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관리왕 유인경과 조영구, 김성녀에게 배우는 관계 맺기의 기술

기사 요약글

누구보다 많은 관계를 맺으며 나름의 질문과 대답을 반복해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들려주는 현명한 관계 맺기의 기술.

기사 내용

 

 

 

“관계란 넓이가 아닌 깊이” 작가 겸 방송인 유인경

 

 

수다의 힘과 오지랖의 장점을 피력할 때는 세상 친근한 ‘아줌마’지만, 유인경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모 신문사 여성 최초로 정년퇴직을 한 기자다. 허술함과 영민함을 고루 갖춘(?) 그녀를 사람들은 좋아한다.

 

 

27년간 기자 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죠. 그만큼 발이 넓을 테고요.

 

맞아요. 제가 발볼이 넓어요(웃음).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가 많으면 발이 넓다고 하죠. 제 휴대폰에 한 1800여 명 정도의 전화번호가 있는데 그중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몇 이나 되겠어요. 많지 않아요. 술, 담배, 골프, 운전, 동호회처럼 사교 생활을 위한 능력(?)이 저한테는 전혀 없어요. 의외로 제가 사교적인 사람이 아닌데 거절을 못해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거죠.

 

 

그렇다면 각별히 교류하는 분들은 어떤 사람들이에요?

 

50년 이상 우정을 유지하는 초등학교 친구들, 중고등학교 동창들, 업계 선후배들, 나보다 열두 살이나 많지만 어쩌면 저렇게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까 매번 놀라는 문정희 시인, 티격태격하면서도 잘 맞는 전원책 변호사 등 많죠.

 

저는 일단 같이 있을 때 즐겁고 유쾌한 사람이 좋아요. ‘저 대단한 사람을 사귀어서 훗날 뭘 부탁해야지~’ 하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저 재미있어서 만나던 사람들이 나에게 뜻밖의 도움을 줄 때는 오히려 있죠. 저는 이제 하나뿐인 자식도 결혼시켰고 부모님도 다 돌아가셔서 ‘인맥 관리’를 할 일도 없어요.

 

 

지인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마음을 표현하세요?

 

상대에 대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타이밍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지인 중에 사고나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분이 꽤 있거든요. 왜 그때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못했을까 후회하면 이미 늦죠. 그래서 요즘은 종종 뜬금없이 전화하거나 카톡을 보내요. 후배 기자들 같으면 오늘 기사 좋더라는 문자를 잘 보내죠. 뒤에 유인경 독자 올림을 꼭 붙여서(웃음).

 

사람들한테 밥도 잘 사요. 엄마가 평소 ‘밥 덕’이라 는 게 있다고 늘 말씀하셨거든요. 도움받은 일은 꼭 기억했다가 두고두고 고마워하는 것도 나름의 표현이고요.

 

 

미운 사람은 없어요?

 

왜 없어요. 나한테 못되게 구는 사람은 다 밉죠. 회사 다닐 땐 제가 강연이다 집필이다 외부 활동이 많으니까 한 달에 몇천만원의 부수입을 올린다더라 하는 이상한 소문을 내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기도했죠. 제발 저 말이 씨가 되게 해주세요(웃음).

 

또 강연 다니다 보면 별일이 다 있거든요. 몇 달 전 잡아놓은 강연 스케줄인데 주최 측에서 연락이 없어 전화해보면 취소 결정이 났대요. 좋은 의도로 글쓰기 강연을 했을 뿐인데, 그 강의 듣고도 아직 취직이 안 됐다며 항의하는 분들도 만나요.

 

그렇게 남 때문에 속상할 땐 그래도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위로가 되더라고요. 나쁜 사람은 소수고 좋은 사람이 다수면 그래도 남는 장사잖아요. 그리고 모든 관계를 다 끌고 갈 수도 없어요. 소중한 사람들한테 잘하고 살기도 얼마나 버거운데요. 좋은 인간관계란 결국 넓이가 아닌 깊이에 방점을 둬야 해요. 그래야 관계에서 오는 만족감도 크더라고요.

 

 

가깝게 지내다 멀어지는 인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잘 지내다 연락이 끊긴 친구가 있는데 제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가 없더라고요. 만일 저도 모르는 잘못이 있다면 용서해주길 바라되, 억지로 다시 관계의 물꼬를 트려고 노력하진 않아요. 그게 자연스러우니까.

 

그 대신 새롭게 맺는 인연들에게 에너지를 집중하는 거죠. 새 물건이 그렇듯 새로운 사람들이 주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또 있더라고요. 현직에선 떠났지만 저는 여전히 그런 재미를 기대하며 살고 있어요.

 

 

 

 

“인맥이 제 전부예요” 방송인 조영구

  

 

25년 차 베테랑 방송인이자 이사업계 1위 ‘영구크린’을 이끄는 사업가, 트로트 앨범을 낸 가수, 강의하고 행사 뛰는 전문 MC.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만 3000명이 넘는 바쁜 조영구를 만났다.

 

 

국회로 오라고 해서 놀랐어요. 국회에는 무슨 일이죠?

 

국회의원 한 분이 여기서 강의를 하시는데 제가 사회를 봤어요(웃음). 지인 통해 우연히 또 의원님과 인연이 돼서요. 오늘 강의 사회 보고 다음 사회 약속을 받았어요. 이렇게 인연이 또 일로 이어 지는 거죠.

 

 

인연을 일로 연결시키네요.

 

사업을 하면서 점점 더 강조하는 게 한 번 고객은 평생 고객이라는 거예요. 그게 다 관계인데, 관계는 절대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정말 인간관계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제가 충북대학교에 다닐 때 방송인의 꿈을 안고 돈 한푼 없이 서울로 올라왔거든요. 당시 제일 잘나가던 김병찬 아나운서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무작정 전화했어요. 그땐 자동응답기가 있었는데, 20일을 매일 자동응답기에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저 조영구입니다!” 하면서 녹음을 남겼어요. “선배님, 오늘 방송에서는 좀 힘들어 보이시던데 여행 한번 떠나세요” 하면서 ‘여행을 떠나요’를 들려주기도 하고요. 본 적도 없는 사람한테 매일 그렇게 공을 들인 거예요. 하루는 “너 누군데 이러냐?”면서 병찬이 형이 전화를 받았어요. 그 계기로 병찬이 형을 만나서 방송을 배우기 시작했죠. 제가 대학 졸업하고 은행 취업이 결정돼 있었는데, 그걸 포기하고 형 가방 들고 따라다녔어요.

 

방송국 시험을 열네 번 쳐서 열다섯 번 만에 SBS 전문 MC 공채 1기로 들어갔죠. 그렇게 여기까지 온 거예요. 저처럼 별 능력도 없는 놈이 그렇게 열심히해서 기회가 왔듯이, 뭐든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은 저도 무조건 도와주고 싶어요.

 

 

그렇게 어렵게 시작해도 성공하면 변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전 워낙 있는 사람보다는 좀 부족한 사람을 더 좋아해요. 제가 도울 수 있는 분들. 잘나가는 회장님 댁에 가면 다 저보다 잘난 분들인데 제가 있어봤자 티도 안 나잖아요. 반대로 좀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다들 조영구 왔다고, 얼마나 좋아해주는데요.

 

그런 사람들을 더 많이 챙기려고 해요. 저 보고 짠돌이라고 하는데 그건 옛날에 집 장만 전 얘기고 지금은 밥 사주고 술 사주느라 돈을 얼마나 많이 쓰는데요(웃음).

 

 

사람들은 왜 조영구를 찾을까요?

 

전 늘 최선을 다해요. 허투루 하는 게 없어요. 돌잔치든 결혼식이든 칠순잔치든 아는 사람이 부탁하면 돈도 안 받고 달려가요. 그럼 나중에 그분들이 어느 양복점에 옷을 맞춰놨다고 연락을 하거나 건강식품을 보내주지요. 명절 때 우리 아파트에 선물이 100개가 넘게 들어와요. 관리실에서 힘들어할 정도예요.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 가장 조심하는 건 뭐예요?

 

말조심이죠. 술을 거의 매일 마셔도 실수를 안 해요. 취했다 싶으면 무조건 도망가니까(웃음). 남아 있으면 실수하게 되거든요. 사람들이 저를 왜 찾겠어요. 부르는 대로 가서 자리를 빛내주고, 말실수 안 하니까 챙겨주는 거예요. 혼자만 잘하는 관계는 없어요. 다 쌍방이죠.

 

 

가장 중요한 가족과는 관계가 어떤가요?

 

저도 딱 작년부터 건강도 좀 챙기고 가족들과도 시간을 보내야겠다 결심했어요. 바깥 사람들을 너무 챙기다 보니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더라고요. 지금까지 타인의 행복을 위해 매진했다면 이제 조영구라는 사람을 좀 더 돌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제가 변했다 생각하지 말고, 그저 저 사람을 지켜주자고 생각해줬으면 해요. 제가 당신들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달려갈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시고(웃음).

 

 

 

 

“관계는 끝없는 자기반성이 필요해요” 배우 김성녀

 

 

마당놀이의 대모, 다섯 살 때부터 천막 극장을 놀이터 삼아 놀던 타고난 배우, 중앙대학교 교수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7년 임기를 마치고, 오롯이 배우로 우리 앞에 선 김성녀. 그녀가 맺은 관계의 핵심은 확장보다 자기반성에 있었다.

 

 

7년이나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으로 지내다 얼마 전에 물러나셨죠.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내부 반발도 심했다고 들었어요. 그간의 관계, 신뢰가 깨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없었나요?

 

전혀. 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었다면 아마 두려웠겠죠. ‘욕 먹으면 어쩌지? 잘못되지 않을까?’ 하지만 전 신념이 있었어요. 제가 예술감독 하면서 무대예술을 완전히 현대적으로 하거나, SF를 끌어들이는 등 전례 없는 도전들을 했는데, 덕분에 젊은 사람들이 창극 공연을 찾았고, 해외에서도 반응이 뜨거웠어요. 그러면서 연임을 했고 7년 했더니 이제는 조금씩 “김성녀가 잘했다”고 인정해주기도 하네요(웃음).

 

 

반세기 넘게 공연예술계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관계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인연은 아무래도 남편(연출가 손진책)이지요. 연극을 대하는 자세, 작품 보는 눈, 예술의 확장성,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법을 연출가이자 동지인 남편에게서 배웠으니까요.

 

또 국악 작곡가인 박범훈 총장, 한국 무용의 대가인 국수호 씨 등 동지들이 제 옆에 있고요. 소리 하는 안숙선 씨, 또 박정자, 손숙 선배가 있죠. 저랑 윤석화까지 해서 ‘화려한 외출’이라는 모임도 만들어 자주 만나서 놀고 여행도 다니며 지내요. 워낙 오랫동안 한 업계에 있다 보니 함께 일하면서 일에 대한 가치를 논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장 소중해요.

 

 

후배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처음에는 어설픈 정열이 있어서 혼내기도 하고 가르치려고도 했는데 이제는 안 그래요. 그냥 지켜봐요. 별명이 ‘독사’였다가 ‘성녀마리아’가 됐으니까(웃음).

 

일단 나는 먹여요. 연습 때마다 바리바리 싸 들고 가서 먹여요. 인사할 때도 “밥 먹자~”고 하잖아요. 사람이 잘 먹어야 마음도 열리는 거죠. 나보다 돈 많이 버는 후배들은 많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예술단 소속으로 26년 동안 월급을 받아온 사람이니까 안정적인 돈벌이가 있죠. 후배들밥 사 먹일 돈은 충분히 되니까 나랑 연습하면 애들이 다 잘 먹어요.

 

 

관객으로 연극 보러 갔다가 잘하는 후배가 있으면 달려가서 용돈도 쥐어주신다고요?

 

잘하면 마냥 이쁘고, 못하면 또 화나고 그래요(웃음). 아직도 저한테 순수함이 있는 거겠죠. 연극계가 너무 열악하다 보니 잘하는 사람들은 영화나 TV 쪽으로 빠져서 연극의 완성도가 떨어진 면이 있었죠. 가슴이 너무 아파요. 그러니까 좋은 배우들을 아끼는 마음이 늘 있죠.

 

 

인맥을 관리하고 챙기는 편이세요, 흘러가게 두는 쪽이세요?

 

전 한번 인연을 맺고 제가 좋다 싶으면 엄청 챙기고 잘하는 사람이에요. 조금 전에도 누구 소개로 강의해 달라고 연락이 와서 강의료 얘기를 하는데, 제가 그냥 “재능 기부로 가겠습니다” 했어요. 저한테 인연의 소중함이란 그런 거예요. 내가 믿는 사람이면 따지지 않고 다 주는 것.

 

 

그러다가도 소원해지거나 미운 사람이 생기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세요?

 

나한테 정말 딸같은 후배 겸 제자가 하나 있어요. 온갖 걸 다 쏟아줬고 가까웠는데 뭔가 서로 섭섭해서 틀어졌거든요. 내가 얘 때문에 또 배웠어요. 처음에는 너무 괘씸하고 분해서 자다가도 열이 나고 ,‘내가 어떻게 했는데 얘가 이러나?’ 화가 나서 한 10년을 안 봤어요.

 

근데 나이를 먹으니까 어느 순간 ‘나한테도 잘못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친하다고 함부로 하거나 상처준 것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 모든 관계에는 아름다운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점점 더 들어요. 아주 가까운 남편한테도, 자식한테도 마찬가지죠. 관계는 결국 평생 동안 배우는 것 같아요. 내 장점이 그거예요. 끊임없이 배우고 반성하는 것(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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