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삼청동, 양림동 기행

기사 요약글

여행으로 찾은 제주에서 한 달을 살고, 강릉에서 서핑을 하다 커피가 좋아 슬쩍 자리를 잡는다. 광주라면 양림동이 그런 곳이다. 건축물을 보러 왔다가 기독교 역사를 공부하고, 펭귄마을 관광을 왔다가 화가를 꿈꾸는 그런 곳 말이다.

기사 내용

 

 

 

5년 전 처음 광주 양림동을 찾은 건 단순히 커피 때문이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 공연을 보러 왔다가 ‘커피라면 로이스’라는 말을 주워듣고 무작정 들렀다. 그때 조금 낯설지만 다정한, 이 동네만의 어떤 기운을 느꼈다.

 

신선한 커피를 한 잔 들고 400년 된 호랑가시나무를 보고, 선교사 묘역을 한 바퀴 돌고, 귀여운 골목을 거닌 게 전부였을 뿐인데 말이다. 광주에서의 마지막 날은 호랑가시나무 언덕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냈다. 조용한 가운데 달게 자고, 아침에는 통유리창으로 지저귀는 새들을 바라보며 휴가를 만끽했던 것 같다. 특별한 드라마는 없었다.

 

 

 

 

19세기를 걷는 양림동 근대문화유산 거리

 

 

광주의 지하철은 단 한 노선이다. 다른 지역에서 가면 통상 광주송정역에서 시작해 운천, 양동시장, 금남로 같은 익숙한 이름을 지나 남광주역에 정차한다.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의 무대이기도 한 남광주역에서 하차해 남광주시장 골목(싱싱한 해산물로도 유명하다)을 지나 하천을 건너면 양림동 근대문화유산 거리가 나타난다.

 

사람의 마음은 다같은 걸까. 다시 찾은 양림동은 눈에 띄게 번화했다. 많은 이들이 양림동에 매력을 느낀 게 분명했다.

 

일단 동네 곳곳이 유적이다. 19세기 유산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동네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먼저 호랑가시나무를 찾아본다. 5년 전에 비해 크게 자란 것 같지 않다. 다섯 개의 가시 모양 톱니가 있어 호랑이의 등을 긁는 데 쓸 만하다고 하여 호랑이등긁기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는 우리에겐 성탄 트리로 더 익숙하다.

 

호랑가시나무는 지역 명소 갤러리인 아트폴리곤 앞에 서 있다. 잠시 들러 전시를 보고 선교사 묘역을 걷는다. 유럽에나 있을 법한 공원묘지에는 ‘구제’라는 이름으로 광주 지역을 보살핀 선교사 44인이 누워 있다.

 

 

 

 

호슐랭가이드 속 전라도의 맛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면 근대문화유산인 우일선 선교사 사택이 보이는데, 더러 사람들이 견학을 와 있기도 하다. 그 길로 양림동 번화가로 내려가면 선택은 아주 다양해진다.

 

배가 고프다면 <호슐랭가이드>(호랑가시나무 게스트하우스에서 <미슐랭 가이드>를 흉내 내 만든 책자)를 참고해 맛집을 탐방할 수도 있고, 책이 고프면 서점 러브앤프리나 사직도서관으로 향하면 된다. 밥집은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데 인스타그램 감성을 택할지, 가격을 택할지, 푸짐한 먹성이나 최고의 맛을 택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카페와 베이커리는 두 번 설명하면 입 아플 정도로 많고 대체로 맛도 좋다. 펭귄당의 빵은 양림빵집의 아성을 위협하는 듯하다. 맛있고 예쁜 것을 좋아하는 본능은 이렇게 쉽게 작은 것들에 현혹된다.

 

그래서 커피에 지치면 푸짐한 쌍화차를 찾기도, 곳곳에 숨어 있는 전통찻집을 두드리기도 한다. 윤회매 문화관 같은 유서 깊은 한옥 찻집과 새로 지은 핫한 카페가 어우러진 것이 양림동의 매력이다. 여기까지는 반나절이면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거리 곳곳에 예술의 향기 가득

 

 

펭귄마을에 들러 황급히 사진을 찍고, 이장우 가옥을 거닐고, 양림쌀롱에서 지역 가이드를 받고 통기타 거리나 사직공원 전망대에 들르는 것 역시 양림동을 찾은 여행자가 하루에 맛볼 수 있는재미다.

 

너도나도 다 가는 곳이 싫다 해도, 너도나도 다 가는 곳을 가지 않고서는 나만이 갈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그다음이 얼마든지 남아 있으니 말이다. 그중 하나는 흥건한 예술의 향취다.

 

양림동만큼 그 정취가 넘치는 곳도 드물다. 산책을 하다 스쳐 지나간 편안한 인상의 한 남자가 미디어아트의 대가 이이남일 수도 있고, 카페인가 하며 문을 두드리면 서양화가 한희원이나 최순임이 작업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음악가 정율성을 기리는 거리와 이강하미술관은 또 어떤가. 차와 커피를 사랑해 다형이라는 호를 쓴 시인 김현승의 시비도 이곳에 있다. 시를 몰라도 “플라타너스 너는 아느냐…”라는 구절은 익숙할 것이다.

 

양림동 언덕에 자리한 아트폴리곤은 광주 지역을 비롯, 해외 아티스트들의 전시로 꽉 차 있다. 유리로 된 건물 글라스폴리곤에서는 건물의 울림을 만끽할 수 있는 공연도 종종 열린다.

 

 

 

 

거리 축제 그리고 시간여행 코스들

 

 

동네를 약간 벗어나 광주 시내를 구경하는 것도 좋다. 천변을 거쳐 웨딩의 거리를 지나 조금만 걸으면 시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들러 상설 전시되는 아카이브를 본다든지, 거리 축제에 가서 어깨를 들썩거리는 것은 광주의 흔한 풍경이다.

 

조금 더 걸어 유일한 단관 극장인 광주극장에 가면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옛날 영화의 간판도 구경할 수 있다. 중년들이 가면 시간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그뿐인가. 38년째 바뀌지 않은 인테리어의베토벤음악감상실에 들르면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도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붉은 노을을 감상할 수도 있다.

 

다시 왔던 길을 따라 돌아오면 또 ‘양림한’ 밤이 시작된다.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의 저자 김형중은 향수도, 가난도, 과거도 상업화되는 현실을 개탄했다. 자본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래도 그 윤활유가 원주민에게 돌아간다면, 그래서 양림동에 13년째 거주 중인 아트주 정헌기 대표의 말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온전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사실 이 땅은 아픔과 슬픔이 많은 곳이다. 역설적이게도 가난했기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산이 많은 셈이다. 잠시 머무는 이방인에게 그곳의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라는 주문은 무리다. 하지만 선교사 묘역을 걷기 전에 서서평이나 오웬, 배유지 같은 인물들에 대해 조금은 찾아보길 권한다.

 

고통이 반드시 불행이 아닌 것처럼 하루 동안 밟는 다른 공간, 그곳에 묻어 있는 슬픔과 고독, 그리고 그것들을 구제라는 이름으로 지워나간 옛 벗들을 기억하길 권한다. 오래된 예배당에서 신나게 연주하는 20대의 모습은 그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장면이다. 그리고 그걸 쾌활한 성스러움이라고 불러본다.

 

 

 

 

원데이 양림동 여행 팁

 

건축 투어

이장우 가옥 → 펭귄마을 → 오웬기념각 → 유수만 선교사 사택 → 커티스메모리얼홀 → 수피아 소강당 → 윈스브로우홀 → 수피아홀 → 우일선 선교사 사택 → 사직공원 전망타워

 

선교 투어

유진벨 선교기념관 → 오방 최흥종 기념관 → 선교 기념비 → 선교사 묘역 → 커티스메모리얼홀 → 수피아 소강당 → 윈스브로우홀 → 우일선 선교사 사택 → 수피아여학교 → 오웬기념각

 

예술 투어

펭귄마을 → 정율성 생가 → 이강하미술관 → 양림미술관 → 김현승 시비 → 호랑가시나무창작소 → 한희원미술관 → 양림마을이야기관

 

 

 

글과 사진 이지(소설가, <담배를 든 루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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