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절됐던 이문세 3집 LP판을 구할 수 있는 추억의 가게, 돌레코드

기사 요약글

‘지지직’ 턴테이블 위에서 춤추듯 돌아가는 LP판이 내는 아날로그 잡음. 가끔 이 소리가 그리운 날이 있다.

기사 내용

 

 

 

가만, 내가 LP판을 처음 만난 게 언제였더라. 중학교 1학년 때였나? 동대문운동장 부근 청계천 어느 LP가게에서 생애 첫 음반을 샀다. 정식 음반은 아니고 ‘빽판(무단복제 음반)’이었는데, 밥 딜런의 타이틀 곡이었다. 가격은 지금 시세로 1800원 정도. 어린 시절 가벼운 주머니로도 음악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물건이다.

 

그때 당시, 거리에는 LP판 가게들이 수두룩했다. 가게마다 길거리를 향해 유행곡들을 틀어댔고, 덕분에 도시의 거리는 음악으로 가득했다. 친구들과 거리를 걷다 아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따라 부르기도 하고, 재잘재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곤 했다. 그렇게 우린 음악에 푹 빠져 살았다.

 

학교가 끝나면 단골인 돌레코드에 가방을 맡겨 놓고 주변 일대를 돌아다니곤 했다. 돌레코드에는 턴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 LP판을 즉석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수업이 끝나자마자 듣고 싶었던 노래를 듣기 위해 얼른 가게로 달려와 턴테이블을 작동시키면 그렇게 짜릿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옛말이 되어 버렸는데, 요즘따라 듣고 싶은 노래들이 생겼다. LP판이 내는 아날로그 음악 소리로 말이다. 그래서 40년 만에 돌레코드를 다시 찾았다.

 

 

 

 

청계천을 지나 황학동 풍물시장을 헤집고 들어서면 좁은 골목길이 등장한다. 그 끝에 여전히 돌레코드가 자리 잡고 있다. 어렸을 땐 참으로 컸었는데, 지금은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쳐 버릴 정도로 작은 공간이다.

 

입구에서부터 뿌연 먼지로 덮인 카세트 테이프가 나를 반긴다. 기다란 가게 안의 모습은 동네 골목길을 연상케 한다. 그 길 끝엔 45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 김성종(64) 사장님의 얼굴이 컴퓨터 모니터 위로 빼꼼히 보인다.

 

 

 

 

매장 안으로 성큼 들어가자 바깥 공기와는 사뭇 다른 추억의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LP와 CD에서 나오는 관록의 향기랄까. 벽장 안을 빼곡하게 채운 LP와 CD는 오랜만에 봐도 가슴을 뛰게 한다.

 

사장님은 어디에 무슨 판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을까? 손이 가는 대로 아무 LP판이나 꺼내 보니 이문세의 3집이다. 이 귀한 게 아직도 있다니. 사장님께 물어보니 지금은 구하기 힘든 LP라 가격이 조금 나간다고 한다.

 

갑자기 예전에 즐겨 듣던 노래들이 하나둘씩 생각난다. 그런데 이 많은 LP판 더미 속에서 원하는 걸 어떻게 찾을까? 아 맞다, 원래 LP판 찾는 건 보물찾기나 다름없었지?

 

 

 

 

Q. 예나 지금이나 돌레코드는 한결같네요.

 

 

예전에 비해 규모가 조금 커졌죠. 왜냐하면 LP판 양이 많아졌거든요. 지금도 LP랑 CD를 팔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사요. 그러다 보니 지금 LP판 15만 장, CD가 5만 장 정도 되지요.

 

옛날 LP판 가게들은 유통업자 역할이 컸었어요. LP를 생산하는 회사가 많아서 유통만 하면 됐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중개인 역할이 더 커요.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필요 없어진 LP나 CD를 지금도 여전히 갖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게 지금 제 역할이지요.

 

 

Q. 단골 손님은 여전히 찾아오나요?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간다 그러잖아요. 물건이 필요하다기보다 그냥 한번씩 이 근방 지나면 꼭 한번 들르지요. 와서 차나 한잔 달라고 그러죠.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아와요. 아마 인기 가수들이 LP판을 내면서 LP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거 같아요. 디지털이 당연한 친구들에게 아날로그는 오히려 새로우니까 그럴 수도 있고요. 

 

 

 

 

다시 옛날을 회상해보자. 그 많고 많던 LP가게 중에 왜 나는 돌레코드가 좋았을까. 생각해보면 여기서 빽판을 팔았기 때문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나에게 이곳은 천국이었다. 한창 LP에 빠져 있을 때 아버지가 그때 유행하던 이미자, 패티김의 가요 음반을 사왔다.

 

학생인 나에게 가요는 유치함의 대명사였다. 오직 팝송만이 음악이었고 양희은, 송창식 등의 포크송 정도 돼야 납득이 되었다. 신기할 정도로 돌레코드는 우리 또래가 인정하는 음악들을 잘 골라 항상 가게에 들여놓았다. 값싼 빽판에다 음악 선정 능력까지 두루 갖춘 것이 돌레코드의 매력이었다.

 

 

 

 

Q. 복사판 팔던 때가 있었잖아요.

 

 

맨 처음에는 그랬죠. 빌보드 차트에 실린 좋은 팝송들은 LP판을 직접 구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다 압수도 당하고, 벌금도 많이 물었죠. 불법이니까 경찰만 보면 괜히 뜨끔하고, 이러면서까지 장사를 해야 되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같이 일하던 친구가 더 이상 복사판 팔지 말고 정품을 팔자고 해서 제대로 시작하게 됐죠.

 

 

Q. 정품 도매점으로 바뀌면서 손님이 줄어들진 않았나요?

 

 

처음엔 줄었죠. 그런데 우리 가게가 점점 유명해졌어요. 알고 보니까 우리 가게가 진짜 음악을 아는 집이 돼버린 거였어요. 그 당시 세운상가 같은 도매점은 규모가 크긴 했지만, 음악을 아는 게 아니라 가격 단가만 알았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 가게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좋은 음악들을 선별해서 파니까 사람들이 믿고 사는 거죠. 나중에는 다른 도매점에서 우리가 잔뜩 사 간 LP판을 보고 이게 잘 팔리나보다 하고 따라 살 정도였으니까요. LP판 큐레이션의 시초라고 할까요(웃음).

 

 

 

 

LP판의 매력은 앨범 옛 표지에 있다. 표지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곤 했으니까. LP판은 직접 가서 사는 재미가 있다. 앨범을 열어서 흠집이 있나 없나 상태를 확인하고, 같은 앨범이 두 장 이상이라면 그중 최상의 앨범을 골랐을 때 그 쾌감은 형용할 수 없다.

 

케케묵은 먼지를 걷어내고 LP판의 옛 표지를 감상하면서 가게 사장님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눴다. 언제 이렇게 음악에 대해서 긴말을 늘어놓겠는가. 쓸데없이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어쨌든 이 시간이 참으로 위로가 된다. 

 

 

 

 

Q. LP판의 가격이 많이 올랐나요?

 

그렇죠. 그때 당시 LP판 하나에 1800~2000원 했었는데, 1990년대 중반 즈음 LP판의 인기가 시들어 가면서 오히려 희소가치가 더해져 6000원까지 값이 올랐죠. 지금은 가격이 1만원 이상으로 더 올랐고요. 그런데 딱 얼마라고 말해 줄 수 없어요. 가격이 천차만별이에요. 같은 LP판도 상태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거든요. 희소가치가 높으면 값이 더 높죠. 

 

 

Q. 사람들이 여전히 LP판을 찾는 이유가 뭘까요?

 

 

LP만의 매력이 있지요. 우선 LP판으로 음악을 들었을 때 음색이 따뜻하고 부드러워요. 그래서 노래에 더 집중하게 되고 빠져들게 되죠. LP의 매력에 한 번 빠진 사람들은 계속 생각이 난다고 해요. 소리 자체가 자연음에 가까워서 싫증을 덜 느끼거든요.

 

무엇보다 과정이 있잖아요. 지금은 휴대폰 터치만 하면 한번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LP판은 손으로 LP는 꺼내고 턴테이블에 꽂고 한 번 들으면 최소 20분은 진득하게 들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찾는 거죠.

 

 

 

 

세상은 참 빠르게 흘러간다.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더 빨라진 느낌이다. 아날로그가 다시 부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왜 그럴까 종종 생각해본다. 빠른 속도에 지쳐버린 현대인들이 느림의 미학에 매력을 느끼는 건 아닐까?

 

특히 음악에서는 중간 과정을 건너뛰는 스트리밍 서비스보다 접촉이라는 과정이 있어야만 재생이 가능한 LP판에서 새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40년이 지나서도 LP판의 감촉을 잊지 못하는 나처럼 말이다. 사람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손때 묻은 LP판 덕분에 추억을 되새기며 따뜻했던 옛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오늘 귀한 보물을 찾은 듯하다. 보물찾기 대성공이다.

 

 

 

 

돌레코드

주소 : 서울 중구 마장로9길 49-29

- 가는 방법 : 1, 6호선 동묘앞역 5번 출구에서 도보 5분 (5번 출구에서 직진하다 다산교 다리 건너 좌회전 100m)

- 전화번호 : 02-2235-7130

- 영업 시간 : 오전 10시~오후 9시(휴무일 없음)

 

 

 

기획 우성민 사진 이대원(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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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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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눈동자
글 읽으니 추억소환,,,저도 길거리에서 빽판을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밥웰치의 판을 샀습니다.아련한 추억이 생각났어요.아직도 중고음반을 파는곳이 있군요.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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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실
LP판이 주는 따뜻한 음색 저도 사랑합니다. 턴테이블에 바늘이 톡톡 튀며 미끄러지듯 춤을 추면 노래가 흘러나와서 참 신기해했던 때가 있었는데... 너무 그립네요.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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