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소운예방 부부의 목공예로 이룬 귀촌과 재능기부의 꿈

기사 요약글

충남 서천, 금강을 바라보는 너른 들판 한편에 있는 작은 목공방 하나. 5년 전 이방인이었던 부부가 묵묵히 나무를 깎던 이곳이 지역 주민 모두의 사랑방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기사 내용

 

 

 

“목공방 이름은 두 분 성함을 따라 지으신 건가요?”

 

‘소운예방’이라는 이름의 목공방에서 박용운(64), 김소연(54) 부부를 만나 처음으로 이렇게 묻자 긍정의 대답 대신 싱그러운 웃음이 돌아왔다. 인사와 함께 건네받은 명함에는 남편의 이름 옆에 ‘목공장’이라는 직함이, 아내의 이름 옆에는 ‘예방장’이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남편은 나무를 깎고, 아내는 그 나무 위에 그림을 그린다. 2015년 이 마을 이 자리에 작업실을 마련한 후로 부부의 손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매일 조금씩 늘어갔다. 연고도 없는 이곳에 농사도 아닌 목공예로 자리잡은 사연이 궁금했다.

 

 

 

 

좋아하는 일을 좇아 자연스레 귀촌

 

“계획을 가지고 한 귀촌은 아니었어요. 일과 생활 등 여러 상황이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이끌었지만, 목공예로 자리잡게 될 줄은 몰랐죠. 둘 다 좋아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려다 보니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부부는 남편의 직장이 있는 경기도 용인에 살았다. 2005년에 직장이 장항(충남 서천군)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남편 혼자 군산에 내려와 1년을 지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홀로 지내게 되자 취미를 찾았고, 기계설계학을 전공한 좋은 손재주를 살려 목공예를 시작했다.

“1년 후에 온 가족이 이곳에 내려왔고, 남편은 여기서 정년퇴직을 했어요. 다시 도시로 올라갈까 하다가 좋아하는 목공 일을 하면서 여기서 정착하는 게 어떨까 싶었죠. 도시로 나가봐야 또 고생만 하니까 여기서 노후생활이나 즐기자 하는 마음이었어요(웃음).”

목공예는 남편만의 취미생활이 아니었다. 미술 전공자인 아내 소연 씨 역시 손재주라면 남부럽지 않았고, 군산에 정착한 후 부부는 함께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퇴직 후 목공예가 점차 본격적인 일이 되자 작업실이 필요했고, 군산 근처의 한적하고 저렴한 곳을 물색하다 지금 이곳 서천군 마서면 도삼리로 오게 됐다.

 

 

 

 

나무로 마을에 녹아들다

 

부부는 마을에서 작은 건물 하나를 임대해 목공예 작업실로 썼다. 마을 사람들은 젊은 외지인 부부가 들어와 나무를 깎는 모습이 생경했다.

“뭐하는 사람들인가 싶었을 거예요. 작업하다 보면 문밖으로 마을 이장님부터 할머님들까지 꼭 한 번씩 기웃하시며 ‘여긴 뭐하는 데냐’고 물어보셨으니까요(웃음).”

“경계의 눈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워낙 작은 마을이기도 하고, 어른들 입장에서 우리는 완전히 이방인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작업실에서 온종일 나무를 만지고 있으니 얼마나 이상했겠어요.”

부부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로 했다. 고장 난 문을 고쳐주거나, 무료로 가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조금씩 마을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작업실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마을 어른들은 상이며 의자며 생활 중 고장 난 집기를 들고 부부를 찾아왔다.

“어느 날 동네 어르신이 TV대를 하나 만들어달라고 오셨어요. 그래서 TV대는 재료비나 가격이 좀 나간다고 말씀드렸더니 ‘비싸면 얼마나 비싸’하면서 3만원을 주고 가버리시더라고요. TV대는 아무리 싸게 만들어도 40만원 선이거든요(웃음). 둘이 상의 끝에 그냥 만들어 드리기로 했어요. 좋은 재료로 정말 정성스럽게 만들어 완성된 TV대와 3만원을 함께 돌려드렸어요. 어르신께서 써보시더니 정말 튼튼하니 잘 만들었다 하시면서 가을에 직접 수확한 고구마 3박스를 가져다주셨어요. 이런 일들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서로의 마음이 허물어진 것 같아요.”

마음을 연 주민들이 부부에게 선의를 베풀었다. 마을의 유지가 새로운 작업실을 찾는 부부에게 매물로 나온 좋은 땅을 소개해줬고, 부부는 이 땅을 사 새로운 작업실과 집을 짓기로 했다. 작업실을 짓는 동안 주민들은 부부에게 마을회관 2층을 내줬다. 부부는 거저나 다름없는 월세를 내고 마을회관에서 1년을 지냈다. 2015년에 완성된 작업실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소운예방이다. 그렇게 부부는 이 마을에 완전히 정착했다.

 

 

 

 

이제는 나눔으로, 재능기부가 시작되다

 

작업실 한편에 있는 화이트보드 달력에 눈이 갔다. 부부의 강연 일정으로 빼곡한 달력에는 빈칸이 없을 정도다. 부부는 현재 서천군 내 초등학교 다섯 군데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목공예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일정만 이 정도이고, 매일 저녁 진행되는 마을 수업 등을 더하면 말 그대로 숨돌릴 틈이 없다.

“시작은 주민들과 만든 동아리였어요. 서천 주민 중 목공을 배우고 싶은 분들이 모여 목공 동아리를 만들었고, 우리 작업실에서 주 1회, 2시간씩 목공을 배웠어요. 순수하게 재능기부였어요. 당시에는 저희도 취미생활 정도로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동아리가 지역사회에 알려지면서 단체나 학교 등에서 연락이 왔어요. 우리도 아이들을 위해 학교 수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죠.”

도시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소연 씨는 이전에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위해 무료로 미술 수업을 진행했을 만큼 재능기부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남편인 용운 씨 역시 퇴직 후 사회 환원 차원의 교육에 관심이 있던 터라 부부는 이를 좋은 기회로 여겼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목공예를 가르치다 보니 이 분야야말로 우리에게 딱 맞는 일이라고 느껴졌어요. 가르치는 게 너무 재미있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을 느껴요. 우리도 더 잘하고 싶어서 나무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하게 돼요.”

부부의 목공예 체험학습 수업은 이 지역 학부모들 사이에 최고 인기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이와 함께 손잡고 작업실 견학을 오기도 한다. 인기의 비결은 단순히 목공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부부의 남다른 차별화 포인트 덕분이다.

“기존 체험학습 결과물은 만들 때뿐이지 아이들이 막상 집에 가지고 오면 다 버리게 된다는 학부모들의 의견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일회성이 아닌 실제로 쓸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로 했어요. 하루에 하나 뚝딱 만들어서 가져가는 게 아니라, 한 달에 하나를 만들더라도 제대로 만들게 하자는 거였죠.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의자도 만들고, 도마도 만들고, 상도 만들었어요. 그렇게 만든 걸 집에 가져가니까 엄마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실제로 집에서 쓸 수도 있고, 아이들도 뿌듯해하니까요. 요즘엔 어떤 걸 만들게 하면 좋을지 연구도 많이 해요. 아이들이 ‘다음엔 뭐 만들어요?’하고 물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2라운드의 ‘생계’가 된 목공예 재능기부

 

어느덧 서천군에서 유명인사가 된 부부를 찾는 손길이 많아졌다. 학교 체험학습을 바탕으로 인근 귀농귀촌센터 등 여러 단체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온다. 아무리 재능기부지만 이 정도면 본업이 된 셈인데 생활 유지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사실 수입은 외부에서 하는 강연 수입밖에 없어요. 목공 동아리나 우리 공방에서 주민들과 하는 수업은 목재값만 받으니까요. 강연 수입도 회당 몇만원 정도라 수업이 아무리 많아도 큰돈은 안 돼요. 그런데 우리는 시작부터 이 일을 돈 벌자고 한 일이 아니라 지금도 큰 욕심은 없어요.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게 기쁨이죠.”

“도시는 나가면 돈인데 농촌은 그렇진 않아요(웃음). 여기서 살아보니 한 달 생활비가 100만원이면 충분하더라고요. 강연 수입은 평균적으로 월 300만원 정도예요. 평일은 최소 매일 관내 학교에서 수업하니까요. 300만원 수입 중에 월 재료비 100만원을 제하면 보통 200만원 정도가 순수익이라고 봐야겠죠. 그걸로 공과금 내고 식비 지출하고 해도 생활하기엔 충분해요.”

물론 개인연금 등 미리 준비한 퇴직 자금도 있지만, 부부는 목공예가 퇴직 후 자신들의 생계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좋아하는 일을 계획성 있게 하다 보니 좋은 기회가 생겼고, 그래서 앞으로도 이 일을 더 잘하고 싶단다.

 

 

 

 

가장 좋은 귀촌 준비는 ‘살아보는 것’

 

정착 과정에서 (당연히) 목공예만 한 것은 아니다. 부부는 목공예를 배우는 한편 타지에 정착하기 위한 준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남편인 용운 씨는 지역 농업기술센터에 있는 농업대학을 다녔다. 3년 동안 꾸준히 학교에 나가면서 많은 귀농인을 만났고, 서로 도움이 될 만한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인연으로 서천 귀농귀촌인협의회와 귀농귀촌연구회 등 지역 단체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 수 있었다. 소운예방의 목공 동아리도 이 사람들의 요청으로 만든 것이다. 퇴직 후 도삼리 마을에 목공방을 짓고 정착하기까지 최소 5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농촌에 오기 전에 사람들은 대개 살 집을 먼저 구하는데, 제 생각에 집은 2~3순위인 것 같아요. 내가 살 터전을 파악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해요. 주민들의 특성, 마을의 생리를 알아야 하죠. 우리 부부는 운이 좋게도 마을회관에 살면서 이 마을을 파악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요즘에는 농업기술센터 같은 기관에서 제공하는 집도 있더라고요. 그런 체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준비하다가 ‘이제는 여기서 스스로 살 수 있겠다’ 싶을 때 집도 짓고 본격적으로 정착하는 거죠. 준비는 최소 5년 정도 해야 할 것 같고, 일을 너무 크게 벌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요(웃음).”

 

 

 

 

이방인에서 파수꾼으로

 

부부는 줄곧 지금의 생활에 ‘너무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생계가 되고,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 됐으니 말이다. 부부는 이 마을에서 받은 것을 어떻게 돌려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그리고 이 고민이 앞으로 이들이 할 일을 이끌고 있다. 부부는 목공예로 마을과 서천을 널리 알릴 꿈을 꾸고 있다.

“우리 공방의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서천군에 목공 학교를 세우고 싶어요. 서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곳에 왔을 때 누구나 목공을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죠. 목공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서천을 찾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마을의 공동 시설을 만드는 제작소가 될 수도 있고요. 재작년부터 조금씩 준비는 하고 있어요. 요즘 우리가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이에요.”

부부는 서천군에서 진행하는 지역 아이디어 상품 공모전에 수년 전부터 꾸준히 참가해 왔다. 우리 지역을 알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일이라 아무리 바빠도 공모전 참가는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참가 때마다 입상하기도 했다. 직접 만든 상품을 판매해서 생긴 수익은 모아서 마을에 기부할 생각이다. 불과 5년 전 마을의 이방인이었던 이들 부부가 이제는 지역 문화의 파수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획 김병주 사진 박충열(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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