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왜 수학을 공부하냐고요?

기사 요약글

인생 수학을 배우는 사람들.

기사 내용

 


“오늘은 삼각함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중학교 때 배운 내용인데요, 삼각함수란 뭘까요? 또 우리 일상에서 어떻게 적용될까요?”

금요일 저녁 종로의 한 강의실. 50~60대로 보이는 13명의 중년들이 강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X축, Y축, 사인(sin), 코사인(cos), 피타고라스의 정리 등 학창 시절에 배우던 수학용어들이 칠판에 가득 채워지며 강의실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그런데 여느 수학 학원의 풍경과는 다르다. 강사는 문제 풀이가 아니라 삼각함수의 개념과 원리, 관련 공식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증명하며 일상생활에서 삼각함수를 활용하는 사례를 설명했다. 수강생들의 수업 태도도 적극적이었다. 중간중간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 있으면 바로바로 질문을 던졌고, 때때로 하나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했다. 뒤늦게 학구열을 불태우는 이들은 ‘어른들을 위한 현대수학’ 회원들.

 

 

이 나이에 무슨 수학이냐고요?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어른을 위한 현대수학’ 모임은 오디오 회사 대표인 이승목 씨가 강사로 나서 모임을 이끈다. 회원들의 다양한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하는 그는 미국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캠퍼스에서 복소기하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수학 전공자다.

“2년 전 페이스북에서 결성된 ‘수학지옥’이라는 수학책 읽기 모임에서 출발했어요. 이곳에서 멘토로 활동하다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수학에 대해서 근본적인 것을 가르치고자 이 모임을 열고 강좌를 개설했지요.”

현재 페이스북 회원은 110여 명, 강좌에 참여하는 회원은 20여 명으로 회원들의 연령은 50대 이상이다. 직업군은 IT 계열, 언론, 학원, 교사, 교수, 주부 등 다양하다. 첫 강좌부터 참여해온 한 회원은 “이 나이에 무슨 수학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다들 어떤 필요에 의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수학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서 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강의 주제는 ‘덧셈에서 적분까지’ 총 9개월 과정으로 기초적인 덧셈부터 시작해 적분까지 이해하는 것이 목표. 이를 위해 4월엔 방정식, 5월엔 함수, 6월엔 행렬 식으로 매월 개별 주제를 정해, 함께 공부하며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가장 밑바닥 수준에서 출발합니다. 덧셈의 경우 ‘1+1은 왜 2인가’부터 시작해 실수의 사칙연산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생각하고 자연수, 정수, 무리수까지 수의 범위를 넓혀가는 식이지요.”

강의는 여느 수학 학원처럼 문제 풀이 위주가 아니라 개념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돼 수학 초보자나 중간에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따라올 수 있다.

“수학 하면 지레 겁부터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개념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모든 개념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출발하거든요. 또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많은 것이 수학과 연관돼 있고요. 예를 들어 기상청은 일기예보를 어떻게 할까요? 이메일 서비스업체는 내가 받은 메일이 스팸인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할까요? 또 암 검사를 받았을 때 양성반응 50%가 나왔다면, 실제 암에 걸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이는 확률에서 베이즈 정리를 이용하면 쉽게 알 수 있어요. 이렇듯 수학의 개념과 공식은 일상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수학을 공부한 이후 결정장애가 사라졌어요

 


중년들이 뒤늦게 수학에 빠진 이유도 일상에서 수학적 사고를 적용하기 위해서다. 수학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사고를 넓히는 훈련을 하고 세상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 

“요즘 가짜 정보가 넘쳐나요. 그런데 수학적 사고를 하면 그 정보가 진짜인지 회의하게 되고 그 정보에 이르기까지 논리적 고리가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도 적용되지요. 삶에서 중요한 문제에 부딪히거나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닥칠 때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그럴듯한 사고를 배격하고 논리적 사고를 해야 합니다. 결론에 도달하는 모든 논리가 정확하면 우리는 옳은 판단을 할 수 있거든요.”

이 모임에선 문제를 풀어 답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를 풀기 전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다룬다. 당연히 회원들의 수학 실력을 평가하는 일도 없다. 오히려 지식 자랑을 경계하고 지식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중요하게 본다. 

“저희는 모임 뒤풀이도 하지 않아요. 저마다의 목적이 있어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온 분들이지 친목을 위해 온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친목이 잦아지면 자칫 이도 저도 아닌 모임이 될 수 있어 주의합니다. 모임이 취지에 맞게 잘 운영되려면 회원들 간 사생활을 존중하고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더라고요.”

‘어른을 위한 현대수학’은 오픈 강좌 모임으로 가입 기준은 따로 없다. 수학에 관심 있는 성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신청 및 문의
페이스북 ‘어른을 위한 현대수학’
www.facebook.com/groups/227417361504810
 

 

기획 이인철 사진 박충열, 정석훈(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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