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실패로 얻은 깨달음, 스토리텔링 사관학교를 세우다

기사 요약글

퇴직 후 고향에 내려간 부부가 도시의 샌님티를 벗고 스마트한 농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기사 내용

 

조성천, 김연화 씨 부부

 

 

낭만을 꿈꾸며 퇴직 후 시골생활 정착

 

건설회사 임원이었던 남편 조성천 씨가 명예퇴직을 한 건 약 10년 전. 한국전력과 두산중공업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던 그였지만, 퇴직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열심히 산 대가로 점점 직위가 올라갔는데, 그 덕분에 또 내려와야 했어요(웃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참 막막했는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 과거의 영예를 늘어놓느라 허송세월 하긴 싫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자연에 그림을 그리듯,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가꿔가고 싶었던 그는 부인 김연화 씨를 설득해 전북 김제로 터전을 옮겼다. 도시에서 시골로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를 겪었지만 적응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농가주택을 수리한 집에는 낭만이 있었고, 넓은 마당에는 아내의 바람대로 매실, 감, 사과나무들이 보기 좋게 자랐다. 걱정했던 농사도 웬일인지(?) 잘됐다.

 

“첫해에 배추 수확이 참 잘돼서 농사 그까짓것 별거 아닌 줄 알았죠. 자신만만하게 큰돈을 들여 씨앗이며 퇴비, 농기구, 농자재를 구입했는데 어쩐 일인지 큰 결실을 얻기가 어려웠어요. 애써 생산한 농산물이 팔리지 않아 헐값에 넘기거나 공짜로 나눠주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제야 농사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된 그는 인근의 농업기술센터, 기술원 등으로 영농 교육을 받으러 다녔고, 그 과정에서 농사의 기본기는 물론, 전자상거래 등 수확한 농산물의 판매 방식과 농식품 가공 기술 등에 관한 지식을 쌓게 된다.

가공 공장 설립을 계획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농산물을 가공해 상품을 만들면, 오래 보관할 수 있을뿐더러 시세와 상관없이 일정한 값을 받을 수 있어 여러모로 유리하겠다는 판단이 든 것이다. 그래서 부부는 여러 연구 끝에 직접 재배한 새싹보리와 쌀, 호박과 생강 등을 활용해 천연 단맛을 내는 조청을 생산하기에 이른다. 타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해 간단히 짜먹을 수 있는 조청, 액상 음료처럼 마시는 조청 등을 개발했는데 이런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2014년 전라북도 농식품 가공 콘테스트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7,000만원의 매출을 올렸을 정도인데, 부인 김연화 씨는 조청 제작과 관련해 여러 센터로 교육을 다니는 어엿한 강사가 됐다.

 

“처음 시골로 내려왔을 땐 커피 한잔 타 들고 일하는 남편을 구경하거나 양산을 들고 이리저리 마을 구경을 다니는 게 일이었죠. 지금은 조청을 개발한 덕분에 틈틈이 강사로 일하고 있어요. 또 평생 꿈이었던 나만의 정원을 가꿔간다는 기쁨도 매일 누리고 있죠. 뙤약볕에서 옥수수를 따다 기절해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을 만큼 녹록지 않은 시골생활이지만, 분명 도시의 삶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만족이 있어요.”

 


 

이야기의 힘이 농부를 살린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스토리텔링 사관학교 전경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농업기술센터 등을 찾았던 조성천 씨는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여러 역할을 수행했다. 전북 농업인 블로그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농촌에서 일어나는 여러 에피소드와 농업 관련 소식을 포스팅했고 ‘강소농(작지만 강한 농업인)’ 회장을 맡아 영농인들간의 교류 및 판매망 구축에 힘을 쏟았다.

농사는 짓는 것 못지않게 판로 개척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요즘 농부들은 직접 온라인 상거래 SNS 마케팅 등을 공부하곤 하는데 ‘강소농’은 주기적으로 모여 온라인 판매, 소셜네트워크 활용 등을 고민하고 각 농부가 생산해 낸 농산물로 꾸러미를 만들어 이를 블로그, 카페 등에 올려 판매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이 과정을 거치며 그는 농부 개개인의 스토리가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토마토 농사를 지어 이를 온라인에서 판매한다고 가정했을 때, 단순히 영양 정보, 가격 등을 표시하는 선에서 그칠 수 있지만, 그 반면 나는 어떤 사람이고 토마토 농사를 지으며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는 식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면 자연스럽게 상품에 대한 관심과 호감이 생겨 판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농부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이 펼쳐지고 있다

 

이렇듯 이야기의 힘을 신뢰하게 된 그는 농부들의 스토리를 모아, 대한민국 농경사에 큰 힘을 보태겠다는 의도로 노후자금을 털어 스토리텔링 사관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직접 포클레인 운전을 배울 정도로 애정을 쏟은 덕분에 2년만에 근사한 2층짜리 ‘학교’가 완성됐는데, 2017년 완공된 이후로 이곳에서는 ‘요즘 농부’들이 배우고 익혀야 할 각종 교육이 이뤄진다.

전북농업기술원의 지원으로 농부들을 위한 ‘글쓰기 교실’이 열리기도 하고 ‘SNS 활용법’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기도 하며, ‘온라인 상거래 강좌’가 마련되기도 한다. 그 밖에 소소한 공연이나 강연, 모임 등 농부들의 권익과 복지를 위한 크고 작은 활동들이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전북농업기술원의 지원으로  열린 농부들을 위한 ‘글쓰기 교실’ 수업 중  

 

블로그 기자 출신답게 조성천 씨는 개인 블로그와 유튜브, 페이스 북 등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소식과, 농부들의 스토리를 올리기도 하는데 이런 자료들이 곧 김제, 나아가 대한민국 농부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귀중한 데이터가 된다. 서울 생활 30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딱히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그는 요즘에서야 행복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며 웃는다.

 

“직장생활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는데, 이렇게 고향 사람들과 화목하게 어울려 지내는 한편, 농부들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행복하고 보람됩니다. 늦은 나이지만 정말 의미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 같아 다행이에요.”

 

 

기획 장혜정 사진 지다영(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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