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대가, 정위스님의 자수로 하는 마음공부

기사 요약글

서울 봉천동 관악산 자락에 아담한 절 길상사가 있다. 그곳엔 차 좋아하고, 소박한 밥상을 알리고 수 놓길 즐기는 정위스님이 산다.

기사 내용

 

세상일 마음대로 안 되는데
수라도 내 맘대로 놓아야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로 누리는 일상의 아름다움
무명 위에 꽃 수를 보며 마음공부를 하다

-<정위 스님의 자수 정원>(브.레드) 중에서

 


길상사는 낙성대 인근 빌라촌 골목의 꼭대기에 있었다. 외관은 평범한 빌라였지만 입구에 도자기로 빚은 물고기 우편함이 뭔가 특별한 공간임을 암시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예상대로다. 마당에는 도자기 조각이 모자이크된 도벽이 눈을 사로잡는데 도예가 변승훈의 작품이다. 법당이 있는 실내는 정갈했고 곳곳에 고미술품이 전시돼 있어 작은 미술관처럼 보였다.


이곳의 주지 정위 스님은 길상사의 지하 공간 지대방에 있었다. 스님이 손님을 맞는 찻집이자 수 놓는 작업실이다. 스님이 내려준 차를 마시며 벽에 전시된 자수 작품들을 살폈다. 한두 가지 색으로 무명천에 들꽃을 수놓았는데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다. 정위 스님은 “자연의 모습을 요란하게 담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꽃을 수놓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자연의 색을 무척 좋아해요. 특히 자연의 빛이요. 꽃이나 잎이 자연의 빛을 머금고 있으면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그 자연의 모습을 자수로 표현한 것이지요.

 

 

일상의 발견을 수로 표현하네요.

 

 

아침에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합니다. 주로 마당에서 서성거리며 풀도 뽑고 꽃도 보면서요. 내 삶의 영역에 있는 생명을 키우며 그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연에서 발견한  소재로 수를 놓고요.

 

 

자수를 따로 배운 적이 없다고 했는데, 타고난 손재주가 있었나 봅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손재주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저도 손이 둔한 편입니다. 또 자수를 배우러 오는 분들은 기술을 가르쳐주길 원하는데, 저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에요. 그럼에도 제가 수를 놓을 수 있는 건 자수가 손가락으로 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수강생들에게 어떤 걸 가르치나요? 

 

 

기술보다 감성이 우선입니다. 다만 감성은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에요. 그래서 꽃을 많이 보라고 주문합니다. 일상에서 감성을 키우라는 뜻이지요. 한번 보면 안 보이는 것이 두 번 보면 보이잖아요. 세 번 보면 또 다른 면이 보이고요. 그때마다 꽃의 느낌도 다르고요. 감성은 남이 가르쳐줄 순 없어요. 자기가 보고 느껴야 해요. 

 

 

자수는 나와 주변을 살피는 일이네요

 

 

꽃도 위에서 볼 때와 아래에서 볼 때 다르게 보이잖아요. 똑같은 상황인데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이 재미있어요. 살핀다는 걸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곁에 두고 오래 보면 됩니다. 가만히 보면 꽃도 잎도 나뭇가지도 모두 다르게 생겼고 그 선과 색에 저마다의 맛이 담겨 있어요. 그 맛을 수로 옮기는 겁니다. 이렇게 보는 재미를 느끼면 어느새 자수 실력도 쌓이게 됩니다.

 

 

 

 

작품을 보니 붉은색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려서부터 주홍색을 좋아했어요. 우연의 일치지만, 티베트 불교에서 노란색은 지혜를 이야기하고 붉은 색깔은 자비를 이야기하지요. 재미있는 건,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색, 자기를 닮은 색을 쓴다는 겁니다. 자신의 심리상태가 색으로 표현되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한 분은 유난히 보라색 계통의 색만 사용했는데, 알고 보니 우울증을 겪고 계셨지요. 그분은 다른 색으로 사용해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받았지요.

 

 

자수를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색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너무 많은 색을 사용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를 만드는데 세 개 이상의 색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지요. 그리고 색을 쓸 때는 과감하고, 너무 세밀하게 수를 놓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꾸 넣으려고 하지 말고 비우라는 것이지요. 삶도 그렇지만 자수도 단순한 게 더 아름다울 때가 많습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도 자수로 만들어 사용하나요?

 

 

작가가 되려고 자수를 배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자수는 일상에 적용하기 좋은 취미지요. 저도 이불, 옷, 컵 받침 등을 직접 만들어 사용합니다.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비우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 사용하겠다는 생각으로 배우면 훨씬 쉽게 자수와 친해질 수 있을 겁니다.

 

 

 

자수로 수행하는 것 같습니다.

 

 

수행이라고 표현하긴 힘들지만 수는 잡념을 떨치기 좋은 작업이죠. 한땀 한땀 집중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고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는 걱정도 사라지고요. 또 사람의 순수한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가령 옛 자수를 따라 놓다 보면 거기에 담긴 옛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어르신의 장수를 기원하며 국화를 수놓고, 부귀영화를 바라며 목단을 완성했던 순수한 마음에 가닿는 것이지요.

 

 

삶이 답답해서 자수를 배우러 오는 분들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인생 상담도 하나요?

 

 

조언은 안 하고 들어주기만 합니다. 그런 분들은 누군가 들어주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커피 마시기 싫은 사람에게 ‘너 커피 마시러 오라’고 하면 스트레스잖아요. 괜히 그 사람의 말에 끼어들어 “감나라 배나라”하지 않습니다.  

 

 

 

 

스님은 삶에서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선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쉽게 말해 나대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린 비구니 시절, 수원 봉녕사에서 수행했는데 당시 묘엄 스님께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항상 머리를 두세 번 만져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참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거든요. 
 

 

기획 이인철 사진 이대원(스튜디오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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