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학림다방은 여전히 핫 플레이스

기사 요약글

대학생 때 자주 갔던 대학로 학림다방을 35년만에 다시 찾았다.

기사 내용

 

SBS <별에서 온 그대> 캡처 이미지

 

 

엇? 저기는?

 

 

2014년 종영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재방송을 보던 중이었다. 도민준(김수현)과 장영목(김창완)이 만남을 갖는 장면에서 순간 눈에 들어온 낯익은 장소.

 

맞다, 학림다방이었다. 색이 바랜 낡은 소파, 겉칠이 벗겨진 테이블, 격자무늬 창문까지 35년 전 대학생 때 자주 갔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35년 전 학림다방은 대학로의 명소였다.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가 신림동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 전까지 학림다방은 ‘제25 강의실’로 불릴 만큼 서울대 학생들이 자주 가던 장소였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토론하고, 카페 창가에 앉아 시를 쓰고, 베토벤 음악을 신청해놓고 음악 감상에 심취해 있던···.

 

지금 생각해보면 문학은 물론, 미술, 연극, 음악 등 예술 전반을 학림다방에서 공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때 누가 알았을까. 이곳의 단골이었던 천상병, 이청준, 황석영이 문화예술계의 거장이 될 줄.  

 

드라마 속 한 장면을 마주하고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길어졌다. 세상이 바뀌어도 남아 있는 것들은 고맙고 반갑다. 64년 동안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온 학림다방을 다시 찾았다.

 

 

 

 

"우리에겐 아직 지키고 반추해야 할 어떤 것이 있노라고

묵묵히 속삭이는 저 홀로 고고한 섬 속의 왕국처럼···"

 

문학 시인 황동일의 헌시 ‘학림다방’의 마지막 구절이다. 학림다방은 1층 입구에서부터 시(詩)로 손님을 맞이한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는 세상 속에서 아직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학림다방이 언제 또 사라질지 몰라 시 안에 담고자 했던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유리문을 열자 노란 조명 아래 나무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삐걱삐걱.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부터 정겹다. 2층 출입문 또한 계단 못지않은 모습이다. 세월의 풍파를 오래 견뎌낸 모습이랄까?

 

조심스레 문을 열면 문에 달린 종이 딸랑딸랑 울리면서 손님이 들어옴을 알리고,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직원들이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학림다방 내부는 TV에서 봤던 대로 몇십 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풍성한 클래식 선율은 카페 전체를 가득 메웠으며, 겉칠이 벗겨진 낡은 나무 테이블과 짙은 회색의 오래된 소파가 눈에 띄었다. 그 밖에 너덜너덜해진 메뉴판, 굳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피아노까지, 학림다방이 겪은 64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내뿜고 있었다. 

 

 

 

 

Q. 옛 모습 그대로네요.

 

제가 1987년에 학림다방을 인수했으니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제가 네 번째 학림지기인데 처음에는 지금 모습이 아니었어요. 경영난 때문에 레스토랑으로 전락했었죠. 옛 단골도 많이 끊긴 상태라 예전 모습을 복구하려고 노력했어요. 가장 먼저 웨이터부터 없앴어요. 클래식 LP판을 다시 들인 것도 그 이유죠. 학림다방은 추억 그 자체예요. 추억이 훼손되거나 왜곡되어서는 안 되죠.

 

Q.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이곳의 단골이잖아요.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게 학림다방을 운영하면서 큰 행운이었죠. 자주 오시는 중년 부부도 기억에 남아요. 두 분 다 대학생 때부터 학림다방의 단골이었거든요. 젊었을 적 추억을 서로 공유하고 있고, 오랜 시간이 흘러 그 공간에 같이 있다는 게 새로운 의미의 행복인가 봐요. <별에서 온 그대> 드라마 촬영도 기억에 남아요. 중국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사진만 잔뜩 찍고 갔거든요. 이분들도 기억에 남는 손님이라면 손님이겠죠.

 

 

 

 

학림다방, 이름의 의미도 궁금했다. 검색해 보니 대학로라는 이름 뜻과도 관련 깊었다. 대학로가 대학을 가로 지르는 길에서 파생됐고, 그 대학이 서울대학교였던 것이다. 그 당시 서울대학교는 여러 곳에 분리되어 있었는데, 대학로에는 서울대 문리대가 있어 문리대 학생들이 많았다. 그래서 문리대 축제 이름인 ‘학림제’에서 이름을 따 학림다방이라 지은 것이다. 

 

 

Q. 학림사건과도 관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학림사건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죠. 전두환 정권 때 민주화를 외치던 학생들이 이곳에서 모임을 가졌어요. 전두환 신군부는 이런 학생들을 반국가단체로 낙인 찍어 처벌했죠. 대학생들이 학림다방에서 모임을 가졌다고 해서 학림사건이라 불리게 된 거예요. 

 

Q. 대학로 역사의 산증인이네요.

 

그렇죠. 4.19 학생 혁명 등 그 이후의 여러 학생 운동을 통해 민주화를 꿈꿨던 대학생들의 피와 땀, 눈물이 묻어 있는 곳이에요. 이곳이 추억이 공간이기도 하지만, 아픔과 슬픔이 짙게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4.19 학생 혁명 당시 김광규 시인은 서울대 문리대 1학년이었어요. 학림다방에서 민주주의를 뜨겁게 열망했었죠.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시에서 나오는 공간이 바로 학림다방이에요.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중략)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이하 생략)”

 

 

 

 

학림다방의 인기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에서 끝이 아니다. 커피 맛 또한 일품이다. 사장님이 직접 볶은 원두를 브랜드로 만들었을 정도다. 카운터 옆에는 ‘학림커피’라는 이름으로 커피 원두를 판매하고 있다. 매일 아침 학림다방을 방문해 커피 한 잔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단골 작가들도 있다고 한다.

 

학림다방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비엔나커피와 핸드드립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학림다방이 주는 추억에다 커피의 맛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였다. 20대부터 젊은 시절 학림에서 데이트를 즐겼던 60대까지 학림다방을 두루두루 찾는 이유가 충분히 짐작 가능한 순간이었다.

 

 

Q. 커피가 정말 맛있어요.

 

제가 학림다방을 처음 운영할 당시만 해도 커피는 ‘믹스커피’였어요. 대기업에서 선보인 믹스커피가 인기가 좋았었죠. 1년이 지났을까요. 일본 기업에 다니는 한 임원이 믹스커피를 맛 보더니 ‘다방 분위기는 좋은데 커피맛이 좀 아쉽다’면서 저를 집으로 초대했어요.

 

집에는 커다란 로스터가 있었고 직접 원두를 볶아 커피를 내려줬죠.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곧바로 그 분을 따라 로스터를 구입하고, 커피 만드는 법도 배웠어요. 하루에 10~20잔을 마시면서 커피 공부를 했더니 지금의 커피가 완성되었죠.

 

Q. 그런데 지금은 로스터가 안 보이네요.

 

학림다방 분점에 있어요. 학림다방 건물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보여요. 커피 원두는 전부 분점에서 만들어요. 그래서 커피 맛은 분점이 더 맛있기도 한 거 같아요.(웃음)

 

사실 분점을 낸 건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학림다방에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모처럼 방문한 단골 손님들이 커피를 못 마시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이것이 큰 계기가 됐죠. 지금은 아들이 학림다방을 운영하고, 제가 분점에서 커피를 만들면서 단골들의 말벗이 되어주고 있어요.

 

 

 

 

다방이라는 이름이 멸종 위기에 처한 오늘날, 학림다방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으로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세상이 이렇게 빨리 바뀌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위안이 되기도 한다.

 

학림다방은 서울시가 발표한 ‘*오래가게’에 선정되었다. 오래된 가게라는 뜻도 있고, 앞으로도 쭉 지금의 자리를 지키면서 오래 가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64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리를 꿋꿋이 지킨 학림다방이 다음에 또 어떤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해 본다.

 

*오래가게

서울시는 오래된 가게를 지칭하는 일본식 한자어 표기인 ‘노포(老鋪)’를 대신하여 ‘오래가게’라는 명칭으로 30년 이상 운영 중인 가게를 선정했다. 오래가게는 ‘오래된 가게가 오래 가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2017년에 첫 시작으로 전통 있는 가게 39곳을 선정했고, 2018년에는 26곳이 ‘오래가게’에 추가되었다. 

 

 

 

학림다방

주소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19 2층

가는 방법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에서 도보 1분

문의 02-742-2877

영업 시간 오전 10시~오후 11시(연중무휴)

대표 메뉴 비엔나커피(HOT/ICE 모두 6500원), 핸드드립 아메리카노(HOT 6000원/ICE 6500원) 

 

 

 

기획 우성민 사진 박충열, 정석훈(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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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눈동자
비엔나 커피 마시러 대학로 가면 꼭 들리는 학림 다방입니다. 학교 다닐때보다 더 많이 찾게 되는것 같아요.
201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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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
추억의 장소~ 아주 오래전 방문했던 기억이 가물가물~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친구들과 방문을~ ^^~
20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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