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간병하다가 제가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기사 요약글

오랜 기간 자리에 누운 가족을 간병하는 이들에게 닥친 가장 큰 어려움은 사회적 고립과 우울증이다.

기사 내용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 간병 3년
최춘화 씨(70세)

 

지난 4월은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진 지 딱 3년째 되는 달이었다. 날아가듯 달려간 수술실 앞에서 살려만 달라고 기도하던 순간이 기억에 선하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의사가 ‘죽을 사람을 살려놨다’고 해서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후유증으로 인해 나를 보고 ‘엄마’라 부르던 남편을 마주했을 때는 그야말로 깜깜했다.

막막함이 나를 짓누르고, 자식들에게 짐이 될 수 있겠다는 마음에 같이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남편이 ‘걸을 수만 있다면, 아니 스스로 설 수만 있다면, 그것도 안 된다면 정신이라도 온전하면 버텨 볼 텐데’라는 생각이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머릿속에 온갖 나쁜 생각이 부유하는 와중에도 손과 발은 간병으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절망 가운데에서 아주 작은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고 생각했다. 아내, 엄마에서 하루아침에 간병인으로 역할이 바뀐 내가 우울증에 잠식되는 것도 모르는 채 말이다. 

기적적으로 남편의 상태가 좋아지면서 간병에 보람을 느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 나이 일흔이 넘으면서 오는 크고 작은 질병과 심적인 외로움, 막막함은 작은 보람 이상의 괴로움을 남겼다. ‘더 이상 간병을 할 수 없는 날이 오면 같이 죽어야지’라는 생각이 마치 다짐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자식에게도, 친척에게도 터놓을 수 없었다. 

 

 

우울증이니 상담을 받으라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휴대폰 속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가족 상담 지원 서비스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왜 상담을 하라는 것인지, 무슨 자랑거리라고 집안일을 내보여야 하는 것인지 의문만 들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지난 2월 같은 문자를 또 받았다. 예전과 달리 무슨 심경의 변화였는지 나도 모르게 상담을 신청했다. 

상담사와의 만남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데면데면 앉아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기본적인 정보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정도. 그런데 희한하게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만남이 두 번, 세 번 이어졌을 때 어느 순간 다음 상담일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나만 이런 외로움을 느끼는 줄 알았는데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 또 그들을 만나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낭떠러지에 매달린 나에게 동아줄 같은 구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네 번의 집단 활동과 여섯 번의 개별 상담 총 10회에 걸친 상담은 실로 나를 변화시켰다. 힘들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무엇보다 내 마음을 모두가 공감한다는 것이 남편을 돌보는 힘이 되어주었다.

10회의 프로그램이 끝난 후 ‘동지’들과 우리만의 만남을 약속했다. 서로 응원하고 위로하며 함께 울어주는 모임이다. 지금은 자리를 비운 우울증이 언젠가 남편의 상태가 나빠지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이제 밖으로 손을 뻗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니까.

 

가족 상담 지원 서비스는

집에서 수발하는 가족 간병인의 스트레스와 우울감 완화를 위한 서비스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양 부담감이 큰 간병인을 위해 개발한 전문 프로그램인 ‘돌봄여정 나침반’을 통해 개별 맞춤형 심리 상담과 응급 상황 대응 등을 지원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1577-1000 / www.nhis.or.kr

 


 

 


Interview
국민건강보험공단 한송희 주임

 

Q 어떤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나요?

오랜 시간 배우자를 간병하면서 스트레스가 많고 마음이 약해진 분들을 대상으로 진행합니다. 통상 세 가지 경로로 선정하는데 첫째, 공단에서 부양 부담이 높다고 인정된 가족 간병인, 둘째, 재가 기관이 서비스 제공 중에 부양 부담이 높고,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가족 간병인, 셋째, 본인의 직접 신청입니다. 세 가지 모두 전문 직원이 ‘선정 조사지’를 통해 최종 선정하는데, 수급자가 치매인 경우에는 선정 조사를 하지 않고 대상자로 선정합니다.

 

Q 상담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국가 공인 정신건강 전문 자격증을 가진 공단의 상담사가 주 1회씩 총 6회 간병인을 찾아가 개별 상담을 진행하고 같은 상황에 놓인 간병인들과 함께하는 집단 활동 프로그램을 4회 실시합니다. 이렇게 총 10회의 상담이 끝나면 함께 상담을 받은 가족 간병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장소 등을 제공합니다. 

 

Q 집단 활동에는 몇 명 정도가 참여하고 어떤 프로그램을 받나요?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평균 12인이 1기수가 되고, 주로 60~70대의 배우자를 수발하는 고령의 가족 간병인이 많습니다. 프로그램은 마음의 상처를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그림 그리기, 식물 기르기, 액자 만들기부터 건강 체크,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법 등으로 이뤄지고 언젠가 배우자가 곁을 떠났을 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아름다운 이별 준비’와 같은 심리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합니다. 

 

Q 10회의 상담으로 심리적 치유가 될 수 있을까요?

상담은 질적 서비스이기 때문에 정량 평가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상담 대상의 가족 간병인들은 본인 스스로 상담이 필요한 상태인지 인지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돌봄여정 나침반 프로그램은 가족 간병인들의 스트레스와 우울감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동시에, 자살 등의 극단적 선택을 저지하는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획 서희라 일러스트 김가빈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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