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 그야말로 ‘폭망’해 반강제로 부모님 집으로 귀촌을 했다. 부모님 댁에 얹혀 사는 것도 하루 이틀. 눈치가 보여 부모님 과수원 한편에 작은 집 하나 지어 살았더니, 그게 전화위복이 될 줄이야.
문건호·손정현 부부는 미술학도로 결혼 후 인테리어 사업을 했다가 ‘크게’ 망했다. 전세집이 월세집이 되고, 종국엔 월세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과수원을 하는 부모님 집으로 살림을 옮겼다.
부모님 집 남는 방에서 지냈지만 다 큰 아들과 며느리, 손녀 그리고 나이 든 부모가 갑자기 한집에서 오순도순 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캥거루족’이 된 부부는 곧 떠날 결심을 했다. 부모님 집 앞 사과밭에 작은 집을 지어 ‘분가’를 하기로.
“처음에는 집을 짓는다는 생각보다 작은 휴식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러다가 하는 김에 샤워를 할 수 있는 세면 시설을 만들고, 작은 주방도 하나 만들고 하다 보니 작은 집이 된 거죠. 말이 집이지 현관도 없이 전면 창으로 되어 있는 공간이었어요.”
사과밭에 판넬을 엮어 지은 집은 허름해 보일지 몰라도 부부는 여기서 산 6년을 가장 행복한 시기로 꼽는다.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운 집이지만 통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주었고, 통창 너머 시시각각 바뀌는 사계절 풍경은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바꿔주었기 때문이다.
“돈도 없고 힘들 때 어쩔 수 없이 지은 집이었는데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길거리에 갑자기 나 앉아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힘이랄까요? 그때 집을 직접 지어 산다는 게 이렇게 자존감이 올라가고 행복한 일이니, 다른 사람들도 자기 집을 지어봤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은집건축학교의 시작
부부는 집을 좀더 간편하고, 합리적으로 지을 수 있는 공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건축을 전공한 전문가가 아닌 미술학도로서 다양한 실험을 하며 둘만의 데이터를 쌓아갔다.
그러다 딸 친구의 부모가 집을 짓는데 도와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새로운 공법을 적용할 수 있는 기회였다. 작은 창고를 빌려 그곳에서 자재를 만들고 보관하면서 집을 지었고, 인연은 또 다른 인연 낳아 2년간 전국 곳곳으로 다양한 집을 지으러 다녔다. 이 시기는 부부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심히 집을 지으러 다녔지만 경제적으로는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니 우리에게 남은 건 집 짓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었어요. 원래 집을 지을 때 목조, 설비 등 각기 다른 전문가가 붙어서 하나의 집을 완성해요. 그런데 저희는 전문가와는 다른 방법으로 집을 짓는 전 과정을 알고 있으니 사람들을 불러들여 가르쳐주자고 생각이 기울었죠.”
부부는 한겨레 교육문화센터에 제안서를 넣었고, 한겨레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작은집건축학교 수업을 개설했다. 아무도 오지않을 줄 알았던 첫 수업에는 8명이 참여했다. 그리고 조금씩 좋은 반응을 얻으며 수업을 이어갔고, 부부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자기 집을 짓고 싶은 로망과 현실의 반비례를 경험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
집을 짓는다는 건 평생 번 돈을 투자해 삶의 로망을 실현하는 일이다.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야 마땅하지만 건축주와 건축업자가 만나 그 로망을 완성시키기엔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건축주가 된다고 가정하면 누구나 그 집에 모든 욕망을 투여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집을 짓는 사람 입장에서는 현실적 어려움을 이해시키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타협안을 만들어가야 해요. 쉽게 말하면 건축주의 로망을 접게 하는 입장이라 그 사이에서 오해가 생기는 일이 많고 심하면 로망을 악몽으로 남기게 되죠. 이런 경험을 가진 분들이 저희 작은집건축학교로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작은집마을을 꿈꾸며
작은집건축학교가 2라운드의 문을 열어 주었으나 형편이 크게 나아진 건 아니었다. 수업료는 자재 구입과 수강생들의 식사비로 충당하고 진짜 수익은 만든 집을 판매해야 얻을 수 있었기 때문. 수업을 들은 수강생 우선으로 집을 판매하는데, 팔지 못한 집은 고스란히 마이너스다.
“1년에 만든 집 중 절반을 판매하면 입에 풀칠하고, 다 팔면 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상황인데 작년에 두 채가 안 팔려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고민하다가 유튜브에 소개 영상을 올렸어요. 원래 친목 도모 목적으로 있던 채널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올린 건데, 조회수가 막 올라가더니 언론에서 취재 요청이 들어오고 수강 문의가 폭주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올해부터 상황이 급반전됐어요. 연말까지 수업이 모두 마감되고, 대기 인원도 생겼죠. 솔직히 3개월 전까지 실수령액을 계산해보면 200만원도 안 됐어요.”
작은집건축학교 수업은 8일간 함께 숙식하면서 5.5평짜리 작은 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짓는 과정이다. 정말 8일만에 집을 지을 수 있을지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온 수강생들은 직접 공구를 만지고 땀방울을 흘리면서 작은 집에 매료된다.
실제로 같은 기수로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꾸준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고. 지금까지 건축학교를 거처간 수강생은 약 400명. 나이도, 하는 일도 모두 다르지만 집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이들을 연결하는 끈끈한 끈이 됐다.
부부는 작은집건축학교가 이들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는 것에 삶의 위안을 경험하면서 또 다른 꿈을 키우고 있다.
“집을 짓고 싶어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귀농귀촌을 희망합니다. 하지만 결심도 쉽지 않고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1년 살아보기’ ‘한 달 살아보기’ 프로젝트로는 정착이 어렵죠. 좀더 오랜 시간 머무르며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기간 동안 거주할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요.
그런데 저희가 만드는 작은 집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를테면 자신들이 지은 작은 집을 모은 ‘작은집마을’을 만드는 거예요. 함께 적응하며 귀농귀촌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고, 주말주택처럼 분리된 생활도 가능하죠.
시골에서 삶은 집 안보다는 집 밖 생활 위주로 살 수밖에 없어요. 마을 전체가 커뮤니티가 되면 공동 육아도 가능하고, 함께 독서 모임을 하거나 밤이 되면 모닥불을 피워 사람들과 파티도 열 수 있을 거예요. 요즘 사회 문제가 되는 고독감을 느끼는 시니어도 없을 거고요.”
자신들이 직접 지은 작은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집마을. 부부의 꿈이 그리 먼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작은 집을 통해 새로운 삶의 문을 연 긍정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리라.
기획 서희라 사진 박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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