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건강한 사회] 무엇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가

기사 요약글

먹고 사느라 죽겠는 우리. 건강하기 힘든 이유는 뭘까? 전부 다 내 탓인 걸까?

기사 내용

 

*연관 시리즈 기사 보기*

1편. 건강불평등, 대비하고 있습니까?

2편. 글로벌 건강불평등 리포트

3편. 무엇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가?

4편. 은퇴 후 건강, 어떻게 대비할까?

5편. 생활습관 개선의 노력이 필요한 시대

 

 

 

 

“먹고 사느라 죽겠다”라는 아마 만국 공용어일 것이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고 그 스트레스의 근원은 생업이라는 것을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몇몇 학자들에 따르면 건강에 더 해로운 것은 생업보다 실업이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동유럽 인구 약 3만 명을 대상으로 6년간 진행한 연구 결과를 보면, 연구 시작 시점에 실업 상태였던 사람들이 6년 뒤 사망할 확률은 취업 상태였던 사람들보다 두 배나 높았다.

 

그렇다면 재취업이 답일까? 2018년 국제역학회의 공식 학술지인 <국제역학회지>에 게재된 맨체스터대학교 연구팀의 논문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연구팀이 실업 상태의 35~75세 노동자 1116명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1년 뒤 재취업 여부, 임금/안정성/근로 환경을 기준으로 재취업한 ‘일자리의 질’을 평가한 결과 실업 상태로 남아 있던 사람들보다 2개 이상의 문제가 있는 일자리로 재취업한 사람들의 건강지표가 1.5배 이상 나빴다. 대체 이유가 뭘까?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

 

 

고용은 됐지만 잠재적 실업자에 가까운 불안정한 고용 형태는 노동자의 건강을 실질적으로 위협한다. 비정규직, 하도급, 파견, 용역 등 다양한 형태의 간접고용 노동자에 못지않게 실직 후 서비스 자영업으로 창업한 영세 자영업자들의 상황도 심각하다.

 

장시간 노동, 과한 업무량, 저소득, 고용 불안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소득불평등, 더 나아가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언제 다칠지 모른다

 

 

산업재해는 부주의나 안전교육 부족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미국산업의학회지>에 게재된 연구 논문에 따르면 노동자가 어리고, 비정규직이며,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일할수록 산재 예방과 관련된 자원(산재 방지를 위한 적법한 절차, 작업장 안전에 대한 권리와 책임 인지, 본인과 동료의 산재 예방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역량)에 접근하기 어렵다.

 

사실 이 점은 굳이 학술지를 거론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신속하게 재택근무로 전환되지 못한 인력들이 바이러스의 위험에 노출되었고, 집단 감염된 구로 콜센터 직원들을 비롯한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다.

 

 

언제 쉴 수 있을지 모른다

 

 

번아웃증후군은 위의 두 이유가 합쳐진 결과에 가깝다. 만성피로와 무기력감이 심해지면 불면증, 우울증, 공황장애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번아웃이 된 사람에게 가장 의미 없는 조언은 “무리하지 말고 좀 쉬라”는 것이다.

 

일이 쏟아지고 이 일이 생업이며 기한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생계가 위태로워지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쉰 단 말인가. 번아웃의 핵심은 내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없고, 또 언제 쉴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건강불평등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 마이클 마멋은 업무 부담감이 큰데 그 업무를 통제할 권한은 없고,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심장병과 정신질환에 걸릴 위험이 크다고 말한다. 일로 인한 스트레스는 단순히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일은 많은데 그것을 통제할 힘이나 권한이 내게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일에 대한 통제력을 가질 수 없는데 생활에 대한 통제력을 가질 수 있을 리는 없다. 바로 여기에서 건강 격차가 발생한다.

 

 

 

 

우리 집 주소가 내 장의 건강을 말해준다

 

 

한 도시 안에서도 동네마다 평균 기대수명이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이야기했다. 그런데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심리학과 그레고리 밀러 교수팀이 2016년 국제 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한 논문에는 좀 더 구체적이고 훨씬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거주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주민들의 장내 미생물 분포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실제로 가능했다. 시카고 거주 성인 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분석 결과에서 이른바 ‘부자 동네’, 소득과 학력 수준이 평균적으로 높은 동네일수록 장내 세균의 다양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자 동네 사람들의 장에는 동물성 지방 섭취가 풍부할 때 더 왕성해지는 박테로이데스가 많은 반면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를 할 때 많아진다는 프레보텔라는 적었다.

 

“부자 동네에 살면 건강하고 가난한 동네에 살면 사망률이 높아진다”라는 말은 허술한 이분법이거나 결과론에 가까워 보인다. 연구팀도 장내 미생물 분포가 거주지에 따라 달라지는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거주지 환경이 거주자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하다.

 

‘거주지의 환경’이라는 모호한 말속에는 강력범죄율, 대기오염, 운동할 수 있는 녹지나 공원의 유무, 신선식품을 구입할 수 있는 가게, 안전한 보행로, 거주 중인 집의 습기와 곰팡이, 냉난방, 수도, 소음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는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건강불평등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사례다.

 

 

 

 

가난할수록 술 때문에 아프다

 

 

구소련이 붕괴하고 1990년부터 10년간 러시아 성인 남성들에게 일어난 일. 기존 대비 400만 명 이상이 추가로 사망했다.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폭음을 꼽았다. 폭음으로 인한 돌연사, 사고사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400만 명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보드카를 물처럼 마시는 러시아인”이라고 혀를 차기에는 너무 어마어마하다. 구소련이 무너지자 러시아 GDP는 바닥을 쳤고, 일자리를 잃은 남자들은 술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이 경우 알코올중독을 개인의 문제로 볼 수 있을까?

 

미국과 영국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알코올을 더 소비하는 반면, 음주로 인한 입원과 사망 비율은 사회적 지위가 낮을수록 높다.

 

즉, 음주량보다 ‘술을 마시는 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매일 바에서 와인을 반 병씩 마시는 사람보다 1주일에 한 번 금요일 밤에 만취하는 사람이 마시는 술의 양은 적을지 몰라도 건강 면에서는 훨씬 위험하다.

 

한국 역시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200만 명에 달하고, 성인 남성의 25%는 알코올 의존을 경험한다.

 

 

 

 

당신의 비만이 당신의 책임만은 아니다

 

 

흔히 “뚱뚱한 사람들은 음식에 대한 자제력이 없고 게으르다”라고 여긴다. 마치 ‘뚱뚱해지기로 선택’한 사람들처럼 말이다. 정말 그럴까?

 

오늘 저녁에 뭘 먹을지, 얼마나 먹을지, 운동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개인이고 동일한 양을 먹어도 쉽게 살이 찌는 체질과 그렇지 않은 체질은 그 개인의 유전적 요인이다. 그러나 “오늘 저녁에 뭘 먹지?” 하며 떠올리는 보기가 (1) 빅맥 (2) 페퍼로니 피자 (3) KFC (4) 감자칩이 전부라면 그것은 환경적 요인이다.

 

영국 의학 학술지 <랜싯>에 발표된 연구 결과는 불평등한 사회가 구성원의 비만에 미치는 영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연구는 10년 내에 미국 인구의 절반이 비만이 될 것이며, 2030년까지 인구 4명 중 1명이 중증 비만이 될 것이라 경고한다.

 

특히 흑인 성인(31.7%), 연 소득 5만 달러 미만의 저소득층(31.7%)이 중증 비만 위험도가 가장 높았고, 1위를 기록한 미시시피주는 비만율이 무려 50%에 달했다. 최근 20년간 미국인들이 단체로 ‘뚱뚱해지기로 선택’한 게 아니라면 이런 결과는 우연이 아니다.

 

생수보다 싼 탄산음료, 채소보다 저렴한 가공식품, 패스트푸드와 관련 있다. 고소득 국가에서도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과체중과 비만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가구에서 아동 비만이 증가하는 현상이 이를 뒷받침한다.

 

 

기획 신윤영 일러스트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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