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 공예 공모전 대상! 경상도 상남자가 바느질하며 연 인생 2막

기사 요약글

10년 전 정년 퇴직한 김훈동 씨는 퇴직 이후 금남의 영역처럼 여겨지는 규방 공예를 통해 또 한번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기사 내용

 

김훈동 씨는 은퇴 12년 차, 이른 바 ‘베테랑 은퇴자’다. 대구에 있는 한 방송사 관리팀에서 30년 넘는 시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다가 퇴직한 그는 본격적인 은퇴자의 삶을 살면서 좀더 ‘적극적인 은퇴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젊은 시절보다 훨씬 바쁘게 산다는 그는 한 달의 절반을 상담 봉사, 반찬 배달 봉사 등 각종 봉사 활동을 하느라 여념 없고, 나머지 절반은 취미 생활을 하거나 모임에 참석하며 달력을 빼곡히 채운다. 그런 그의 삶에 조금 다른 향기가 배인 건 5년 전 어느 때처럼 반찬 배달 봉사 활동을 하던 날이었다. 

“반찬 배달을 하러 늘 다니던 골목에 들어섰는데 공방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들어가서 보니 규방 공예를 하는 곳이었어요. 수업을 하는 곳은 아니고 선생님이 작업실로 사용하는 곳이었는데, 제가 무작정 가르쳐달라고 했어요. 선생님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아저씨가 와서 갑자기 가르쳐달라고 하니 황당했을텐데 흔쾌히 시간 날 때 와서 배워보라고 하시더군요.”

 

 

 

한 땀의 정성

 

일주일에 하루,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순식간에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한번 시작하면 몇시간이고 자리에 앉아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천을 엮어 나가는 재미가 그 어떤 취미보다 보람찼다.

“한 땀이 모여서 하나의 작은 조각이 되고, 그 조각이 모여서 작품이 되는 과정에서 얻는 기쁨과 보람이 선물 같았어요. 바느질을 하다 보면 한여름에 에어컨이 꺼져 있어도 덥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집중을 하게 돼요. 근심이나 잡념이 사라지고 오롯이 하나에 몰두하는 매력이 있달까요?”

그렇게 쉼 없이 하다 보니 작품의 개수도 점차 늘어났다. 시작한지 4년 만에 10년 동안 공예를 해온 사람이 만든 작품 개수와 비슷할 정도였다. 그걸 본 선생님이 공모전에 나가보는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그렇게 나간 대회가 2017년 전국 규방 공예 공모전이다.

 

 

 

 

“전문가 과정을 배우거나 대회를 목표로 배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을 냈는데 덜컥 우수상을 타게 돼서 깜짝 놀랐죠. 그런데 뒤에서는 작은 논란이 있었더라고요. 수상자가 남자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 거죠.”

전통적으로 여성 공예가들의 영역이었던 곳에 60대 남성의 등장은 작은 파란이었다. 진짜 본인이 한 것인지 의심의 눈초리도 받았다. 오기가 발동한 그는 다음 대회를 준비했다. 한 땀의 정성에 힘을 실어 차근차근 준비한 결과, 지난 가을에 열린 '제8회 전국 규방 공예 공모전'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인 대상을 수상했다. 그간의 오해와 의심을 종식시키는 결과였다. 이제 모두가 그의 실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수상 이후 많은 분들이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시는데 저는 손사래칩니다. 배우는 학생일 뿐이고 작가는 과분하고 쑥스러워요. 주로 여자가 하는 걸 보다가 남자가 하니 좀더 관심을 가져주셔서 좋은 결과까지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은퇴 이후의 자존감에 대하여

 

그가 여성의 취미라는 선입견이 있는 규방 공예에 거침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건 특별한 자아존재감에서 기인한다. 퇴직 이후 오롯하게 자신을 위한 취미와 타인을 위한 봉사활동에 집중하면서 깨달은 건 사회는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라는 점이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고, 또 함께 변해가면서 작지만 자신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걸 느끼는 순간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이 희미해질 수 있었던 것.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때 성별이나 ‘내 나이에 그걸 어떻게’ 같은 편견과 선입견이 없어요. 은퇴 후에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젊은 시절보다 나이 들어 하는 활동이 더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제 친구들만 해도 퇴직 이후에 연락이나 모임을 줄이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밖으로 더 나갔어요. 소외되고 외로워지는 환경 속에서 사람들하고 관계를 많이 가질수록 노후에 올 수 있는 고독의 문제 같은 걸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 등산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기후변화나 미세먼지 문제에 관심이 가니 관련 강의도 나가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봉사 활동을 하면서 사회는 서로 도우며 발전하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저는 나이가 들수록 외부 활동을 늘리는 걸 적극 추천해요. 밖에서 얻는 기쁨과 보람, 행복의 감정이 정말 소중하거든요.”

 

 

 

그는 사회 속 적극적 참여자로 몸을 움직일 때 자신의 존재감이 좀더 진해지는 동시에 나이보다 젊게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청년의 열정을 품고 있는 그에게는 도전하고 싶은 꿈도 건재하다. 

“가능하다면 레스토랑에서 돈을 받지 않더라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음식과 와인의 궁합 같은 걸 배워보고 싶어요. 퇴직 전에 와인 공부를 많이 했는데 실행해 옮길 기회가 없었거든요. 또 제가 만든 공예 작품으로 작은 개인전을 열고 싶은 소망도 있습니다.”

 

 

기획 서희라 사진 이대원(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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