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취미생활에 빠져들지 못할까?

기사 요약글

취미 하나쯤은 갖고 싶은데 뭐부터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면?

기사 내용

 

  

은퇴 이후의 삶을 풍요롭게 가꿔가려면 건강, 일, 관계 등 여러 요소의 합이 잘 맞아야 하는데, 그 중 취미를 빼놓을 수 없다. 취미를 통해 삶의 즐거움, 성취감을 느끼는 한편 새로운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미에도 역시 ‘노오력’이 필요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아야 하고, 본격적인 취미생활을 위해 어디서 무얼 배워야 하는지도 알아봐야 하니까. 게다가 준비 없이 도전했다간 금새 싫증을 느끼고 때려치우기 십상이다. 그래서 취미수집가로 통하는 이춘재 씨에게 물었다. 취미생활의 왕도가 있나요?

 

 

Q 지금은 취미수집가, 과거엔 어떤 일을 하셨나요?

28년 동안 삼성전자에 근무하다 2015년에 퇴직했어요. 현직에 있을 땐 주로 영업과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죠. 퇴직 후 경영지도사 자격증을 취득, JN유통연구소를 차려 현재는 중소기업 컨설팅이나 기업체 강사, 창업 멘토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7년 경영서 <그 매장은 어떻게 매출을 두 배로 올렸나>를 출간한 바 있고, 지난해에는 퇴직 후 방황하는 동년배, 후배들에게 제 경험을 공유하고자 <퇴직 후에 어떻게 살지?>란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Q <퇴직 후 어떻게 살지>란 책의 중요 파트가 바로 ‘취미’였습니다.

제가 바로 ‘워라밸’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웃음). 현직에 있을 때는 경주마처럼 살았는데 퇴직을 하고 보니 당장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조차 모호하더라고요. 워크는 알았는데 ‘라이프’를 모르고 산 느낌?

사실 퇴직 후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작은 회사에 재취업을 했는데 돈을 생각하면 다니는 게 맞지만, 다시 또 실적의 압박으로 걸어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갑갑했어요. 설상가상으로 지인들의 부고 소식이 들려오면서 ‘오늘 당장 행복하게 살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죠.

회사도 2주만에 그만뒀어요. 돈에 얽매이느라 스트레스 받지 말 것! 그때부터 이 점을 명확한 기준으로 삼고 최소한의 돈벌이만 하며 인생을 즐기기로 했죠. 이런저런 취미생활에 탐닉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어요.

긴 인생을 즐겁게 살려면 즐길 거리, 즉 취미가 꼭 필요 하겠더라고요. 혹자는 ‘삼성 출신’이니 저런 배짱이 같은 소리를 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저는 정말로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대한민국 평범한 중년입니다.

 

 

Q 현재 취미생활을 몇 개나 가지고 있나요?

수채화, 연필화, 서예, 한국화, 문인화, 캘리그라피, 사진, 글쓰기, 요리, 목공, 서각, 영화 감상, 판소리, 사물놀이 등 한 15개쯤 되는 것 같네요. 한시적으로 쉬고 있는 것들도 있는데 대부분 일주일에 3가지 정도는 번갈아 즐기고 있어요.

 

Q 취미생활이 주는 이점이 뭔가요?

일단 즐겁죠. 100세 인생을 산다고 가정하면 퇴직 후 근 40년을 버텨야 하잖아요. 그 긴 시간 동안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해요. 집중하는 동안 잡생각을 떨칠 수 있으니 스트레스 관리에도 좋고, 실력이 쌓이며 성취감도 느낄 수 있죠. 비로서 나를 위해 산다는 기분 때문에 자아존중감마저 들어요.

또 수준급 취미를 가꿔간다면 훗날 강사 등으로 제2의 직업을 도모해 볼 여지도 있습니다. 꼭 박사 학위를 받아야만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요즘엔 편안한 눈높이에서 입문자들을 이끌어갈 정도의 수준을 요구하는 곳도 많습니다.

한편 새로운 사람을 만나 교류하고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도 좋은 기회가 되는데, 취미라는 공통분모가 있으나 각자 살아온 발자취가 달라 신선한 자극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체감하며 삶의 영감을 얻게 되죠.

 

Q 어떻게 하면 나에게 맞는 취미를 찾을 수 있나요?

실제로 취미 하나쯤 즐기고 싶은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분들에겐 ‘가지치기’를 권해드려요. 일단 가장 관심이 가는 영역 하나를 시작해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른 것들을 차차 시도해 보라는 얘기죠.

저도 그랬어요. 첫 취미가 그림 그리기였는데, 10년간 열심히 하면서 전시회도 열고 공모전에 입상하는 수준까지 됐죠. 그런데 어느 순간 그림의 소재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챙겨 야외로 나가기 시작했어요.

산을 그릴까? 꽃을 그릴까? 고민하며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다 보니 차츰 카메라의 매력에 빠졌고, 좀 더 멋진 풍경을 찾다 보니 전국 100대 명산으로 발길이 가더라고요. 산은 등산의 즐거움을, 등산은 또 여행의 즐거움을 일깨워 주었죠.

지금껏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국내 관광지 100곳 중 3분의 2 이상을 돌아봤을 정도고 중간중간 아내와 함께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등으로 해외 여행도 다녀왔어요.

다른 분야도 비슷해요. 서예로 시작해 캘리그라피, 한국화 쪽으로 관심이 확장됐고 국악에 입문하면서 판소리, 사물놀이에 흥미가 생겼죠. 그러니 가장 하고 싶은 것 하나만 먼저 시작해보세요.

  

  

Q 취미생활을 위한 공부는 어디서 했습니까?

평생대학원, 종합복지관,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마트의 문화센터, 기업의 문화재단, 서점의 문화 프로그램 등 취미생활을 돕겠다는 곳은 주변에 널리고 깔렸어요.

저는 퇴직하면 제일 먼저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홈페이지부터 방문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그러면 지자체마다 운영중인 문화센터에 대한 정보가 뜨는데 체육, 취미, 학습 등 숱하게 많은 교육들이 공짜 혹은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저도 그런 곳에서 맛보기로 몇몇 강좌를 들었고 이후 50+센터를 만나 요리, 영화, 독서, 사진, 캘리그라피, 한국화, 글쓰기, SNS 활용, PPT 작성, 동영상 제작, 강의기법 등 숱하게 많은 수업을 들었습니다.

듣고 싶은 강좌를 체크해 나만의 강의시간표를 만들어놓고 여기저기 수업을 들으러 다니느라 바빴죠. 배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단,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면 강좌의 성격을 잘 알아보고 뛰어들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예전에 폴리텍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조리 과정과 실내 건축 과정 2가지 강좌를 들어본 경험이 있는데 정말 유용한 교육이었지만 3개월, 6개월로 교육과정이 꽤 긴 데다 집중적인 교육을 통해 취업을 도와주려는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에 가벼운 취미를 기대하고 왔다면 버거울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따라서 강좌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따져보고 신청해야 하지요. 한편 요즘은 강좌뿐 아니라 인터넷 카페나 밴드 모임이 워낙 잘 돼 있으니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며 독학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Q 중간에 포기하기 쉬운 취미생활,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요?

일단 흥미가 붙을 때까지는 노력해야 해요. 늘 고만고만한 실력이면 싫증을 느끼기가 쉽기 때문에 하루 1~2시간은 투자해 성취의 재미를 느끼셨으면 합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인 뒤에도 슬럼프가 올 수 있는데 이때는 공연이나 대회 참가 등의 목표를 세워 매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취미생활을 함으로써 실생활에 유용한 도움이 되겠다는 계산을 해보는 것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해외 여행 중 만난 멋진 풍경을 스케치하거나, 목판에 좋은 글귀를 새기며 지인들에게 선물할 날을 떠올려 보곤 합니다.

또 술 자리에서 춘향가 한 곡을 뽑아 박수를 받을 때마다 판소리 배워두길 참 잘했다 싶죠. 저희 집사람은 취미로 꾸준히 한국 무용을 배웠는데 금혼식 때 여러 사람 앞에 설 계획으로 요즘 더 열심히 연습에 매달리곤 합니다.

몸으로 하는 취미엔 영 관심이 없던 제가 당구, 바둑,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로 나름의 이점을 고려했기 때문이죠.

요즘 웬만한 모임에서는 다들 술자리 대신 ‘당구나 한 게임 하지’ ‘바둑이나 한 판 두지’ 하는데 제가 그걸 못해서 늘 그냥 집으로 가거나 멀뚱멀뚱 재미없게 앉아있기만 했거든요. 그런데 바둑 강좌며, 당구 학원이며 찾아 다니다 보니까 왕초보일지언정 게임에 끼워주는 현상(?)이 생기더라고요. 나이가 들수록 소외되지 않으려면 뭐든 노력이 필요해요.

 

 

Q 초심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을 알려주세요.

가장 중요한 건 자기 탐색의 시간이에요. 내가 최소한 어떤 분야에 흥미가 있는지 정도는 고민할 필요가 있죠. ‘저 친구 카메라 들고 다니는 게 괜히 멋있어 보이네!’ 하며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취미를 따라 하면 낭패보기 십상이에요.

또 일명 ‘장비병’도 경계해야 해요. 취미든 사진이든 처음부터 고가의 장비부터 구입하고 보는 분들이 있는데, 차근차근 업그레이드된 장비를 마련해 가는 것도 취미생활의 즐거움이라는 점에서 너무 성급하죠. 먼지만 뽀얗게 쌓여 ‘창고행’ 하기 십상이에요.

그런 부정적인 경험이 쌓이면 다른 취미생활을 시작하는 데도 주저할 수밖에 없죠. 그러니 단김에 쇠뿔을 빼려 들지 말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한 땀 한 땀 취미를 탐색해 가세요. 그러면 포기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끊이지 않는 재미를 즐길 수 있을 거예요.

 

 
 
기획 장혜정 사진 지다영, 정석훈(스튜디오 텐)

 

댓글
댓글
검은눈동자
취미생활도 비용이 들기때문에 쉽게 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그래서 저도 인터넷 유투브를 통해 동영상으로 배울 수 있는것은 배우도 있습니다.
2019.09.25
대댓글
이*비
진정 취미로운 삶을 살고 계시네요! 저도 본받아야 겠어요 ㅎㅎ 앞으로도 승승장구 하시길 바랍니다!
2019.09.27
대댓글
이*국
취미? 돈이 필요한게 많지만 지자제 등에서 하는 무료프로그램도 좋은 게 많지요.
2019.10.28
대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