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건물 건너면 부동산이지만, 그래도 되는 곳은 된다. 그 비결을 듣기 위해 개업 1년 6개월 차 부동산 사장님을 만났다.
“부동산 중개일을 하다 보면 다른 중개사 사무실 사장님들과 교류를 많이 해요. 그런데 의외로 남자 사장님들이 이 일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남자 사장님들 중에는 손님들에게 무조건 ‘이 물건이 제일 좋아요’라며 밀어붙이는 분들이 계신데, 그러면 손님들이 도망가거든요. 반면 여자 사장님들은 손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가급적 손님 눈높이에 맞춰요. 그러니 성사율이 높을 수밖에 없죠.”
험난한 정글을 헤쳐나가는 것이 창업이라면, 여성 특히 사회 경험이 없는 전업주부에게 창업은 낯선 정글을 혼자 뚫고 나가야 하는 어렵고 외로운 일이다. 그래서 공감 능력이 뛰어난 여성이 남성보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데 유리한 부분이 많다는 얘기에 귀가 더 솔깃해진다.
시작하기 전,
흥미와 적성이 있는지 먼저 체크할 것
서울 송파구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고선희 씨(49)는 2년 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두 아이를 대학에 보낸 후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사회복지사 같은 자격증을 따볼 욕심으로 인터넷을 살펴보다 오히려 공인중개사 자격증에 관심이 생겼던 것.
“평소에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는데 인터넷에 관련 공부를 할 수 있는 강좌가 많이 있더라고요. 처음부터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했던 건 아니고 우연히 공인중개사 시험 강좌를 듣게 되었는데 재밌고 제 적성에 딱 맞는 거예요.”
고작 4개월 학원에 다니고 1년 만에 1차, 2차 시험에 모두 합격한 비결은 따로 있었다.
“남편 직장을 따라 지방 이사를 몇 번.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 했을 때 송파구에 있는 친정과 이웃에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경기도와 서울 집값은 천지 차이더라고요. 돈도 부족하면서 전셋집에는 살기 싫어 대출 끼고 싸게 살 수 있는 집을 찾아다녔어요. 1~2년마다 한 번씩 이사 다니면서 결국 친정 옆으로 이사했고, 힘들었지만 그 덕에 부동산 전문가가 다 되었죠. 마음에 드는 집을 사기 위해서 어떤 때는 일주일 내내 한 부동산에 출근하다시피 한 적도 있어요. 언니와 동생 집도 제가 다 알아봐 줬죠.”
부동산 중개 사무실
최고의 입지는?
산전수전의 부동산 거래 경험, 그리고 흥미와 타고난 적성 덕에 중개사 자격증도 쉽게 땄지만 막상 현장에서 자신의 부동산 중개 사무소를 여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동산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장롱면허가 되는 게 싫었던 터라 알고 지내던 부동산 사장들에게 월급 실장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알아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차라리 직접 차려보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제가 욕심이 많아서 이왕 시작할 거면 큰 곳에서 해보고 싶어서 겁도 없이 송파 헬리오시티 주변을 알아봤어요. 결국 거기는 못 들어가고 아는 부동산 사장님들한테 추천받은 장소 중 안정된 자리를 골라 개업을 했지요. 기존에 부동산을 하던 곳이라 권리금을 꽤 주고 들어왔지만 초보인 제가 안정적으로 시작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부동산 중개업은 전세가 2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고 매매 역시 전세 계약 주기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공실인 사무실에서 개업을 하는 것보다는 권리금 부담이 되더라도 단골이 있는 기존 부동산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아파트 신규 입주장의 경우에도 근처에서 오래 부동산을 하며 단골을 쌓아온 부동산과 새로 개업한 사무실은 경쟁이 안 된다. 또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개사마다 자신의 적성이 있거든요. 아파트 매매를 잘하는 사람, 전세를 잘하는 사람, 상가 거래를 잘하는 사람. 적성을 잘 찾아서 거기에 맞는 자리에 사무실을 내는 게 중요해요. 제 경우에는 처음에 아파트, 상가, 건물을 다 거래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자리를 추천받았었는데 막상 자신이 없더라고요. 저는 아파트 매매 쪽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았거든요. 세대수가 적어서 조금 걱정했지만 작게 시작하자 하는 마음으로 개업해 다행히 안정적으로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동산을 1년 이상 하다보니 이제는 부동산 자리가 조금씩 보인다. 1순위는 유동 인구가 많은 버스정류장 앞. 여기에 횡단보도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유동 인구와 접근성으로만 보면 지하철역 출입구 쪽이 최고지만 임대료가 너무 비싸 초보에게는 부담스럽다.
“중개사들끼리는 길에서 바로 들어오는 분을 ‘로드손님’이라 하고 인터넷 검색으로 물건을 알아본 후 부동산에 전화를 걸고 오는 분들을 ‘전화손님’이라고 해요. 손님 수로 보면 로드손님이 2, 전화손님이 8 정도로 많은데, 계약 확률은 로드손님이 훨씬 높아요. 직접 발품을 판다는 것은 그만큼 절실히 필요하다는 거니까요. 특히 원룸, 상가는 로드손님이 매우 중요해요.”
집 구경시키는 중개사가 아니라
정보를 나누는 컨설턴트가 돼라
부동산은 지역 공동중개망이라는 게 있어 그 지역에 나오는 매매, 전세 물건을 중개사들이 함께 공유한다. 그런데 같은 물건을 중개해도 성사율이 높은 사무실이 분명히 있다. 사무실 입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영업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고씨는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차별화 전략을 ‘컨설팅’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단순한 중개가 아니라 부동산 컨설팅을 하려면, 거래 성사에만 몰두해 물건을 포장해서는 절대 안 된다.
“손님이 오면 물건을 직접 보여드리기 전에 물건에 대해 사실 그대로 설명해요. 동네를 잘 모르는 분들은 동네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고, 또 이 동네랑 비교할 수 있는 다른 곳과도 견주어 설명합니다. 설명을 듣고도 손님이 갸우뚱하면 충분히 고민하고 오시라고 하죠. 특히 주변의 교육환경과 투자 효율성을 자세히 설명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를 믿고 찾아온 손님에게 원하는 물건을 구해드리고 도와드리려는 마음인 것 같아요. 손님들 중에는 가끔 인터넷으로 물건을 검색한 후 그저 집만 보여달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런 분들은 중개사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놓치는 거지요.”
손님을 대하는 자세나 영업 능력만큼 일에 대한 신중함, 책임감도 중요하다. 중개수수료를 수입으로 하는 업종의 특성상 건수를 올리려고 계약을 밀어붙이다 보면 꼭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계약서 문구를 세세하게 기입하지 않거나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을 사전에 거래 당사자들에게 확인시키지 않으면 결국 골칫거리가 되어 다시 돌아온다.
예를 들어 임대차 계약의 경우 계약 체결 및 이사 직후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낡은 빨래건조대를 바꿔 달라, 낡은 등을 교체해 달라, 얼마 이하의 수리비는 임대인이 부담하라는 등 사소한 일로 다툼이 생긴다. 계약서를 좀 더 세세히 작성하거나 중개인이 임대인, 임차인에게 사전에 꼼꼼히 확인시켰다면 예방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것'만 참고 1년만 버티면
단골이 생긴다
고씨는 계약서 쓰는 날에는 꼭 정장을 갖춰 입는다. 스스로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의식을 치르는 셈이다. 손님에게 사용한 단어, 말의 톤도 곱씹어 본다. 손님의 소중한 재산을 다루는 일이니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그녀는 부동산 계약은 책임이라고 말한다.
“잘 되면 본인 탓, 잘못되면 중개사 탓이라는 말이 있어요. 부동산 계약은 매도매수인 또는 임대차인, 그리고 중개사 3자가 모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데 계약 당사자 중 한 쪽이라도 탓을 하게 되면 그게 다 제 몫이 되더라고요.”
부동산 계약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표준계약서를 사용하기 때문에 특별히 잘못될 일은 없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손님들은 중개사를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젊은층은 임대차나 매매의 경험이 부족해 불안해하고 의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계약 쌍방이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하면 쉽게 해결될 일인데 중개사를 통해 전달하려 하니 서로 화만 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개사는 양쪽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을 다 받아 견뎌내야 한다.
“개업 후 1년 동안은 너무 힘들어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어요. 부동산 중개라는 게 계약서 썼다고 끝이 아니더라고요. 자질구레한 수선수리 문제, 장기수선충당금이나 관리비 정산 문제 같은 계약 쌍방이 해야 할 일을 일일이 중개인이 전달해 줘야 해요.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중립적인 입장에서 해결해 줘야 하고요. 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그만둘까도 생각했었죠.”
지나고 보면 이런 스트레스는 참을 만한 것이었다. 정말 힘든 손님은 따로 있다며 웃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싫다고, 아니라고 얘기해도 되고 다음에 계약하셔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계약할 것처럼 해서 가격 조정을 어렵게 다 해놓았는데 마지막에 그냥 한번 알아본 거라고 하는 손님이 있어요. 이런 경우에는 중개인이 다른 상대방에게 백배사죄해야 되거든요.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거잖아요. 이럴 때 너무 힘들죠.”
창업 후 1년 정도, 힘든 고비를 넘기고 나니 이제는 스트레스와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알게 되더라는 고씨는 사무실에서 손님들과 수다 떠는 시간이 제일 즐겁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 그녀는 당장 계약을 안 해도, 찾아와서 그저 놀다 가는 손님이 반갑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신뢰가 쌓인다. 소중한 부동산을 믿고 맡길 만한 사이는 이렇게 형성된다는 얘기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부동산은 단골손님이 중요해요.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영업한 자리는 손님이 꾸준히 있죠. 부동산에 오셔서 손님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결국 자금 문제더라고요. 누가 비싸고 좋은 집이 싫겠어요? 알면서도 못 사는 거지요. 이런 손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고 기다려주면 결국 거래가 성사되는 것 같아요.”
고선희 대표가 충고하는
초보 공인중개사가 피해야 할 3가지
1. 손님 물건 욕심내지 않기
좋은 물건이 눈에 보이면 돈을 끌어 직접 투자하는 경우가 있다. 중개가 아닌 무리한 투자는 화를 부른다.
2. 내가 책임질 테니 사라는 말하지 않기
특히 재개발 예상 지역 물건은 절대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 잘못되면 진짜로 중개사한테 물어달라 하는 경우가 있다.
3. 이게 제일 좋은 물건이라는 말 않기
좋은 건 알지만 문제는 돈이다. 그 말 대신 손님의 자금 사정에 맞는 물건을 찾아보라.
글 안용호 사진 지다영(스튜디오 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