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직업으로! LP 수집가의 즐거운 인생 2라운드

기사 요약글

취미가 업이 되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누구보다 즐거운 인생 후반전을 즐기는 이를 만났다. LP 수집가에서 LP 바 사장님이 된 김재원 씨의 이야기다.

기사 내용

 

을지로 어느 작은 골목에 들어서면 ‘음악의 숲’이라는 낡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지하로 내려가면 마치 1980년대 DJ가 활동했던 음악다방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은 16년 차 DJ 김재원 씨가 인생 2라운드를 즐기기 위해 마련한 아지트다.

의류 무역회사를 다니다 IMF 이후 퇴직한 그는 회사 생활에서 얻은 노하우로 동대문에 의류 가게를 차렸다.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녹록지는 않았지만 남다른 취미 생활로 스트레스를 상쇄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모아온 LP로 노래를 듣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진 취미 생활은 자신만의 ‘음악실’을 따로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다.

“LP가 오래되면 집에 둘 수 없을 정도로 헌책방에서 나는 것 같은 냄새가 나요. 그래서 작은 창고를 하나 얻어서 거기에 LP를 보관했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 가서 노래를 듣곤 했는데 갈 때마다 의자를 하나 가져간다거나 조명을 둔다거나 하면서 정말 아지트처럼 변했죠. 그러면서 종종 지인들과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들었는데, 지인들이 차라리 LP 바를 차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진짜 아지트를 만들다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LP 바를 차리는 데 관심이 갔다. 그러던 차 동대문 인근에 비워져 있던 작은 다방을 보게 됐고, 저렴한 월세에 반해 선뜻 LP 바를 차렸다. 낮에는 의류 가게에서, 밤에는 LP 바의 DJ로 이중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업자등록만 내고 시작했어요. 음식도 특별할 거 없이 마른안주와 황도 캔이 다였죠. 솔직히 파리만 날렸어요. 그럴 만했던 게 제가 모았던 LP가 3,000장 정도 됐고, 나름 음악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했는데 취향이 다른 손님이 오거나 젊은 손님이 와서 신청곡을 써 내면 창피할 정도로 모르겠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던 그는 신청곡 종이를 보물처럼 여기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신청곡으로 들어온 LP를 사기 위해 몇 날 며칠 발품을 파는 것은 물론 그 시대의 음악, 가수 등을 폭넓게 공부했다. 그렇게 손님이 조금씩 늘더니 청계천 복원 사업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적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가게를 차린 지 꼬박 2년 반 만이다.

“2년 반을 어찌어찌 보내니까 알음알음 알려지더니 LP 동호회, 동창회 등 모임 단위로 방문하면서 인터넷 카페에도 알려지고, 신문사에서 취재도 오면서 수익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2년 정도 운영했을까요? 장사가 잘되니까 건물주가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4년 만에 다른 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그러다 만난 곳이 지금 ‘음악의 숲’ 자리다. 지하 50평 규모에 같은 조건의 물건보다 월세가 절반이었던 이곳은 몇 년 동안 방치되어 폐허 수준이었다. 먼지를 걷어 내고 곰팡이를 벗겨 내는 데만 두 달, 끊긴 전기와 수도를 다시 잇고 영업을 개시했는데, 얼마나 관리가 안 됐던지 비가 오면 천장이고 벽이고 물이 줄줄 샜다.

“저렴하다고 무작정 계약한 게 실수라면 실수지요. 비가 조금씩 새다 못해 장마 때 물난리가 났었는데, 얼마나 서럽던지. 아래 칸에 있던 LP는 다 망가지고 한동안 장사하기 힘들 정도였어요.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오니까 습기가 차면서 곰팡이가 슬고 오디오까지 망가지더라고요. 2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장사도 잘 안 됐고요.”

그럼에도 그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단골손님들의 응원 덕분이었다. 그때그때 문제점을 해결해가면서 긍정의 마음으로 가게를 운영하니 행운이 찾아왔다. 아날로그 붐을 이끈 영화 <써니>의 배경으로 음악의 숲이 등장하면서다.

“영화의 힘이 얼마나 대단하던지 매출이 두 배로 늘었어요. 옛 추억을 찾는 사람, 20~30대 젊은 사람들까지 와주셨어요. 또 그즈음 옷가게도 수명을 다했는지 운영이 힘들어지면서 정리하고 집사람도 합류했어요. 그런데 손님이 많은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손님이 많으니 신청곡도 밀렸다. 자신이 신청한 곡을 들으려면 1시간은 기다려야 하니 그 노래를 듣지도 못하고 나가는 손님이 생겼다.

“집사람과 이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이야기해봤어요. 사실 체력 소모가 심한 일은 아니니 잘하면 10년 더 할 수 있겠다고 의견을 모았죠. 그러려면 저희가 웃으면서 일해야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어요.”

 

 

중년 DJ의 꿈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만 운영하는 것으로 영업시간을 단축했고 공휴일에는 문을 닫았다. 단골손님들이 처음에는 불만을 표현했지만 곧 뜻을 이해해주었고, 또 짧은 영업시간을 오히려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손님도 생겼다. 여유가 생기니 다시 초심처럼 손님을 대할 수 있었다.

“제가 10년 넘게 운영해보니 LP 바는 좋은 장소에 있거나 혹은 인테리어가 멋진 것과 상관없이 손님이 오고 가요. 손님 마음에 들면 장사가 잘되는 거죠. 외형적인 것보다는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하고 신청곡 한 곡이라도 더 틀어드리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바 한쪽에 혼자 오는 손님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작은 계획이라는 그는 한자리에서만 14년 동안 LP를 만졌으니 앞으로도 큰 탈 없이 이곳에서 음악을 트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오래된 레코드의 지글지글 잡음이 섞인 음악 소리가 인테리어가 되는 곳, 음악의 숲에는 추억과 꿈이 공존한다.

 

 

기획 서희라 사진 이대원(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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