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기록한 퇴직 아빠의 꿈, ‘몽마르트 파파’ 父子 스토리

기사 요약글

미술교사로 평생을 살아 온 아버지 민형식 씨가 퇴직 후 그동안 마음 속에 담아둔 꿈을 슬며시 꺼냈을 때 아들은 결심했다. 아버지 꿈에 날개를 달아 드리기로. 아버지가 몽마르트에 가서 그림을 그리기까지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몽마르트 파파> 속 두 주인공의 진짜 이야기다.

기사 내용

 

 

 

아들이 물었다. “앞으로 뭐 하실 거에요, 아버지?” 

아버지 왈, “다 계획이 있지.” 

 

 

1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몽마르트 파파>는 우리 주변 어느 가정에서나 볼 법한 한 가장의 퇴직 이후의 삶을 다루고 있다. 비슷한 류의 영화가 많지만 유독 <몽마르트 파파>에 호평이 쏟아지는 이유는 영화적 장치를 사용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감동이 생생하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퇴직 이후 무엇을 할 것이냐는 아들의 물음에 아버지는 쉽게 대답 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말을 피한다.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 오랜 꿈에 대한 수줍음과 망설임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매력이 짙어진다. 자연스럽게 드러난 아버지의 꿈은 바로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몽마르트 화가가 되기 위한 준비부터 실제 몽마르트에 도착해 감격에 젖은 아버지, 그리고 그 모습을 카메라로 지켜보는 아들과 어머니의 모습은 동시대를 사는 누구에게라도 특별한 감동을 선사할 수 밖에 없다. 

 

 

 

 

“몽마르트 언덕은 과거 배고픈 예술가들의 집합소였어요”

 

세계 수많은 명소 중 왜 하필 몽마르트 언덕이었냐는 질문에 민형식 씨는 예술가로서의 작은 열망을 내비쳤다. 과거 파리는 춥고 배고픈 화가들이 모이는 도시였다. 동시에 가난하지만 열정만은 풍요로웠던 예술가들의 성지 같은 곳으로 몽마르트 언덕은 세계 유수의 예술가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이다. 민형식 씨는 그곳에서 옛 예술가들이 바라본 풍경을 똑같은 시선으로 보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파리, 특히 몽마르트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곳이에요. 저도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 프랑스에 갈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교직에 몸 담고 있었고 가족이 있어 차마 갈 수가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항상 마음 한구석에 몽마르트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퇴직 후 오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조용히 어학원에 다니면서 준비하기를 몇 개월, 서울에 살던 아들이 집에 와 아버지의 은퇴 후 계획을 물어왔다. 영화 속 명대사로 꼽히는 “다 계획이 있지”가 바로 이 대목. 아들 민병우 감독은 아버지한테 질문을 할 때만 하더라도 영화로 만들려는 생각은 없었다. 

 

“사실 저는 극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 다큐는 관심 없는 분야였어요. 그렇게 제 꿈만 좇아서 지내다가 어느 날 아버지의 퇴임이 다가왔고, 여느 다른 자식들처럼 가볍게 무엇을 할 계획인지 여쭌 거였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답을 안 해주시는 바람에 호기심이 생겼고, 이걸 추적하는 다큐를 찍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다가 시작하게 됐어요.” 

 

아들이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꿈 실현 여정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사실 몽마르트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려면 프랑스 정부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거기서 어려움이 있었던 것. 아들은 프랑스어에 능통한 지인에게 부탁해 서류를 꾸렸고, 항공권 등 구체적 단계를 밟았다. 그리고 마침내 서류 심사에 통과하고 프랑스에 도착해 몽마르트 언덕에 서는 날이 왔다. 

 

“파리 시청에 가면 숫자가 쓰여진 명패 같은 표식을 줘요. 그게 제가 그림을 그릴 구역 표시인거죠. 그걸 들고 몽마르트 언덕에 갔는데 가슴이 막 뛰고 말도 안나오더라고요. 그렇게 매일 출퇴근하듯 오가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한 달 동안 파리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고 아들은 시종일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카메라 속 아버지의 모습은 어땠을까? 

 

“관찰자의 시점으로 보는 아버지는 그동안 제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어요. 사실 아버지가 미술선생님이긴 하지만 제가 미술을 하지 않는 이상 관련한 대화를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촬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가진 미술에 대한 철학을 듣게 됐어요. 몰랐던 예술가의 면모를 볼 수 있었던 동시에 분야는 다르지만 제가 하는 영화도 예술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귀감이 될 만한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저도 자극을 받는 계기가 됐죠.”

 

 

 

 

아버지의 꿈, 몽마르트 파파로 완성되다

 

파리에서 한 달간 머물며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민형식 씨는 한동안 ‘몽마르트 앓이’를 했다. 창문 너머로 몽마르트 언덕이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도 여러 번. 이 무형의 그리움과 사랑은 아들이 완성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실체를 갖췄다. 

 

“진짜 개봉까지 할 줄 몰랐어요. 파리에서 촬영한 시간을 따져보니 300분이 조금 안된다 하더라고요. 그걸 하나하나 보고 편집한 후 작품으로 완성해서 보여주는데, 묘한 감동을 받았어요. 제 모습을 화면 속에서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영화를 보신 분들이 감동받았다고 평을 남겨주시는 데 좋기도 하고, 그림을 더 열심히 그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몽마르트 언덕의 화가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배우까지 됐다는 그는 무엇보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 더 커졌다고 말한다. 아들 또한 감독으로서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한 숙제를 받았다고. 그러면서 부모님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달라졌다고도 덧붙인다.

 

“극영화를 오래 공부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다큐 영화를 찍으면서 하나의 터닝 포인트를 만난 기분이었어요. 극영화의 생명은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파리에서 촬영하다 보니 제가 부모님을 그동안 단순한 캐릭터로 바라봤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잔소리 많은 어머니, 그저 밝고 긍정적인 아버지 정도로요. 그런데 카메라를 들고 관찰자 시점으로 담다 보니 부모님이 이렇게 입체적일 수 없는 거예요. 가령 어머니는 잔소리를 하시지만 그 안에 대단히 현실적인 가족의 상황과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었고, 늘 유쾌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깊이 있는 철학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요. 가족 관계, 그리고 제 일에도 많은 도움이 됐던 시간이었습니다.”

 

 

 

 

평생 작은 꿈 한 조각을 품고 살다 퇴직 후에야 비로소 꺼내놓은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기록한 아들. 서로를 든든하게 응원해주는 부자는 각자 퇴직을 앞둔 중년에게, 그리고 그런 부모를 둔 자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누구든지 퇴직을 앞두고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이 있을 겁니다. 주어진 생활과 환경이 모두 다르지만 무엇이든 망설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일단 시도하면 그게 무엇이든 삶에 활력소가 돼요. 주저하지 마세요.”(아버지)

 

“보통의 자식들은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자랍니다. 부모님의 꿈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죠. 요즘 시대에 부모님들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디지털에 약하기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버지가 퇴직 후 바로 파리로 갈 수 없었던 것도 검색만 하면 쉽게 찾을 수 있던 정보에 뒤쳐져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검색을 한 것 밖에 없어요. 자녀들이 부모세대에게 관심을 갖고 약간의 도움만 보탠다면 부모님이 앞으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훨씬 즐겁지 않을까 합니다.”(아들)

 

 

기획 서희라 사진 박충렬(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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