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잘’ 산다

기사 요약글

커플보다 두 배로 더 즐겁게 사는 싱글들의 이야기.

기사 내용

 

링 위에서 한결 같은 남자
개그맨 지상렬

 

당일 새벽<정글의 법칙> 촬영을 막 끝냈다는 그에게서 피곤함은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인터넷에서 지상렬을 검색하면,‘실물 훈남’이라는 감동 후기와 그에 동조하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그도 아는가 싶어 질 문을 건넸다.

“아휴, 과찬이죠. 전자제품(TV)에서 지상렬을 보면 영 아닌데 실제로 보면 그나마 봐줄 만한 얘기라는 거겠죠. 남자 친구들이 저를 참 좋아라 해줘요. 함께하면 마음이 참 편하다, 기분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 타율이 높아요. 고맙죠. 조상님이 준 복인가 봐요.”

'독실한 애견인'인 그는 평소 강아지들을 돌 보며 시간을 보내지만, 연예계 주당으로 이름을 날리는 만큼 꾸준한(?) 음주 라이프도 즐긴다. 그의 주도 철학은 확고하다. 촬영이 없는 징검다리 휴일에 마실 것. 술 마신 다음 날은 공복 12시간을 유지할 것. 여 유가 생기면 낚싯대를 챙겨 든다.“인생에 굴곡이 있을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준 게 바로 낚시예요. 인생을, 세월을 낚는다는 말이 있죠. 낚시를 통해 터득하는 게 많아요.” 그에게 낚시란 인생의 맷집을 쌓고 마음을 달래주는 도구다. 이처럼 풍족한 인생에 심심함 따윈 침투할 겨를이 없을 뿐, 그간 연애의 빗장을 닫고 살아온 건 아니다. 사랑에 빠진 지상렬은 무던하게 믿고 지켜보는 편에 속한다.“세심하지 못하니까 여성 입 장에서는 서운할 수 있을 거예요. 무조건 미안하죠.” 대화를 나눌수록 그의 유쾌함에 가려졌던 진중한 인생 내공이 반짝인다.

“물 한 방울씩 떨어지다 보면 결국 바위도 뚫는 법이잖아요. 느리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꾸준하게 가고 싶어요. 어릴 땐‘나잇값 하라’는 말의 뜻이 와 닿지 않았는데, 이젠 그만한 명언이 어디 있을까 싶어요. 나이테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인걸요.”

가치 있고 인기 있는 사람보다 어디에서든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흔들림 없이 굳건 하다. 타인에게 웃음을 주는 희극인에게는‘재미있는 사람’으로 보여지는 어떠한 선입견이 존재한다. 때로는 누군가 친숙함을 무기로 가벼이 대하는 우를 범하곤 하니까.“직업이 희극인인걸요. 링 위에서 나는 우스워 보이고 재미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거예요. 그에 따른 명암은 내 몫이죠. 때와 장소에 맞게 최선을 다하면 되죠.” 인생의 철학은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자다. 기왕 할 거면 기분 좋게! 돌이켜보면 그는 데뷔 이래 지금까지 쭉 한결같은 포지션으로 산언저리의 봉우리를 탔다. 누군가는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찍고 롤러코스터와 같은 인생에 거칠게 휩쓸릴 때도 그의 호흡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상렬의 인생 캐치프레이즈를 한 줄로 옮긴다면,‘셰이킹은 있을 수 있으나, 한결같이 사는 것’이다.“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랫동안 쭉 걷는 게 좋아요. 어퍼컷을 잘 치는 복서가 원투를 잘 치는 챔피온을 보고 갑 자기 스타일을 바꾸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갈고 닦아온 칼날로 한번 끝까지 가야죠. 내 주먹 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요.” 곧 백 세 인생의 중반부에 다다르는 그는 오순 잔치로 자축할 계획을 세웠다.“의미 있잖아요. 쉽지 않은 인생, 괜찮게 살아왔구나. 뒤돌아보고 싶어요. 이젠 염색도 하고, 고혈압 약을 챙겨야 하죠. 하나씩 고장 나는 건 당연한 거예요. 그걸 우중충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50년 잘 썼으니 녹슨 부분도 생기는 거고 그걸 기름칠해가며 살아가는 거죠.‘허리 아프고, 어깨 아픈 걸 보니 곧 비가 오겠구나’ 농담하면서요. 모든 게 다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어요?” 오늘에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지금처럼 하루하루를 내딛는다. 링 위에서 제대로 싸울 줄 아는 남자. 지상렬의 이름으로 신명나고 힘차게.

 

 


당당한 애티튜드가 빛나는
배우 김정난


피아노 배우기, 고양이 돌보기로 소일하며 지난 일 년을 푹 쉬었다는 그녀는 요즘 대학로로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최근 개막한 연극<진실×거짓>에서 알리스 역으로 열연 중이기 때문이다.‘새 무대’가 주는 적 당한 긴장감 속에 기분 좋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녀에게서는 막 조율을 마친 바이올린처럼 산뜻하고 경 쾌한 분위기가 풍긴다.

“같은 대사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과정에서 오는 깨달음도 좋고, 공연을 계기로 그간 소원했던 지인들을 초대할 수 있어서 좋죠. 쉬면 쉬는 대로 좋고, 일하면 일하는 대로 좋은 면이 보이는 것 같아요.”

조금 이른 슬럼프를 겪어서 일의 소중함과 겸손함을 배웠고, 남들이 재단하는 행과 불행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됐다며 웃는 김정란. 탄탄하게 다져진 그녀의 삶에 싱글의 외로움은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였다.“결혼 안 하냐는 소리는 30대에 이미 끝났고요(웃음). 다만 아버지가 가끔‘너 정말 외롭지 않냐?’고 물어보시는데 그때마다 그래요.‘아빠는 엄마 만나기 전에 연애 얼마나 해봤어? 나는 아빠보다 훨씬 많이 해봤어. 배우자가 있다고 정말 외롭지 않아? 누구든 순간순간 외로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난 이대로가 참 좋아. 좋아하는 일이 있고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거든.’”
한때 떨어진 자존감 때문에 작은 상처를 한없이 증폭시키며 자신을 괴롭힌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감정 의 굴’을 파고 들어가는 대신‘자기애’를 쌓느라 노력 중이란다.

“돈 벌어서 다 뭐 해요. 나한테 투자하는 거죠. 좋아하는 피아노를 배우고, 일주일에 한 번쯤 영화나 연극을 보러 가요. 운동하고 마사지 받으며 스스로를 가꾸는가 하면 절친들과 여행을 떠나 맛집 투어를 하기도 하죠. 모든 경험이 다 연기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즐기는 시간마저 좋은 공부가 되는데, 그 점에서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 고 생각해요.”

행복을 주는 존재로 팬들을 빼놓을 수 없다는 그녀는 고등학생부터 중년까지 다양한 팬층을 거느리고 있다. 본인조차 잊고 있던 생일을 늘 팬들이 먼저 챙긴다는데, 팬클럽 회장 언니의 딸이 유치원생에서 대학 생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세월을 느낄 정도라니 그 유대감의 깊이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데뷔 30년 차 선배인 만큼 아래로 후배들이 까마득하지만‘우리 땐 이랬는데’ 하는 꼰대가 되기보단 방탄소년단의 노래에 감격하고 지드래곤의 열정을 높이 사는‘열린 선배’ 쪽에 가깝다. 그러고 보면 그녀의 당당한 애티튜드는 좋은 걸 좋다고 솔직히 드러내는 데서 발산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배우 인생을 일컬어‘결혼과 맞바꿨다’고 표현하지만 그렇다고 비혼을 택한 것은 아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통하는,‘헤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언제든 여지가 있지 않겠냐는 것. 무엇보다 현재의 자유로움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이는 요즘, 연말 계획을 묻자“연말처럼 보내지 않는 게 목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들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잖아요. 경험상 의외로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던데요(웃음). 이번 연말엔 연극 공연 때문에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그래야‘연말이네! 나이를 또 먹는구나’ 하는 생각을 못 하죠. 저 곧 아홉수에 들거든요. 한동안 뜸했던 지인들에게 연락해서‘나와 연극 보고 밥이나 먹자’ 하려고요. 결혼식도 돌잔치도 안 했으니 이런 핑계로 종종 얼굴 보면 좋잖아요.”

 

 


 

꿈을 향해 나는 피터팬
기타리스트 김도균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풍채 당당한 사내가 성큼성큼 긴 다리를 휘적이며 스튜디오 에 들어섰다. 물이 적당히 빠진 데님 팬츠와 항공 점퍼를 입고 묵직한 기타를 든 그가 악수를 건네며 환하게 웃자, 스튜디오에 맴돌던 딱딱한 공기가 한결 보드랍게 느껴진다. 대한민국 록의 전설인 그가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온 것은 예능프로그램에서 들려준 친근한 고백 덕분이다. 이를테면 오랜 싱글 라이프를 하며 얻은 편의점 VVIP의 노하우나 30초 거리의 편의점에 가도 패션을 챙기는 반전 매력, 구수한 언변이 그의 제 2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혼자 사는 사람을 보는 시각이 요즘 많이 성숙해졌지만, 아직도 보편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있죠. 그래도 확실히 달라졌어요. 맞아요. 세상이 변하긴 했습니다.” 날카로웠던 백두산 시절의 얼굴은 보는 이마저 미소 짓게 만드는 밝은 에너지로 채워졌다. 20대까지는 태어났 을 때의 얼굴이지만, 불혹 이후의 얼굴은 스스로 만든다는 말이 떠오를 만큼 편안한 인상이다.“스스로 즐겁고 행복하지 않으면 기타 소리가 나오질 않아요. 마음이 소리에 영향을 주거든요. 적당히 포기할 줄 알아 야 세상을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래야 삶이 각박하지 않고, 시야도 넓어집니다. 전 음악의 길을 걷기 위해 모든 걸 포기했다고도 볼 수 있죠. 우선순위의 문제인데, 뮤지션에겐 음악이 본분이잖아요(웃음).” 그의 싱글 라이프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역시 음악이 함께한다.“기타에는 벽이 있는데, 벽을 깨주는 깨 달음이 오는 그 순간이 제일 기쁘죠. 깨달음은 몸과 마음의 통증을 반복하면 와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적 흐름을 발견한 뒤, 삶을 제시하는 음악을 들려주는 것. 우리 뮤지션에겐 이만한 행복이 없어요.” 인생이 언제나 웃음으로 채워질 리가 없다는 것을 우린 잘 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그건 혼자 있어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그는 모든 걸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한발 뒤로 빠져서 고요하게 있는 그대로 주변을 바라봐요. 푸른 하늘과 길가의 가로 수…. 자연 그 자체로 완벽하거든요. 그 완벽함을 보면서 외로움이나 번뇌에서 빠져 나와요. 그런 문제들은 다 인위적이죠. 넓게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닌 게 돼요. 그리고 그 힘든 시간마저 즐길 줄 알아야 예술가인 거예요. 골방에서 기타만 치는 시간을 누 가 알아줄 리 있나요?”

홀로 있는 시간에는 종종 카페로 향한다.“따뜻하고 진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고 돌아와 기타를 연 구하는 그 시간이 제일 편해요.” 최근에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국내 대표 여행지로 떠나는 웹 예능 촬영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출연한 예능<불타는 청춘>에서도 그는 늘‘여행’ 중이었다. 그에게 여행은 음악 다음의 순위를 차지한다.“요즘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가 커요. 오랜 기간 국악을 공부해 퓨전음악을 연구해서 그런지 들리는 게 남달라요. 지역마다 다른 문화적 특색과 음색을 공기와 함께 체감하면서 영감도 쌓고 힐링도 하고 있어요(웃음).” 즐거운 싱글 라이프를 위해 김도균이 꼽는 세 가지. 그중 핵심은 건강이다.“건강은 모든 행복의 전제가 돼요. 여기에 부수적으로 덧붙이자면 최소한의 경제적인 여유겠죠. 그러고 나면 정신적으로 풍부해지는 예술을 추구할 수 있거든요.” 그는 혼 자 있는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신만의 관심사를 찾으라 조언한다.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니 심심한 거예요.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춤을 출 수도 있어요.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데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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