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 10년차 도시농부로 사는 박선홍 씨의 도심 텃밭 생존기

기사 요약글

잘나가던 식품 회사를 그만두고 도시농부의 삶을 택한 박선홍 씨. 그녀는 10년 동안 텃밭을 가꾸면서 직접 키운 채소로 디저트를 만드는 요리 클래스까지 열고 있다.

기사 내용

 

 

연구원에서 도시농부가 되기까지

 

박선홍 씨는 처음부터 도시농부를 꿈꾼 건 아니었다.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스위스 호텔학교에서 식품 조리법 과정을 수료하면서 식품 연구소에 입사했지만, 우연히 접한 푸드스타일링에 매료되어 새로운 삶을 준비하게 됐다.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 어시스트부터 시작해 전통요리를 비롯한 각종 세계 요리들을 하나둘씩 섭렵해 갔고, 요리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건강한 음식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손수 키운 채소들을 재료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고, 대안으로 선택한 삶이 도시농부다. 그녀는 올해로 도시에서 10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Q. 텃밭은 얼마나 일구세요?

 

주말농장에서 10평 남짓 되는 텃밭을 가꾸고 있어요. 처음에는 백화점에서 운영하는 텃밭을 신청했어요. 일반 주말농장하고 제휴를 맺어서 저렴하게 시작할 수 있었죠. 그런데 제약이 많았어요. 겨울에는 무조건 쉬어야 했거든요. 그리고 1년마다 재신청을 해야 해서 한곳에서 고정적으로 농사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1년 내내 할 수 있는 텃밭을 찾다가 개인이 하는 주말농장을 찾게 된 거예요. 물론 임대비용이 2배 정도 비싸요. 1년에 5평당 5만원 정도 해요.

 

Q. 주말농장은 어떤 기준으로 골랐나요?

 

휴면기 없이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곳을 물색했어요. 보통 개인이 하는 주말농장은 1년 임대료만 내면 1년 내내 관리할 수 있었어요. 다음 해에 재계약해도 자리를 옮길 필요 없어 안성맞춤이었죠. 그 다음으로 집과 가까운 곳을 골랐어요. 접근성이 좋아야 자주 가면서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Q. 주로 어떤 작물을 재배하세요?

 

계절 별로 다양해요. 다양한 작물을 조금씩 심는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죠. 지금처럼 겨울에는 양파, 마늘을 심고 봄에 날이 풀리면 상추, 치커리 같은 잎채소와 감자, 당근, 래디시를 심어요. 여름에는 토마토, 고추, 콜라비, 브로콜리를 심고 가을에는 배추, 무, 시금치, 쪽파를 심습니다. 

 

Q. 초보 도시농부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물은요?

 

처음에는 다들 큰 기술 없이도 잘 자라는 잎채소(상추, 치커리)로 많이 시작해요. 그렇다고 너무 쉬운 것만 선택하지 말고, 수확하기 쉬운 작물들을 조금씩 다양하게 심어보는 것을 추천해드려요. 잎채소는 몇 주 안 돼서 자라나기 때문에 양이 많으면 감당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잎채소 조금, 요리할 때 자주 사용하는 파 또는 부추 조금 이런식으로 심으면 여러 종류의 작물을 수확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Q. 텃밭을 일군다는 게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텃밭을 운영하면서 만난 최대의 난적은 잡초였어요. 처음에는 무작정 뿌리째 뽑아냈는데, 워낙 힘이 세고 단단해 저 혼자서 그 많은 잡초를 뽑는 것은 무리였죠. 장마철에는 2주 정도 텃밭을 못 나갔는데 제 키만큼 자라 있는 잡초를 보고 그 자리에서 엉엉 울기도 했어요. 이제는 요령이 생겨 뿌리째 뽑지 않고 땅 위에 난 줄기만 잘라 발로 몇 번 밟아줘요. 그러면 잡초가 더디게 자랄 뿐 아니라, 뿌리가 땅속에 남아 토양 속에 공간이 생기면서 물순환을 원활하게 해주거든요.

 

 

Q. 텃밭을 가꾸다 지금은 요리 클래스까지 열게 되셨다고요?

 

푸드스타일리스트를 꿈꾸면서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로 다양한 요리를 배우고 연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베이킹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제가 빵을 좋아하는데 시중에서 판매하는 빵은 잘 못 먹어요. 먹으면 늘 소화가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해지거든요. 그래서 좋아하는 음식을 건강하게 먹기 위해 만든 것이 천연발효빵이에요. 천연효모를 직접 키워 버터, 계란, 우유를 넣지 않고 만든 빵이죠. 천연발효빵을 블로그에 올려 사람들에게 공유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만드는 법을 알려 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러면서 '천연발효빵 베이킹 클래스'를 열게 되었고, 직접 키운 채소로 디저트를 만드는 '채식 베이킹 클래스'도 운영하게 되었지요.

 

Q. 어떤 분들이 주로 클래스에 참여하나요?

 

연령대는 다양해요. 10대부터 많게는 70대까지 배우러 오는데, 집에서 스스로 건강한 식생활을 하고 싶으신 분들이 많이 오는 편이에요. 일반 빵보다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평소 밀가루 빵을 못 먹는 분들이 특히 좋아하세요. 밀가루나 달걀, 우유를 소화 못 하는 분들이 많은데 천연발효빵은 소화가 안 되는 재료를 넣지 않을 뿐 아니라 빵의 핵심인 천연효모가 장 활동을 활발하게 해주는 데 도움을 주거든요. 채식 베이킹 클래스는 의외로 남자분들도 많이 와요. 주로 카페를 운영하시는 분들이죠. 커피뿐 아니라 디저트도 카페의 중요한 요소가 된 덕분에 카페 사장님들이 많이 배우러 오는 거 같아요.

 

  

Q. 요리 클래스로 바쁠 텐데, 10년 동안 도시농부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노하우가 있나요?

 

텃밭을 진심으로 좋아해서 오랫동안 가꿀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텃밭에서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새싹이 움트고, 잎이 커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행복해요.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면 흙을 만질 기회가 없는데, 텃밭에서 흙을 만지다 보면 고민거리들을 완전히 잊은 채 오직 농사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도 힐링이에요.

 

Q. 은퇴 후에 나만의 텃밭을 가꾸고 싶은 분들에게 특별한 팁을 전수해 준다면요?

 

텃밭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마음먹은 일이 채소일지를 쓰는 것이었어요. 기록을 남기면 다음 해엔 분명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채소가 자라나는 과정을 블로그에 남기기 시작했죠. 그 과정에서 저처럼 텃밭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됐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여러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는 좋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됐어요. 텃밭과 요리에 대한 노하우가 쌓인 덕분에 오랫동안 텃밭을 관리할 수 있었고, 요리 클래스도 열고, 책도 낼 수 있었어요.

  

 

기획 우성민 사진 오충근

 

 

[관련 기사 보기]

 

>>씨앗, 모종과 씨름하며 연 매출 10억의 라벤더 농장을 만들기까지

 

>>귀농한 아버지 따라서 귀농한 아들, 식물원에 치유농장을 더했더니

 

>>한국에서 커피 농사를 짓는다면 믿으시겠어요?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