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서는 용기까지 배운 영어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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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을 앞두고 떠난 2개월간의 어학연수. 어떤 언어 천재도 2개월 만에 한 가지 언어에 익숙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망각과 싸우면서 매일 패배하는 58세의 내게 2개월 만에 영어가 술술 되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도전으로 둥지에서 나와 홀로 세상에 맞서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애초부터 2개월 만에 내 입에서 영어가 술술 나올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롭게 연수를 떠난 이유가 있다.

첫째는 30년 동안 한 번도 불러내지 않아 의식의 수면 아래에 침몰해 있는 학교 공부의 기억을인양하는 것이다.

둘째는 단절이 필요했다. 일, 가사, 약속, 게으름 등 공부를 안 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그 모든 것에서 도피하고 싶었다.

셋째는 즐거움이다. 비록 그것이 학습이라는 형식일지라도 딸 같은 튜터와 단둘이 하루에 몇 시간씩 대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일대일로 학습지 교사의 자상한 돌봄을 받는 어린이가 된 기쁨을 줄 것이라 여겼다.

넷째는 여행이다. 주말마다 어학원 밖을 탐험할 결심이었다. 혼자 혹은 현지에 있는 누군가를 친구로 만들거나 현지 상황에 적응해가는 모든 것이 내게는 미지의 행성에 처음 착륙한 우주비행사처럼 낯선 경험일 것이다.


“당신은 토플이나 토익 점수를 올려야 할 이유가 없어요. 한국 밖에서도 홀로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만나고 로컬을 체험하는 것을 즐겨요. 필리핀에는 당신의 모험을 기다리는 섬이 7천 개나 있답니다.”



미지로 떠나는 두렵고 불안한 내 마음을 읽은 남편의 격려였다. 남편은 외국어 얘기만 나오면 항상 목소리가 커진다. “외국어는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기 위해 하는 공부가 되어서는 안 되요. 언어는 그 문화권의 광활하고 오묘한 역사와 혼, 서정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지요.”

필리핀으로 떠난 것은 뒤늦게나마 그 관문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늘 아이들에게 ‘둥지 밖 세상’을 향해 둥지를 박차고 나가라고 강조해온 내가 직접 둥지에서 나온 일이기도 했다.

 

You inspire me : 당신은 내게 영감을 주고 있어요


내가 입학한 어학원은 일로일로시티 도심에서 좀 떨어진 곳이었지만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이 사는 주택가로, 그 도시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사립대학인 CPU대학(Central Philippine University)이 있는 곳이었다.

어학원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수업을 진행하고 토요일과 일요일, 필리핀 공휴일은 휴무였다. 첫 주말에는 세탁하고, 기숙사 방에서 수행하고, 독서실에서 예습하다가 지프니를 타고 스몰빌(Small Ville)이라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다운타운으로 나갔다.

라이브는 밤 9시가 되어야 시작된다고 해 늦어지는 것이 조심스러워 시내만 답사하고 다시 숙소로 들어와 기숙사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유학, 외국인 회사로의 이직 등 각기 다른 목적으로 연수를 택한 그들의 도전을 칭찬했다.

 

 

“리얼 필리핀을 경험하세요.”

 

한국에 있는 남편이 내 주말을 더 챙겼다. 주말에 기숙사에서 책으로 하는 공부 대신 기숙사 밖으로 나가 로컬 커뮤니티를 경험하라고 종용했다. 그래서 홀로 인근 대학과 대성당, 전통시장과 거리들을 다니는 데 익숙해질 무렵, 좀 더 먼 곳을 탐험할 계획을 세웠다.

우선은 일로일로시티와 마주 보고 있는, 서울 넓이의 기마라스(Guimaras)섬을 여행했다. 망고 축제로 유명한 망고의 섬이다. 부활절인 홀리위크(Holy Week)와 필리핀 국경일까지 포함해 4일간 연휴가 이어지는 주말에는 환경 복원을 위해 폐쇄를 앞둔 파나이섬 북단에 있는 보라카이(Boracay)섬으로 갔다.

 

 

4km에 걸쳐 산호 모래가 깔려 있는 화이트 비치가 장관이었다. 자연과의 조화를 위해 코코넛나무 높이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으며 파도가 닿는 해안 끝에서 300m 이내에는 건물을 지을 수 없단다. 숙소 지붕은 필리핀 전통가옥처럼 나뭇잎으로 이어 만들어 하늘빛이 보였다.

밤에는 방 안 벽에서 작은 도마뱀이‘또르르 똑 또르르 똑’ 노래를 불러주었다. 국내선 비행기를 예약해 비경의 생태계로 주목받는 팔라완(Palawan)섬에 다녀오기도 했다.

귀국 전 마지막 2주간 주말에는 한인교회를 방문했다. 예배가 끝나고 교민이 사준 커피도 마시고 미용실도 방문했다. 지나고 보니 2개월이 순식간이었다. 외국에 있다는 긴장도 느슨해지고 공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사라졌다. 정들었던 어학원 사람들과 작별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학생이라는 이 특별한 권리를 몇 개월쯤은 더 누리고 싶어졌다.

 

 

Been there, done that, got the T-shirt : 나도 해봤다니까


사람과 사람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섬이 아닐 수 있는 이유는 소통 덕분이다. 상대의 가슴에 닿을 수 있는 수많은 소통 방법 중에서 효율이 높은 것이 언어의 배를 타는 것임을 이번 어학연수를 하면서 절감했다. 그래서 다시 예전 일상으로 복귀한 지금도 그 배를 젓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먼저 필리핀에서 만난 현지인의 아들이 한국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기에 그곳을 찾아가 그 아들과 동료를 만났다. 첫 만남이었지만 식탁 너머의 그들은 먼 나라의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고향을 알고 있고, 그는 나의 나라를 알고 있어서다.

어학원에서 베트남 매니저였던 미나 탐(Minh Tâm)과 몇몇 튜터는 페이스북으로 닿아 있다. 내가 간간이 올리는 한국의 일상을 보고 그녀가 덧글을 단다.

“You inspire me.” 한국에 한 번 오라고 하면 ‘그것이 올해의 목표’라고 말한다. 걱정 말고 오기나 하라고 하면 그녀는 감탄사를 몇 개 달아서 고마워한다. “Oh!! I am super lucky!!!” 2개월간 경험한 도전이 먼 남이었던 그들을 내 이웃으로 만들어주었다. 짧은 도전이 내 인생의 폭까지 넓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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