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퇴직 후 서점으로 연 인생 2막

기사 요약글

서점으로 2라운드를 보내는 삶.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로망이다. 그 꿈을 실현한 사례를 만나보자.

기사 내용

 

 

 

경기도 여주에는 특별한 서점이 있다. 책을 파는 서점이지만, 커피를 파는 카페도 되고, 음악회나 전시회가 열리는 문화공간도 되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강연장도 되고, 각종 모임이 이루어지는 모임 공간도 된다. 특별한 서점의 이름은 '세런디피티78'. 이곳의 주인인 김영화(56) 씨는 은퇴 후에 동네서점을 만들어 2라운드를 시작했다. 그런데 왜 서울이 아닌 여주에 동네서점을 만들었을까? 그것도 유동인구가 많은 여주 시내가 아닌, 여주 시내에서 굽이굽이 돌아 들어와야 하는 이곳에.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12월 12일, 세런디피티78에서 그녀를 직접 만났다.

 

Q. 왜 2라운드로 서점을 하게 되었나요?

 

여주에 20년 넘게 살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문화 공간이었어요. 관심 있는 인문학 강의를 들으려면 서울이나 판교까지 차 타고 이동해야 했죠. 전시나 공연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은퇴 전부터 여주에 소소한 문화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저처럼 문화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다양한 문화생활을 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한 권의 책의 영향이 컸어요. 

 

Q. 한 권의 책이요?

 

헬런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 부부가 쓴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이에요. 저와 남편은 이 책을 열 번도 더 읽었어요. 이 책은 니어링 부부가 시골로 내려가 '조화로운 삶'을 살아냈던 생활의 기록들이 담겨 있어요. 니어링 부부 덕분에 저희 부부의 삶이 바뀌었어요. 그동안 남들이 규정짓는 행복을 추구하며 살았어요. 좋은 아파트, 좋은 자동차 같은 것들이 중요했죠. 이제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가꾸는 소소한 행복이 진짜 행복임을 알았어요. 그리고 이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인 것도요. 우리 부부의 삶의 방식을 정할 수 있었던 것도, 세런디피티78이라는 공간을 만들었던 것도 모두 이 책 덕분이에요.

 

 

김 씨의 은퇴 전 직업은 사서. 수십 년간 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했다. 오랜 시간 책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책이 그만큼 좋았기 때문이다. 책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일까. 세런디피티78에서는 책을 단순히 사고팔지 않는다. 책을 온전히 누리고 만끽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이벤트들을 진행한다. 책을 더 깊게 알아가기 위해 책 모임을 만들고, 작가를 초청해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하고, 음악회나 전시회도 마련한다. 이곳을 서점이라는 그릇에 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책, 음악, 미술, 강연까지 다양한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인 '문화 플랫폼'이라면 모를까.

 

Q. 다양한 모임이 있다고 들었어요.

 

기본적으로 독서 모임이 있어요. 한 달에 2권 정도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모임이에요. 제가 책의 논제를 정리해서 유인물을 만들면 그걸 토대로 대화가 진행돼요. 그 밖에도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음악감상 모임도 있고, 포도 농사짓기 아카데미도 있어요. 제가 포도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제가 강사예요.(웃음) 그리고 삼토극장이라고 셋째 주 토요일마다 모여 영화 보는 모임도 있죠. 모임 이외에도 작가와의 만남이나 소아암 환자를 위한 음악회도 진행해요. 

 

Q.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모임 회원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그럼 만족한다는 뜻이겠죠? 책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관계가 더 끈끈해져요. 타인의 삶과 감정을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죠. 책을 통해 느낀 상대방의 말을 통해 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해요. 그러던 중에 제 안의 상처가 아물기도 하죠. 이를테면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든지 '힘듦을 이렇게 극복했구나'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책 친구가 정말 소중해요.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삶의 안식을 찾을 수 있거든요. 책이 아닌 모임들도 마찬가지예요.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함께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에서 기쁨을 찾는 분들이 많아요.

 

 

Q. 모임이나 행사 비용은 어느 정도 드나요?

 

모든 게 재능 기부로 이루어져요. 음악감상 모임도 클래식을 잘 아는 한 분이 아무런 대가 없이 모임을 진행하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음악회도 마찬가지고요. 그렇다고 제가 돈 버는 것도 없어요.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저한테 뭐라고 해요. 수익으로 따지면 답이 안 나오는데, 뭘 그렇게까지 운영하냐고. 근데 저는 이 일이 정말 좋아서 하는 거예요. 지금 당장 돈 때문에 수익을 내는 방법을 적용하면 오래 못 가요. 저는 10년을 목표로 문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요. 고마운 건 사람들이 제 마음을 알아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나서지 않아도 재능 기부를 하겠다는 작가를 연결해주고, 연주자를 소개해주고, 강사를 초청해주더라고요.

 

Q. 2라운드 삶에 좋은 벗을 많이 만났군요.

 

정말 많이 만났어요. 어떻게 보면 저희 서점 이름인 '세런디피티78'인 것과 관련 있는 거 같아요. 이 이름은 저희 부부가 우연히 본 영화에서 따왔어요. 해석하면 '뜻밖의 행운'이라는 뜻이죠. 이곳에 방문한 사람들이 책이든, 음악이든, 강좌든 어떤 것들을 통해 자기만의 행운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을 담고 있죠. 그런데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난 거로 봐서는 제가 뜻밖의 행운을 누리게 된 거 같아요. 이름 뒤에 78은 무슨 의미냐고요? 세런디피티라는 상호를 가진 가게들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이름 뒤에 78을 붙였어요. 칠전팔기의 뜻도 담고 있고, 무엇보다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겼던 경기에서 알파고를 무력화시켰던 신의 한 수가 바로 78번째 수예요. 이곳을 만든 게 제 인생의 신의 한 수인 셈이죠.(웃음)

 

 

오랫동안 도서관 사서로 일했다고 해도 서점을 창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책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모르지만, 책의 판매 유통 관련해서는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에게 '경기서점학교'는 큰 도움이 되었다고. 경기서점학교는 서점을 창업하고 싶은 사람들을 양성하는 곳이다.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유통 매개로서의 서점이 아닌 사람을 잇고 책 문화를 경험하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서점을 운영할 수 있는 문화기획 창업자를 양성한다. 그래서 출판 유통 환경의 실무뿐 아니라 북 큐레이션 하는 방법, 출판사와 연계해서 매출을 올리는 법 등을 가르쳐준다.

 

Q. 경기서점학교를 졸업하셨다고요?

 

네. 세렌디피티78을 창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제가 도서관 사서 출신이지만 서점 운영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더라고요. 경기서점학교에서 책을 납품하고 유통하는 과정을 유통회사에서 직접 와서 설명해줘요. 이런 것들이 확실히 도움이 되죠. 무엇보다 서점, 출판 관련 전문가들과 상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해요. 서점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것이 있을 때 말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동네서점의 현실을 같이 나누고 함께 고민할 수 있어요. 독립서점을 창업한 선배들의 경험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Q. 서점을 창업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해주신다면?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는 사람이 해야 행복하지, 수익이 크지 않은데 수익을 위해서 서점을 하겠다면 말리고 싶어요. 나는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꼭 하고 싶다는 분들에게는 당당함을 잃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누군가는 콧대 높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 정도는 높아도 돼요. 내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일을 하진 마세요. 나를 지키면서 해야 오래가요. 마지막으로는 마음을 급하게 먹지 마세요.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면 언젠가는 열매를 맺게 돼요. 저도 지금은 씨 뿌리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욕심만 안 부리면 크게 손해 보는 건 없어요. 책이 안 팔리면 어때요. 그래도 책이라는 귀한 자산이 남잖아요.

 

 

세런디피티78

주소 경기 여주시 명품로 127-40

문의 031-883-7822

영업 시간 월~토요일(오전 11시~오후 6시), 일요일(오후 1시~오후 6시)

대표 메뉴 빨강머리앤 커피, 데미안 커피, 조화로운 삶 커피, 어린왕자 커피.

(가격은 5000원으로 동일)

 

 

기획 우성민 사진 지다영(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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