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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둥글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이 당연한 생각을 새삼 곱씹는 순간은 국제선 비행기에 앉아 모니터 속 지도를 들여다볼 때다.
지도 위에서 내가 탄 비행기가 점점이 움직이고, 내가 떠나온 곳은 지금 9월 25일 오후 5시 23분인데 몇 시간 후 도착할 이국은 그보다 이른 9월 25일 오전 10시 23분이라는 안내를 읽을 때마다 촌스러운 경외감에 사로잡힌다.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포그 씨와는 정반대의 의미로 매순간 시간을 거슬러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에피소드 1. 스페인 세고비아로 떠난 시간 여행
9월 26일 밤 10시, 스페인 마드리드의 차마르틴역에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젯밤 마드리드에 도착했고 오늘 아침 일찍부터 세고비아와 라그랑하를 분주하게 돌아본 참이다.
라그랑하에서는 17세기 펠리페 5세의 여름 사냥터이자 별장이었던 ‘라그랑하 데산일데폰소’ 왕립 정원을 거닐었다. ‘작은 베르사이유(궁전)’라는 별명이 다소 겸손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궁과 분수, 고요한 오솔길을 걸으며 펠리페 5세가 매일 아침 일어나 창문을 열고 마주했을 풍경을 가만히 그려보았다.
그 직전 세고비아에서는 1세기, 그러니까 예수가 세상을 떠나고 약 60년 후에 로마인들이 지었다는 수도교를 봤다. 지금으로부터 1900년도 더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돌의 마찰력만으로 접착제 없이 아치형으로 쌓아 올린 수도교는, 언뜻 수평을 이루는 것으로 보이지만 1% 정도 기울어 있어 돌 위에 파놓은 홈으로 물이 흘렀다.
‘원래는 길이가 13km나 됐다’든가 ‘정수기 필터 역할을 하는 로마식 물 저장고가 따로 있다’든가 ‘이 수도교로 세고비아를 가로질러 알카사르 성채까지 물을 조달했다’ 같은 얘기보다 더 놀라운 건, 이 수도교를 1909년까지 실제로 사용했다는 사실이었다.
좀 더 걸어가 1000년 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산마르틴 성당과 ‘백설공주 성’으로 알려진 14세기 건축물 알카사르성을 보고, ‘메종 데칸디도’에서 세고비아 명물인 ‘코치니요 아사도(화덕에서 통째로 구운 새끼 돼지 요리)’를 먹었는데 심지어 이 식당마저 1890년대부터 여기 있었다고 했다.
1000년, 100년 단위로 종횡무진하는 연도 사이에서 잠시 멍해졌다. 1세기 로마의 노예들이 지은 수도교 옆에서는 맥도날드와 버거킹이 성업 중이었다.
에피소드 2.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생긴 일
그리고 이제 마드리드의 차마르틴역. 하루 한 차례 운행하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탑승이 곧 시작된다는 안내방송에 손에 쥔 유레일패스 티켓을 다시 들춰보았다. 기차로 유럽을 여행하다니, 이번엔 1990년대로 타임 슬립을 한 기분이다. 방학만 되면 대학생들이 너도나도 유레일패스를 끊어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던 시절 말이다.
하지만 곧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탄다는 생각만으로도 살짝 설레는 마음만은 어쩔 수 없었다. 제러미 아이언스가 페로몬 연못에서 찰방찰방 물장구치다 나온 듯이 지성미를 뚝뚝 흘린다는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나는 안 봤지만), 영화의 원작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동명의 소설(나는 안 읽었지만) 덕분에 운명과 낭만의 어감을 품게 된 그 열차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1등실로 들어서자마자 안내한 직원이 한쪽 벽을 열어 1인용 침대를 꺼내는 마술을 목격했다. 우와. 반대편 벽에 있는 문은 욕실로 통했는데, 세면대와 변기, 샤워커튼이 달린 샤워실까지, 좁아도 그날 밤 필요한 건 다 있었다.
나는 더운 물로 샤워를 한 다음 침대에 누웠다. 가방에서 <리스본행 야간열차> 문고본이라도 꺼내 읽어야 마땅한 상황이었지만, 스물한 살 땐가, 온 동네가 정전으로 깜깜해졌을 때 촛불을 켜고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으며 실로 100년어치의 고독을 맛본 이후로 TPO와 너무 소름 끼치게 잘 맞는 짓은 웬만하면 안 하게 됐다.
그 대신 문명의 최전선에 선 ‘영 포티’답게 데이터 로밍을 한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에 접속하기로 했다. 11시간을 달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경을 넘는 기차에 몸을 누인 채 한국에서 오늘 방영된 드라마 최신 회차를 볼 수 있다니, LTE의 신이여, 감사합니다. 야간열차의 침대는 근육질 유모가 흔들어주는 요람처럼 리듬감 있게 흔들렸고, 나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새벽 “도착 40분 전입니다” 하며 직원이 객실 문을 두드렸다. 눈을 비비며 커튼을 걷자 마침 해가 뜨는 중이었다. 진홍색으로 물든 지평선이 기차의 진동을 따라 일렁였다. 기차는 산타아폴로니아역에 섰다. 내가 평생 ‘리스본’으로 알았던, 하지만 포르투갈인들은 ‘리스보아’라고 부르는 도시가 거기 있었다.
에피소드 3. 리스본에서 천천히 걷기
리스본은 걸어 다녀야 제대로 만날 수 있는 도시다. 도시를 이루는 일곱 개 언덕, 5세기 무어인들이 돌로 쌓은 상조르즈성, 이베리아반도를 관통해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테주강, 그 물결 위로 산산이 부서지는 지중해의 햇살, 바스쿠 다가마의 함대가 ‘대항해시대’를 열어젖혔던 벨렝항, 도시 곳곳을 느긋한 속도로 누비는 전차,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을 견뎌낸 산타마리아 대성당과 제로니무스 수도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베르트랑’, 다국적 대기 줄로 입구부터 북적이는 에그타르트 가게 ‘파스테이스 드 벨렝’, 포르투갈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19세기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동상과 그가 종종 들렀다던 카페 ‘아 브라질레이라’, 60년 된 젤라토 가게 ‘젤라도스 산티니’ 그리고 골목골목 해묵은 건물 외벽을 덮은 아줄레주(푸른색 주석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타일)를 욕심껏 눈에 담으려면, 걸어야 한다. 가급적 천천히, 여유롭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리스본은 충분히 아름답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다가서서 그 안에 깃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지금까지 본 풍경이 전혀 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엔히크 왕자는 15세기 포르투갈인들에게 보자도르곶 앞바다가 세계의 끝이 아님을 알려준 개척자다. 엔히크는 과거 실크로드를 거쳐 비싼 값에 거래되던 후추나 정향 같은 향신료를 직접 포르투갈로 실어 나를 항로를 개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포르투갈식 범선 ‘캐러벨’을 만들고 평생 독신으로 살며 끈질기게 시도했지만, 죽는 날까지 자신이 보낸 탐험대가 적도를 넘었다는 낭보를 듣지 못했다.
엔히크가 꿈꾸던 인도 항로를 연 것은 1495년 즉위한 마누엘 1세였다. 마누엘 1세가 보낸 바스쿠 다가마의 탐험대는 1498년에 인도 캘리컷에 도착했고, 뒤이어 왕명을 받은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브라질의 영토를 가져왔다.
위대한 탐험은 위대한 문학작품을 낳았다.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는 대항해시대와 포르투갈 신화를 담은 대서사시 <루시아드>를 집필하고 ‘포르투갈 국민 시인’의 칭호를 얻었다. 벨렝항에 세워진 거대한 ‘발견 기념탑’에서 나는 이 얼굴들을 만났다. 맨 앞에서 바다를 마주한 엔히크 왕자, 그 뒤에 선 바스쿠 다가마, 무언가를 쓰고 있는 카몽이스.
마누엘 1세가 바닷길로 이룬 막대한 부는 ‘마누엘 양식’으로 통칭되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양식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밧줄과 조개 등 대항해시대의 상징을 정교하게 조각한 마누엘 양식의 위용은 산타마리아 대성당 입구부터 이방인을 압도한다.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성당 안을 걷다가 누워 있는 남자가 조각된 석관과 마주쳤다. “이게 바스쿠 다가마의 관이에요.” 한국인 가이드 남선영 씨가 소근거렸다. “네? 여기 바스쿠 다가마의 시신이 있다고요?” “네, 맞은편에 있는 건 카몽이스의 관이고요.”
아… 안녕하세요, 바스쿠 다가마 선생님. 세계사 시간에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뵐 줄은 몰랐네요.
에피소드 4. 세계의 끝, 호카곶
무언가에 거대하고 애틋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내가 원하는 만큼 알지 못할 때만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카보 다 호카(호카곶)의 십자가 탑 앞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탑에는 카몽이스의 서사시 중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그 시절 유럽인들은 여기가 세계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저 수평선 너머는 미지로 가득했고, 중세까지만 해도 세상이 테이블처럼 평평해서 바다 끝엔 낭떠러지가 있을 거라 믿었기에 그들은 이곳을 ‘육지의 끝’이라 이름 붙였다.
20세기에 태어난 나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메르카토르도법으로 그린 세계지도를 보며 자랐다. 하지만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거셌고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는 매서웠다. 그 순간 내가 호카곶에서 느낀 막막함을 15세기 유럽인들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막막함은 원대한 열망이 되었다. 엉뚱하게도 갑자기 머릿속에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부르는 <라 메르(La Mer)>가 울려 퍼졌다.
“바다여 / 투명한 해안을 따라 춤을 추네 / 은빛으로 반짝이네 (…) 바다여 / 일생 동안 내 마음을 흔드네.”
에피소드 5. 유럽 여행자의 발, 유레일패스
막상 타보니 기차는 유럽을 여행하기에 최적의 교통수단이었다. 최소 3일, 최장 3개월까지 기차로 유럽 31개국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유레일 글로벌 패스, 일정 기간 동안 한 나라 안에서 무제한으로 다닐 수 있는 유레일 원 컨트리 패스, 기차에 더해 페리까지 이용할 수 있는 유레일 그리스 제도 패스는 빡빡한 휴가 일정에 쫓기는 일 없이 여유롭게 유럽을 즐기고 싶은 50+ 여행자에게 특히 유리하다.
기차를 타면 유럽 공항에서 비행기 연결편을 놓쳐서 낭패를 보거나 따로 부친 짐이 분실될 일도 없다. 만 60세 이상이라면 성인 요금보다 10% 할인되는 시니어 패스를 구입할 수 있다.
기차 여행의 아날로그 감성을 만끽하며 유레일패스 티켓에 손수 여행 일정을 쓰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해외여행 때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레일 플래너’ 앱을 권하고 싶다. 좌석 예약은 물론 유럽 전체 열차시간표를 확인하고 유레일패스 제휴사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까지 알뜰히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 6. 토마르와 템플기사단의 비밀
포르투갈 여행을 리스본에서 시작했다면 다음 목적지는 코임브라나 아베이루, 신트라처럼 기차로 1~2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소도시가 적당하다.
리스본에서 기차로 1시간 40분 거리인 토마르는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크리스투 수도원을 품고 있다. 수도원 입구에서 마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 막 걸어 나온 것 같은 중년 남성 가이드를 만났다. ‘베르나르도’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미로 같은 수도원 구석구석을 누비며 치열했던 수백 년의 세월이 이곳에 남긴 흔적을 보여주었다.
템플기사단의 본부였던 투박한 요새는 12세기에, 그 옆으로 이어진 수도원은 템플기사단을 견제했던 프랑스 필리프 왕과 교황 클레멘스 5세의 손에 기사단 전원이 살해당한 14세기와 15세기에 걸쳐 증축됐다.
포르투갈 왕 디니스가 교황에 맞서 템플기사단을 대신할 그리스도 기사단을 만든 것도 14세기의 일이다. 그리고 시작된 대항해시대! 성당 입구와 내부는 마누엘 양식으로 온통 휘황찬란하다.
특히 예루살렘 성묘 교회를 재연한 성당 기도실은 그곳에 들어선 모든 이가 잠시 말을 잃을 정도로 압도적인데, 아름다운 벽화와 총 여덟 개의 조각 기둥 중 절반 정도를 19세기 초 포르투갈을 침략한 나폴레옹의 군대가 뜯어 갔다고 했다.
“그럼 그때 가져간 것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사라졌어요. 대부분은 군대에서 불쏘시개로 썼을 거예요.” 베르나르도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피소드 7. 포르투의 마법 같은 순간
역사는 번번이 승자의 기록이다. 장대한 탐험과 개척의 이면에는 정복당하고 빼앗긴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여행 내내 거론되었던 수많은 연도들이 왠지 무겁게 느껴진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의 무게가 오히려 동화적으로 느껴진 순간도 있었다. <가디언>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포르투의 렐루 서점에서였다. 이른 아침, 오픈 전부터 문 앞에 긴 줄이 늘어선 광경은 이 서점이 책을 파는 것보다 입장료로 훨씬 많은 수익을 내는 곳이란 설명에 힘을 실어줬다.
입장료는 5유로(약 6500원)이지만 책을 사면 입장료를 돌려준다고 한다. 조금 전에 해리 포터가 와서 <마법천자문>을 사 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서점 내부는 온통 해묵은 갈색과 황금빛이었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구불구불한 계단은 카몽이스의 <루시아드> 초판본과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초판본이 한 진열장 안에 누워 있는 2층으로 이어졌다.
이번 여행에서는 유난히 높은 곳에 올라가 도시를 조망하는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포르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세하 두 필라르’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기분이 남달랐던 것은 그간 사진으로만 보던 초현실적인 일몰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지만 야속하게도 두꺼운 구름이 노을을 다 가렸다. 그렇게 하늘이 검어지는 사이 도시엔 하나둘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위가 어두워질수록 불빛은 빠르게 늘어갔고, 마침내 어둠이 깔린 도시에 금모래 같은 불빛이 내려앉았다.
해가 지면 가로등을 켜고 방 안을 밝히는 포르투의 저녁 일상이 약 20분 새 만들어 낸 장관에 나는 잠시 넋을 잃었다. 바다와 육지를 개척한 위대한 이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이들의 이런 일상이 아름다운 풍경과 유구한 역사로 퇴적되는 것일 터이다. 문득 대서양 너머, 포르투보다 8시간 빠른 도시에 두고 온 내 평범한 일상을 떠올렸다.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기획&사진 신윤영 문의 포르투갈관광청 www.visitportugal.com, 포르투갈관광청 한국 사무소 02-732-4140, 리스본 지역관광청 www.visitlisboa.com, 중부 지역관광청 www.centerofportugal.com(토마르, 아베이루, 코스타노바), 포르투 지역관광청 www.visitportoandnorth.travel, 유레일패스 한국사무소 eurail.co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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