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예비 귀농인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귀농 아이템 중 하나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에듀팜과 치유농업이다. 현실은 어떨까? 경기도 광주 퇴촌식물원의 사례를 참고해 보자.
노후의 고아한 취미 정도로 인식되던 식물 기르기가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의 필수 요소가 됐다. 퇴촌식물원의 한동훈 씨도 식물을 기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한 반려식물을 키운다는 점이다.
40대 후반의 그는 대학에서 원예를, 대학원에서는 채소 생리를 공부했다. 어려서부터 동식물에 관심이 많았고 야생화와 난초를 키우는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 대학원 졸업 후 일반 회사에 다니다가 먼저 귀농한 아버지를 따라 퇴촌으로 내려왔다.
“아버지 혼자 식물원을 꾸리고 계셨는데, 어머니가 암으로 투병하게 되면서 간병과 식물원 일을 도와드려야 했어요. 그래서 귀농을 결정했습니다.”
14년 전의 일이다. 아버지 한정웅 씨가 퇴촌으로 내려온 것은 그보다 10년 먼저. 아버지는 곤지암 인근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하려다 지금의 식물원 자리를 보고 땅에 반해서 계획을 수정하셨다. 취미로 야생화와 풍란을 오래 키웠던 탓에 처음에는 풍란을 이곳에서 재배해서 육종하려 했다. 난을 육종하는 일은 부가가치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한다. 보통은 10년 이상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우스 두 동을 짓고 너른 바깥에는 나무를 심어 놨는데, 들렀다 가는 손님들이 아버지에게 야생화를 팔라고 한 거예요. 당시 야생화 붐이 일때라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지요. 전국의 여러 농장을 다니면서 사입하고, 희귀식물도 구해서 심는 등 구색을 열심히 맞추셨어요. 아주 잘 됐어요. 풍란 재배보다 야생화 쪽이 커지고 그때부터 나무도 심으면서 지금의 식물원이 됐지요.”
식물원을 체험교육장으로 연결
아버지와 아들. 2대가 함께 식물을 가꾸고 식물원을 꾸리는 삶은 낭만적이지만 언제나 현실과 이론은 다르다. 대학에서 배운 원예를 적용해 보고 싶은 아들, 평생 야생화와 난을 기르며 몸으로 체득한 아버지. 두 경험이 서로 부딪혔다.
한동훈 씨가 3년을 ‘삽질’만 하다가 지인의 권유로 2009년 ‘벤처농업대학’의 강의를 듣게 된 것은 그 상황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벤처정신을 농업 현장에 적용시켜 보려는 자리였다. 한 달에 한 번 1박 2일로 특강을 들었다.
수업료는 당시 기준으로 150만 원 정도. 전국의 농업인들이 모였으니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디어도 주고받았다. 간혹 사업 파트너를 만나는 사람도 있었다. 네트워크를 쌓는 기회도 됐다. 마지막에는 ‘대학’답게 졸업 논문도 썼다.
그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식물원의 일을 접목시킬 방법을 찾다가 농촌체험교육 농장 사업 계획을 세워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그 길로 지자체 농업기술센터의 문을 두드렸고 그의 사업계획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그 해에 경기도 광주시 에듀팜 1호로 선정되었다.
상추아줌마, 워터젤리 프로그램 개발
에듀팜(Edu-farm)의 정식 명칭은 ‘농촌체험교육농장’이다. 농촌진흥청에서 하는 전국 단위 사업에 경기도에서 사업비 지원금을 더해 ‘에듀팜’이란 이름으로 인증 제도를 만든 것이었다. 첫해에 경기도 내 33개 시에서 11개의 에듀팜이 선정됐는데, 당시 농장의 세부 프로그램은 물론 농장의 여건과 농부의 역량도 평가받았다.
“에듀팜에 선정되면 첫해에 사업비를 지원받고 이후로도 홍보나 마케팅적으로 도움을 받아요. 사업과 관련한 리플렛 등을 제작할 때 함께 소개되고 해당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사업에도 참여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식물과 관련한 체험학습을 돕는 것이 에듀팜의 취지다. 한 씨가 처음 시도한 것은 자신의 대학원 실험실에서의 경험과 기술을 응용한 조직배양실험과 DNA 추출 체험. 하지만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중심인 체험자들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웠다.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규모 역시 40~50명이 최대인데, 학교 측에서는 한 학년 전체가 참여하기를 바랐다.
“조직배양실험을 바탕으로 만든 프로그램이 대상 학생들에게 맞지 않아서 수정하고 추가한 것이 상추아줌마와 워터젤리 프로그램입니다.”
상추아줌마는 풍란을 키우면서 나오는 수태라는 이끼를 재활용해서 여기에 상추를 키울 수 있도록 만든 키트다. 석사 논문을 쓸 당시 상추를 연구 주제로 삼았던 것에서 착안했다. 상추아줌마는 특허를 내고 농업실용화재단의 도움으로 상품으로 출시했다.
또, ‘하이드로컬쳐소일’이라는 워터젤리 역시 보습력이 뛰어난 원예 재료라는 점에 착안해서 식물을 키울 수 있도록 직접 고안한 것이다.
“씨앗부터 성장을 거쳐 먹을 수 있는 체험까지 가능하니 선생님도 아이들도 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 밖에도 풍란의 특성을 활용해 나무에 붙여 자라게 하는 풍란 목부작이나 액자 같은 것을 만드는 프로그램도 추가했다.
배우고 체험하는 식물원의 시도
처음 계획했던 것과 달리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위주로 프로그램이 바뀌자 보완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 일단 식물원은 잔디밭 대신 화분과 나무가 많아서 아이들이 다치기 쉬웠다. 또한 아이를 동반한 가족을 모두 만족시키는 프로그램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개별로 찾아오는 이들을 위한 가족 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해 봤지만 들인 품에 비해서 수익이 낮아서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기 쉽지 않은 면도 있다. 에듀팜 체험객은 1년에 3500-4000여 명 정도로 식물원 방문객이 2만 명 정도인 것에 비하면 많이 적은 수준.
“아버지는 체험 손님을 한두 팀 받는 것보다 식물원 관리에 시간을 들이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시는 편이에요. 시간 투자 대비 수익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판매를 중심으로 하는 곳인 데다 식물원 치고는 좁은 곳(3000평 정도)이어서 입장료를 받자고 하는 아버지의 의견에는 제가 반대하는 상황이고요, 하하하.”
현재 퇴촌식물원의 연 매출은 2억 원을 넘는 수준이다. 식물 판매가 전체 매출의 85% 정도를 차지하고 체험 프로그램 운영은 15% 수준이다. 처음 에듀팜을 시작할 때의 목표는 5:5였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체험농장을 위한 공간과 동선 확보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판매 식물을 위한 공간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해결책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유럽식 가든센터를 모델로 치유농업에도 도전
아직까지는 농장을 확장할 계획은 없다. 판매 위주의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고 여기에 교육까지 더하는 것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조경작업에 대한 의뢰도 있지만 아웃소싱을 해야 하는 일이라 무리하지 않으려 한다. 수익의 15% 정도에 해당하는 에듀팜의 기능을 더 확장하지 않고 대신 프로그램을 좀 더 다듬어갈 생각이다. 장기적으로는 입장료를 받는 식물원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식으로 식물원 형태로 운영하며 식물을 판매하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유럽에 갔다가 가든센터(garden center)를 보고 매료됐는데 바로 그 가든센터를 지향합니다. 바비큐 관련 용품이나, 정원용 도구, 철제 아치 같은 정원 구조물까지 판매하고 거기에 교육까지 이뤄질 수 있는 가든센터면 좋겠어요.”
아울러, 한동훈 씨가 생각하고 있는 식물원의 다른 큰 방향은 ‘원예치료’다. 식물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만지고 향을 느끼는 다양한 체험을 통해서 심신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접목시키는 것이다.
최근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치유농업’이 그것. 이에 맞춰 에듀팜의 체험을 업그레이드해 볼 생각이다. 이것 역시 사업 계획을 신청해서 올해 치유농장으로 선정됐다. 건국대에서 원예치료사 과정도 배우고 있는데 실습 과정은 거쳤고 자격 취득을 위한 논문과 시험을 앞두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치유와 예방 차원의 체험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교육적 목적도 좋지만 앞으로는 자연을 알려주고 전파하는 원예치료사가 될 꿈도 가지고 있고요.”
식물원 운영에 관한 Q&A
Q. 식물원의 1년은 어떻게 돌아가나요?
겨울 관리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야외에 심은 식물은 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남게 되면 특별한 관리가 없습니다. 밖에서 겨울을 나지 못하는 식물들은 늦가을에 온실로 옮기고 나서 온실 관리가 중요하지요.
2월에는 풍란 등 온실 안 식물의 분갈이를 합니다. 3월에 땅이 녹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야생화와 나무들을 화분에 심어서 상품화를 합니다. 화분에 옮겨 심은 식물은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리 하지요.
봄에 식물 수요가 많기 때문에 바쁩니다. 다양한 식물을 사입해서 구색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판매에 집중합니다. 4월부터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체험프로그램 신청이 늘어나고 식물 판매와 관리, 손님 응대 등은 계속 이어집니다.
여름이 되면 처진 봄 식물을 관리하고 더위에 스트레스가 많은 식물들에 영양제도 놔주고 분도 갈아줍니다. 여름 이후에는 무성하게 자란 가지를 잘라주고 내년을 대비해서 나무를 다듬어줍니다. 가을이 되면 다시 사입을 해서 가을 장사를 하고 슬슬 겨울 준비에 들어갑니다.
Q 최근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과 함께 다양한 식물들이 수입돼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물 트렌드에 대처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사실, 가장 많이 놓치고 있는 부분입니다. 식물 카페나 식물을 테마로 한 공간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가보지 못하는 실정이고요. 결국 트렌드나 정보를 얻는 채널은 SNS인데 낮에 식물원의 일을 돌보고 밤에 SNS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Q 식물원 관리에 일손이 많이 필요할 텐데, 인력은 어떻게 운용하나요?
매출을 좀 더 올릴 수 있게 되면 직원 채용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한국농수산대의 실습농장으로 지정받아 2011년도부터 한 해에 1~2명의 실습생을 받습니다. 주 5일 이곳으로 출근해서 일하면서 배우도록 하는 것인데요, 총 기간은 8개월입니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실습을 하고 10월 말에 끝나지요. 급여도 지급되는데 학교와 저희 식물원에서 함께 부담합니다. 현재는 남학생 두 명이 실습 중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홍보나 마케팅, 디자인과 관련한 일을 해줄 인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광주시 농업기술센터에 물었습니다
‘에듀팜과 치유농장, 어떻게 시작할 수 있나요?’
다음 답변은 광주시의 경우로, 지자체별로 예산과 운영 상황이 상이합니다. 더 궁금한 사항은 해당 지자체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Q. 교육체험 농장(에듀팜)은 어떻게 지원하나요?
광주시에서 에듀팜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9년으로 경기도 예산으로 진행되는 사업입니다. 광주시의 경우 해마다 1월에 신청 공고를 내고 지원을 받습니다. 농장 시설과 농민의 운영 역량 위주로 자체 기준에 따라 심사하며 지방보조금심의 위원회를 거쳐 선정과 사업비 지원을 하게 됩니다. 사업비는 교육장 환경 개선과 교육 기자재 구입 등의 목적으로 5000만 원이 지원됩니다.
Q. 에듀팜에 지원하려면 따로 기준이 있나요?
기본적으로 농장과 농작물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귀농했다고 해서 단기간에 체험 교육 농장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면적 규정은 따로 없지만 충분한 주차장과 교육장, 공용시설과 편의시설, 화장실 등이 확보돼야 합니다.
보통은 800평 이상의 땅이 필요하고 교육장 시설 역시 50~80평 정도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 밖에도 진입로 유무와 위치, 위험 요소 등 여러 요소를 실사하게 됩니다.
Q. 임대해서 농장을 운영하는 경우에도 지원이 가능한가요?
사업비는 교육 환경 개선과 관련된 부분에 사용할 수 있지만 임대 농지의 경우 임차 기간 종료로 시설 사용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리합니다. 농장과 농작물 등 환경은 갖춰져 있지만 프로그램이 없는 경우에는 컨설팅을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 개발 비용으로 최대 1000만 원까지 지원을 하기도 합니다.
Q. 치유농장 선정은 어떤 과정으로 이뤄지나요?
광주시에서도 올해 처음 치유농장을 신규사업으로 편성하며 퇴촌식물원이 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3000만 원의 사업비가 지원되며 온실이나 필수적으로 필요한 장애인 화장실 등의 건축비로 사용됐습니다.
치유의 개념이 포괄적이기에 기존에 에듀팜을 운영 중인 농장이 실적면에서 높은 배점을 받을 수 있어 유리합니다. 퇴촌식물원의 경우 꾸준히 에듀팜을 운영한 실적과 함께 농장주가 원예치료사 과정을 학습하는 등의 노력을 인정받아 선정했습니다.
기획&사진 이은석
[이런 기사 어때요?]
>> [전성기TV] 전원주택 살기, 손재주는 없어도 되지만 '이것' 없으면 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