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바른손 카드를 아시나요? 가업 잇는 바른손 사람들

기사 요약글

아버지가 창업한 회사를 자녀들이 이어받는 가업 잇기. 2대에 걸쳐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50년째 이어가고 있는 바른손家 사람들을 소개한다.

기사 내용

 

 

50년 디자인 브랜드를 잇는 바른손 사람들

 

 

“학창 시절 바른손 편지지로 연애편지 한 번 안 쓴 사람 없을 걸요?” 바른손카드에 대해 묻자, 어느 중년이 건넨 말이다. 바른손은 연하장, 기념 카드, 편지지를 비롯해 다양한 문구로 국민적 사랑을 받아온 브랜드. 특히 국내 최초의 디자인 회사로 캐릭터, 팬시라는 용어를 보급하며 그 시절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키워줬다. 박영춘 회장은 최근 바른손 50년 일대기를 기록한 책 <0.1cm로 싸우는 사람>(몽스북)을 출간했다. 이 책은 그의 자서전이자 한 창업가의 경영 철학이 담긴 기록물이다. 어느덧 여든, 현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강원도 인제의 산속에 집을 짓고 자연과 호흡하며 살고 있었다. 그는 파킨슨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말이 어눌한 것을 빼고는 정정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아이패드로 선곡해 듣는 모습에서는 삶을 즐기는 여유마저 묻어났다. 이날 인터뷰에는 장녀 박소영 비핸즈 대표, 삼남 박정식 바른컴퍼니 대표가 함께했다. 가업을 이어받은 자녀들이 몸이 불편한 아버지의 생각을 읽어줬다. 

 

 

 

 

최초로 한국 사회에 디자인을 심다

  

 

박영춘 회장이 지난 50년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꿈같이 했지.” 디자인이라는 단어마저 생소하던 시절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하며 디자이너로, 경영자로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아부은 그의 삶을 읽을 수 있는 말이었다.

그는 자신의 경영 철학을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길게 표현하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제품으로 만들어 세상에 기여하는 기업’이 바로 그것이다. 장녀인 박 대표는 1990년대 중반에 제작한 ‘21세기 아이들은 디자인을 먹고 자랍니다’라는 바른손의 광고 포스터를 예로 든다.

“이미 오래전에 디자인 시대를 정확히 예견한 것이지요. 이런 경영 철학은 바른손 50년 역사에 잘 드러나지요. 춘천에서 중고등학교에 배지를 만들어 납품하던 집안에서 자란 아버지는 대학을 졸업하자 곧장 을지로로 향했어요. 제조업에서 자신만의 사업을 하겠다고 구상했고, 일본에서 금속조각 기계를 들여와 금속조각공으로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학교에서 손꼽히는 화가였던 그는 남다른 미적 감각을 뽐내며 다섯 달 만에 을지로 인쇄 업계에서 금속조각공으로 일등이 됐다. 어느 정도 사업 기반을 닦자 그는 바른손카드를 설립했고 을지로 인쇄 업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다.

“‘바른손’이라는 브랜드는 아버지가 문구업체를 생각하기 전에 지은 이름이었어요. ‘바르게, 정직하게, 정의롭게’라는 의미에 제조업에서 중요한 손의 의미를 더한 겁니다.” 기술에 디자인을 접목한 생일 카드, 감사 카드, 청첩장 등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바른손카드는 승승장구했다.

“아버지가 백화점에 가는 이유는 최신 유행을 읽기 위해서였지요. 나중에는 해외 박람회들을 보러 다니며 자기 계발을 계속하신 겁니다. 저희에게도 영어, 수학을 공부하라는 이야기는 안 했지만, 미술을, 디자인을 공부하라고 했어요. 디자인이 세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려주신 겁니다. 심지어 회사 디자이너들에게도 해외 박람회를 다녀오도록 지원했어요. 보는 눈이 올라야 좋은 디자인 제품이 나온다고 생각한 겁니다.”
 

 

기업가정신을 물려주다

 

 

 

그러나 승승장구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성장을 이어가던 바른손카드는 큰돈을 빌려 사업 규모를 확장하던 중 자금 흐름에 압박을 받고 1981년 첫 번째 부도를 맞는다. 위기의 순간 그를 구한 것은 역시 경영 철학이었다. 채권단은 바른손카드의 성장세가 대단했던 만큼 그가 개인 재산을 축적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이익의 대부분을 회사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해왔기에 축적한 부동산이나 현금이 거의 없었던 것.

 

오히려 채권단은 바른손카드와 바른손팬시로 재도약을 꾀할 때 자금을 지원하며 도왔고, 그는 바른손팬시로 또다시 소비자들을 매료시켰다.

“아버지가 강조하는 말씀이 있어요. ‘볍씨가 밥이 되기까지 여든여덟 번 이상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손길을 놓치면 충실한 쌀이 되지 못하고 밥이 되지 못한다. 물건을 만들 때 어느 한 과정도 소홀히 하지 않고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죠.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인데, 실제로 작은 실수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한 분이었어요. 디자인하우스의 이영혜 대표는 아버지를 ‘0.1cm로 싸우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정도예요.”

장인정신, 책임 의식이 부가가치로 연결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박 회장은 은퇴 이후 회사 일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 가업을 이어받은 자녀들의 몫이자, 스스로 해결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다들 잘하고 있어요”라며 자신이 일군 사업을 이어준 자녀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반면 가업을 계승한 자녀들은 잘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아버지가 평생 이룩한 성과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도 크다.  

“바른손 하면 다들 아는 브랜드잖아요. 중년들에겐 어릴 적 추억이 담겼고요. 학창 시절 바른손 편지지로 연애편지를 써서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참 많이 들었어요. 이렇게 사랑받아온 브랜드를 이어가는 건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지요. 책임감도 크게 느끼고요. 아버지가 해온 그 이상은 못하더라도 아버지의 경영 철학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버지께서 직간접적으로 저희에게 물려주신 위대한 유산이잖아요.”
    

 

기획 이인철 사진 박충열(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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