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아재가 살아남는 법, 주방에 해답이 있더라

기사 요약글

20년간 기자 생활을 한 아재가 퇴직 후 요리책을 냈다. 책의 부제는 ‘고독한 삼식이의 인생반전’이다.

기사 내용

 

 

 

신진호 씨는 사회 정의를 찾아 펜대를 쥐었던 기자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회사와 자신이 생각한 정의의 의미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고 그길로 퇴직을 감행했다.

 

“준비 없이 회사를 나온 거죠. 저는 후회하지 않았는데 아내는 달랐나봐요.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지기 시작하더군요. 정확한 병명도 없이 많이 아팠어요. 남편이 잘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그만뒀으니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아팠던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집안을 든든하게 책임지던 아내가 자리에 눕자 비상이 걸렸다. 아이들도 아직은 챙김을 받아야 할 나이. 그는 필연적으로 주부가 됐다. <아재여! 당신의 밥상을 차려라>의 출간 비하인드 스토리다. 

 

 

 

 

생존 요리의 시작

 

 

그가 주방에 입성하고 가장 먼저 한 요리는 아내를 위한 죽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먹기 쉬운 게 죽이고, 가장 만들기 어려운 게 죽이라던가. 쌀을 불려서 빻고 눌어붙지 않게 저어주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죽은 만드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렇게 아내를 위해 꼬박 6개월 동안 죽을 쑤었다. 

 

“원래 주방 일에 문외한은 아니었어요. 제가 삼형제 중 막내아들인데 딸 같은 아들로 자랐거든요. 어머니 심부름도 도맡아 하고 부엌일을 도와 드리면서 자연스럽게 배운 것들이 있었지요.

 

가령 밥을 지을 때 물 높이를 어떻게 재는지, 콩나물은 어떻게 다듬는지 같은 거요. 관심이 없는 편이 아니어서 커서도 김치찌개 정도는 끓여먹을 줄 알았고요. 그래서인지 요리하는 데 거부감이 없더라고요.”

 

아내를 위한 죽은 물론 아이들을 위한 삼시 세끼를 준비하면서 요리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미역국이 콩나물국이 되고, 무국이 북엇국이 되는 걸 보면서 요리의 확장성도 배웠다.

 

또한 파스타가 먹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처음에는 시판 소스를 사서 만들어 주다가 ‘직접 소스를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에 토마토를 사서 소스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일상을 보내던 중 한 선배가 그걸 책으로 내보자고 권유했다.

 

“제가 다니던 신문사에 연재를 해볼까 생각하고 있던 차였어요. 출판사에 있던 선배가 그러지 말고 한번에 써서 책으로 내보자고 하더라고요.

 

매일 마감하던 신문기자였으니까 이런저런 에피소드 정리하고 마음먹고 시작했더니 45일만에 다 썼지요. 요리와 맞닿은 제 일상을 에피소드로 담고 가스불 한번 안 켜본 아재들도 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썼어요. 중년 남자에게 요리는 곧 생존이거든요.”

 

 

 

 

아재에게 요리는 경쟁력

 

 

그가 말하는 생존 요리는 이 시대를 사는 중년 남성의 고단함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50대가 되면 평생 몸 바쳐 일해온 직장에서 한계를 느끼게 된다. 승진하거나, 잘리거나. 이 갈림길에서 후자의 길을 걷게 되는 순간 마치 삶이 곤두박질치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 

 

“퇴직을 하면 병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몸이 아픈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때 라면 하나 끓일 줄 모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저는 요리를 할 줄 알면 생존률이 올라간다고 말하곤 합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고 본인 스스로 해먹을 줄 모르면 정말 수명이 줄어요. 어떻게 아내가 세끼를 다 챙겨주겠어요. 어떤 친구들은 사먹으면 된다고 하지만 배달 음식과 냉동밥을 일주일 내내 먹진 못해요. 집밥과 다르게 물리거든요.

 

요리를 할 줄 알면 아내가 외출해도 찾을 필요가 없고 기다릴 이유도 없지요. 사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퇴직 후 경제적 능력을 상실해서 집에서 눈치가 보인다고 하죠? 실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아내를 힘들게 하는 게 문제예요. 요리를 할 줄 알면 떳떳합니다. 이만한 경쟁력이 어디있겠어요.”

 

그는 관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아재의 생존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해보지 않았기에 오는 두려움은 다 극복할 수 있다고. 라면을 끓일 때 콩나물 한주먹 넣어보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 다음엔 육수를 내어서 레시피의 확장성을 느껴보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 제 책이 ‘금서’래요. 집에 가져가면 부부 싸움한다고. 저는 그 친구들한테 나중에 퇴직해서 요리할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 하나씩 해보라고 조언합니다. 퇴직은 어쨌든 오는 것이니 지금부터 해야 퇴직 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요.

 

요리를 할 수 있으면 뭔가 해먹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그러면 직접 장도 봐야 하고, 함께 먹을 사람도 찾게 되면서 건강 요리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게 삶이 풍성해지는 것이고 요리로 위안을 받는다는 것 아닐까요?”

 

 

 

 

신진호 씨가 말하는, 아재가 요리를 해야 하는 이유 4가지

 

 

1. 생존률이 올라간다

 

남자가 퇴직하면 기력이 없고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자신이 요리를 할 줄 알고 즐기게 되면 잘 챙겨 먹게 되고 삶이 긍정적으로 변한다. 즉,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것.

 

 

2. 아내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퇴직자의 아내가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남편의 식사를 챙겨주는 것이다. 누군가는 경제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집에서 눈치가 보이고 배신감이 든다고 하지만 실제로 집안일, 특히 주방일을 덜어주면 경제 능력이 없어도 집에서 떳떳하다.

 

 

3. 삶의 경쟁력이 생긴다

 

주변을 돌아보자. 요리할 줄 아는 아재가 얼마나 되나. 요리할 줄 아는 아재는 소수다. 당연히 경쟁력이 올라갈 수밖에. 

 

 

4. 기회가 생긴다

 

기회는 다양한 곳에서 빛을 발한다. 요리 능력이 어떤 기회를 가져다 줄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닐 수 있지만 이름을 건 책이 나왔다. 

 

 

기획 서희라 사진 오충근, 셔터스톡

 

 

[이런 기사 어때요?]

 

>> [전성기TV] 직장 생활 40년차 아저씨가 작가가 된 글쓰기 노하우

 

>> 자서전 쓰기는 잘 살아온 나에게 주는 선물

 

>> 연매출 1~3억원 올리는 업사이클 전문가에 도전해볼까?

 

댓글
댓글
김*실
요리하는 남편, 아빠들이 요즘엔 제법 많더라고요. 아마도 갈수록 가족구성원의 숫자가 적어지고, 쉽게 집밥을 만드는 요리프로그램이 많아졌다는 것도 한 요인 아닐까 싶어요. 70대인 친정아빠만 해도 엄마하고 두 분만 계시다 보니 엄마가 조금 몸이 안 좋다 하시면 직접 쌀죽을 끓이고, 밥을 하시더니 어느 날인가는 tv에 나오는 비법을 보고는 직접 깍두기도 담그셨다고 하셔서 가족들이 모두 놀라워했었어요. 가족들이 자꾸 칭찬하니 요리의 재미도 느시는 것 같더라고요.
2019.10.18
대댓글
검은눈동자
요섹남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남자가 요리하는 경우 종종 보는데 아재라는 표현보다 멋진 이웃남자들 이야기 읽다 보니 내 남편은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아들들은 지금 하나 둘 가르치고 있지만 남편은 말을 듣지 않아서요.
2019.10.18
대댓글
이*국
요리는 행복한 생존이지요~~
2019.10.28
대댓글
황*리
생존요리라고 하니까 뭔가 했는데~ 고집 체면 내려놓으면 새길이 열리네요~
2019.11.01
대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