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인생 훈련, 나는 나에게 정직한가?

기사 요약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까?’ 인생 2라운드를 앞둔 사람들의 고민이다. 매일 수련을 통해 변화하는 삶을 사는 고전인문학자 배철현 교수가 인생 재설계 법을 알려준다.

기사 내용

 

 

 

배철현의 인생 훈련

1. 좌정(坐定)

 

 

50세가 되던 2011년, 인생의 슬럼프가 찾아왔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의 반환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바쁘게 생활하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서울과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로 이주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내, 그리고 두 반려견과 함께 제주도 서귀포 보목동으로 이사했다. 지인이 살던 집이다. 바다에서 쉬지 않고 밀려오는 파도의 진동 소리가 울리는 검은색 용암 바위 위에 위치한 근사한 집이었다.

 

용암 바위 위로 연결된 편편한 정원과 조그만 집이, 자신들을 돌아보러 온 우리 부부와 반려견들에게 단테가 <인페르노>에서 말하는 소위 ‘어두운 숲속’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내 인생을 위한 최선의 길을 찾고 싶었다.

 

 

 

 

나는 매일 아침, 정원과 이어진 이 용암 바위 위에 앉았다. 이 집이 비어 있는 동안, 동네분들이 정성을 빌기 위해 이곳에 온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바위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향불과 촛대를 깨끗이 치우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새벽에 본 거대한 용암 바위는 마치 지옥문을 지키는 삼두견 케르베로스 같았다. 용암 바위는 나에게 한 가지를 요구했다. “너는 이 새벽을 정직(正直)으로 시작할 수 있느냐?” 파도가 살짝살짝 바위를 치며 진동시켰다.

 

나는 그 위에 좌정했다. 나를 닮아서인지, 전생에 수도승이었는지, 반려견 샤갈도 지근거리에서 끝을 볼 수 없는 바다를 바라보고 명상에 잠겼다.

 

정직이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자신을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으로 볼 때, 나는 정직해질 수 있다.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 남에게도 정직하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바다 끝에서 밀려온 파도가 바위를 울리고 내 심장을 울렸다. 나는 어떤 인간으로 인생을 마칠 것인가?

 

 

 

가만히 앉아 있는 행위가 좌정(坐定)이다. 구별된 시간과 장소에서 내가 그날 해야 할 한 가지를 찾는 거룩한 행위다.

 

한자로 ‘좌정(坐定)’은 두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앉을  (坐)'는 나 자신이 마땅히 존재해야 할 그 땅(土)에서 나 자신을 제삼자 인간(人)으로 대면하는 일이다.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일상(日常)이라는 땅에서 ‘위대한 나’의 싹이 나오기 때문이다. ‘앉는 행위’는 나 자신을 가장 취약하게 만들어 원래의 나를 찾기 위한 준비다.

 

인류의 조상들은 400만 년 전까지 동아프리카 밀림 지대 나무 위에서 살았다. 그 후, 기후가 변해 그들은 먹을 것을 찾아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서 나는 근채류를 캐내 먹기 시작했다. 그때 인류의 조상은 키는 1m 정도, 몸무게는 30㎏ 정도로 맹수의 점심거리였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네 다리가 아닌 두 다리로 걷고 일어서는 이족보행을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이 높아져 맹수들이 다가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발로 서서 걷는다는 사실은 인간만의 특징이자 특권이다. 그러나 수련을 위한 좌정은 그 특권을 포기하라는 명령이다. 두 발로 걸어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의식이다.

 

 

 

 

좌정은 또 다른 인간의 특권인 보는 것을 포기하는 용기다. 가만히 앉아 두 눈을 감는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에게 몰입하는 것을 뜻한다.

 

'정할 정(定)'자는 앉아서 해야 하는 임무를 알려준다. 이 글자는 위에 특별한 장소를 의미하는 갓머리가 있고, 그 밑에 '바를 정(正)'이 있다. ‘정'은 우주의 원칙이며 나 자신을 위한 최선이다. 그것을 찾기 위해 내가 할 일이 있다. 나에게 유일한 한 가지(一) 임무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강제로 그만두는(止) 수련이다.

 

눈을 감고 좌정하여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탈출하면, 자신의 본모습이 등장한다. 좌정을 통해 자신의 본모습, 자신이 열망하는 세계를 떠올리는 행위를 상상(想像)이라고 말한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이 좌정과 상상 훈련을 사고실험(思考實驗)이라고 불렀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춤추고 있는 별들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좌정을 통해 나를 가만히 본다. 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이 순간에 몰입한다는 의미다. 과거나 미래의 시간은 언제나 순간이다. 지금 이 시간도 그것을 인식하여 온전하게 나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슬며시 과거로 흘러가버릴 것이다.

 

미래(未來)는 그 한자가 의미하는 것처럼, ‘아직 오지 않는 어떤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라는 의미는 영어 단어 '퓨처(future)'에서 찾을 수 있다. ‘퓨처’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 ‘존재하다, 되다’라는 동사 ‘에세(esse)’의 미래 능동 분사형이다. 설명하자면, ‘미래’란 ‘내가 이 순간에 몰입하여 최선을 다할 때 자연스럽게 나에게 다가오는 신의 선물’이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영원한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하는 의례가 있다. 자신이 정한 장소에서 가부좌를 틀고 가만히 앉아 눈을 감는 행위다. 그 장소는 내게 다른 장소와는 구별된다. 그곳이 특별한 이유는 나를 조금씩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보목동은 나에게 좌정과 순간을 선물해 주었다. 당시 등교하기가 멀어 가평 설악면으로 다시 이주했다. 보목동이 알려준 습관을 오늘 아침 설악면에서 감행한다. 매일 이른 아침, 공부방 방석 위에 앉아 나에게 묻는다.

 

“나는 이 순간에 집중하는가? 나는 나에게 정직한가? 나에게 어울리는 한 가지 원칙을 가지고 다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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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실
한문에 이런 의미가 있구나를 새삼 깨달으면서 읽었네요.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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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눈동자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좌정,,,매일매일 시간 쪼개 저도 실천해 보겠습니다.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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