이 가득할 때도 있었다. 암에 걸리면 항암치료의 고통도 견디기 어렵지만 재발률이 20~30%, 재발환자 중 70%가 수술 후 3년 이내, 90%는 5년 이내에 재발한다는 점에서 재발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 생활의 변화가 필요했다.

 

 

 

 

시골집으로 떠나다

 

 

우선 좁은 편의점과 집 사이만 왔다 갔다 쳇바퀴 돌던 생활 패턴을 바꿔보기로 했다. 남편과 의논하여 서울에서 1시간 3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서해안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소박한 시골집을 샀다.

 

시골이기도 하고 작은 집이다 보니 큰 돈이 들지 않았고, 조금 손보는 정도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편의점은 아르바이트생을 더 두기로 하고 토요일 새벽이면 무조건 시골집으로 향했다. 주말 내내 머물며 텃밭을 가꾸고, 바닷가를 걸으니 자연스레 운동이 되었다.

 

 

꽃차 선생님과의 만남

 

 

점차 시골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주말을 함께 보낸 남편이 혼자 올라가고, 난 한 주 더 지내다 오곤 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지인들이 생겨났다. 지금의 나를 꽃차 소믈리에로 만들어준 꽃차 선생님을 만난 것도 그 때였다.

 

선생님 집에 가서 꽃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금계꽃차와 목련꽃차, 장미꽃차가 유리잔에서 물을 만나 활짝 피어나고, 예쁜 색으로 우러나는 것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왔다. 또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꽃차 유리병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 꽃차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꽃차로 얻은 마음 치유

 

 

꽃차를 너무 좋아하는 나를 보고 선생님께서 꽃차 만들기를 배워보라고 제안했다. 취미든 직업으로든 꽃차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고, 꽃차 강좌나 공방에 가서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솔깃해진 나는 우선 지역 문화원에 가보았다.

 

강의를 듣기 시작하면서 꽃차에 더욱 빠졌고, 시골집에 가는 즐거움이 커졌다. 예쁜 꽃을 눈으로 보고, 향기를 맡고, 꽃차를 덖는 과정을 통해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꽃을 보면 생명력을 느끼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 같았다.

 

덕분에 암 재발에 대한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었다. 별다른 취미 없이 평생을 살아온 나를 신세계로 이끈 셈이다.

 

 

꽃차 소믈리에에 도전

 

 

건강을 위해서나 취미로 꽃차를 즐길 수도 있지만 꽃차 소믈리에라는 직업으로 발전시키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먹을 수 있는 수많은 꽃을 이용해 차를 만들고, 꽃의 효능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직업이다.

 

때문에 각 꽃의 효능도 잘 알아야 하고, 독성이 있는지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또 재료에 맞게 차를 만들고 우리는 방법이 달라 전문성이 필요했다. 나는 내친김에 꽃차 소믈리에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꽃차 소믈리에 자격증 따는 법

 

 

꽃차 소믈리에가 되려면 전문기관에서 제공하는 과정을 이수하고 소정의 시험을 통과, 한국꽃차협회가 발급하는 민간자격증을 취득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이론과 실습 교육은 문화센터나 공방 등 민간 교육원을 통해서도 받을 수 있다. 교육원마다 다르지만 20~80시간의 교육을 받으면 기본적인 꽃차 제다법을 익힐 수 있고 수료증도 함께 나온다.

 

꽃의 특성에 대한 이해와 제다기법을 이론으로 배우고, 꽃차 재료 손질법과 직접 꽃을 덖어서 차를 만드는 실습 과정을 익히고 나면 자격증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한국에는 꽃차협회가 몇 군데 있고, 협회마다 수업과 명칭이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자격증 취득까지 1년 정도 걸린다. 응시자격은 만 18세 이상이라면 학력이나 경력 상관없이 누구나 가능하다.

 

꽃차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고 나면 주로 카페를 창업하거나, 티 테이블을 전문적으로 스타일링해주는 전문가로 일하기도 하고, 공방을 운영할 수 있다. 또 교육원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꽃차 만들기 강사로 활동할 수도 있다. 이 밖에 전문적으로 자연에서 꽃과 산야초 등을 채취해 덖어서 판매할 수 있으며, 아예 귀농해서 꽃차용 꽃을 키우는 사업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3년 만에 느긋하게 딴 자격증으로 얻은 꿈

 

 

꽃차에 매료된 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지 3년만인 지난해 자격증을 취득했다. 남들보다 느린 속도였지만 모든 과정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즐기면서 느긋하게 진행하기로 맘먹은 터라 만족스러운 결과다. 자격증을 땄다고 바로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았다는 기쁨이 남달랐다.

 

요즘은 선배 소믈리에의 꽃차 공방에 나가 차 만들기와 판매를 도우며 경험을 쌓고 있다. 선배가 강의할 때 보조강사로도 일한다.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선배가 건네는 100만 원 정도 외에는 아직 이렇다 할 수입은 없지만 배우는 게 더 많으므로 공부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다니고 있다.

 

앞으로의 기대감은 크다. 꽃차가 주는 마음 치유 효과가 굉장하다는 것을 직접 느꼈기에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해 꽃차 소믈리에가 할 일은 무궁무진할 것이라 생각한다.

 

내 꿈은 꽃차 공방 겸 카페를 차리고 나만의 꽃차를 만들어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내가 위로 받은 것처럼 그들도 위로 받고 힐링할 수 있다면 암 치료 후 보너스로 살게 된 인생 2막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획 임소연 김경화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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