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신 요즘 며느리, 친정과 비교하고 잔소리도 한다면?

기사 요약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황당한 며느리 대처법.

기사 내용

 

  

Q 며느리가 은연중에 친정과 시댁을 자꾸 비교합니다.

 

안녕하세요. 3년 전 며느리를 본 62세 시어머니 김영자(가명)입니다. 요즘 시집살이시키는 ‘간 큰’ 시어머니가 어디 있겠냐마는, 저 역시 며느리의 심기를 건드릴까 걱정돼 말조심, 행동 조심을 하는 편이지요.

아들 내외가 인근에 사는 터라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함께 밥을 먹거나 집에 다녀가곤 하는데 그때마다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며느리가 은연중에 친정과 시댁을 비교하는 듯한 눈치를 보일 때가 그렇죠.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저는 식탁에 그냥 수저를 놓는데, 며느리는 친정에서는 그랬노라며 수저 받침을 쓰면 좋다는 얘기를 합니다. 양말을 갤 때도 저는 반으로 접어 포개 놓는데, 며느리는 친정에서는 둘둘 말아 수납함에 넣는다며, 그게 더 낫다고 합니다.

경조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릅니다. 바깥 양반이나 저나 일가 친척들과 그다지 돈독한 사이가 아니라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며 사는데, 며느리의 집안은 사돈의 팔촌까지 죄다 어찌나 화목하고 우애가 좋은지 주말마다 각종 경조사에 참석하느라 바쁜 눈치입니다.

곱게, 사랑 받고 잘 자란 아이가 우리 집 며느리가 된 것이 기쁘지만, 가끔 옳고 그름의 기준을 친정에 두고 사는 듯한 며느리가 멀고도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쩐지 대하기가 좀 어렵다고 할까요?

혹시 우리 집 문화가 좀 이상해 보이려나? 우리 사는 방식이 좀 교양 없어 보이는 건 아닐까? 어디 가서 털어놓기도 뭐한 소심한 고민을 하다 보면 며느리가 아니라 상전을 모시고 있다는 자조적인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고 이런 일들이 혼내고 말고 할 문제도 아니잖아요. 앞으로 평생을 보며 살 사이인데, 며느리와 인간적으로 편하게 잘 지낼 방법은 없을까요? 

 

 

A 해외직구하는 며느리, 재래시장 가는 시어머니, 서로 다를 수밖에요.

 

요즘 같은 ‘미혼’과 ‘비혼’시대에 며느리는 천연기념물이자 국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귀하디 귀한 ‘국보급’ 며느리를 모시고 살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시어머니가 잠든 며느리 깰까 염려해 살살 뒷꿈치를 들고 다니다 관절염이 심해졌다는 믿거나 말거나 우스갯 소리가 돌 정도죠.

상황이 이럴지니 곳간 열쇠를 들먹이며 시어머니의 위력을 떨치던 과거는 그야말로 옛말이 돼 버렸습니다. 김영자 씨 역시 ‘불호령’보단 ‘돌봄’을 택한 자애로운 시어머니인 듯합니다. 그래서 속 터지는 상황도 있겠지만, 자애로운 어른, 며느리의 단점뿐 아니라 장점까지 두루두루 아우르는 속 깊은 시어머니로 쭉 자리매김할 확률도 그만큼 높아졌습니다. 

이제 언급하신 몇 가지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보겠습니다. 먼저 며느리가 세련미를 추구하는 편이라면 김영자 씨는 소박하지만 편안한 것들을 좋아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블랙프라이데이를 노려 해외직구로 TV를 사들이는 며느리와 인심에 기대 시장에서 나물을 사던 ‘우리네’와의 접점이 얼마나 있을까요?

세련미를 추구하는 며느리가 내 살림에 지나치게 관여하지 않는다면 ‘너는 그렇구나’ 하고 한마디 한마디에 마음을 쓰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듯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거슬린다면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하길 권해드립니다.

첫 번째 방법으로 그럭저럭 두는 방법입니다. 다소 문제가 있으나 치명적인 결함은 아닌지라 긁어부스럼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사태를 관망하는 식입니다. 잘했냐 물으면 잘했다 답하고, 맛있냐 물으면 맛있다 답하면 됩니다. 며느리의 인정 욕구가 큰 편이라면 이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며 그럭저럭 큰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지요. 

두 번째 방법으로는 규칙을 만들어 불편을 최소화 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며느리가 뭔가 좋다는 식으로 얘기했을 때 “그래 그것 참 좋구나. 그런데 나는 평생을 이렇게 살아서 그런가 이런 방식이 더 편한데 이렇게 지내도 되겠지?”라고 청유형으로 답하는 식입니다. ‘너의 제안은 인정하지만, 수용은 어렵다’는 메시지를 완곡히 전할 수 있죠.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며느리 입장에서도 기분 나쁘지 않게 시어머니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두 사람의 차이점이 극명한 듯합니다. 며느리가 폭넓은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스타일이라면, 김영자 씨는 좁을 수는 있으나 깊고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며느리의 가치관이 지독하게 불편하지 않고, 가끔은 쓸 만하며 넓은 오지랖이 큰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좋게 좋게 봐주려는 노력이 필요할 듯합니다. 

정리하자면 며느리가 특별히 되바라지거나, 유난스럽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두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겪어온 문화가 다르며, 체감한 것들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견해 차이’라 생각하면 편합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불쾌해지는 건 나에 대해 ‘옳다’ ‘그르다’는 판단을 했다는 생각이 들 때지 생각이 다르기 때문은 아니니까요. 물론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다소 불안하고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내면 분명 며느님과의 관계가 훨씬 더 깊고 풍부해질 듯합니다. 머지 않아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면(面)’을 살려주는 존재가,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심(心)’을 알아주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_이호선 교수(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 학과장 겸 한국노인상담센터 센터장)

 

 

기획 장혜정 사진 MBC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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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서로 존중하면서 사는게 최선의 방법인것 같아요.
2019.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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