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에 대한 바른 생각

기사 요약글

조금은 불편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시선으로 장바구니를 채워보는 건 어떨까.

기사 내용

 


1. 가지가 꺾여 떨어진 감, 이 같은 낙과들이 퇴비의 역할을 한다.
2. 포토 그래퍼‘쑥칼렛’으로 활동하는 김혜숙 기획실장과 박혜란 대표.
3. 1970년대 문을 연 바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입구.
 

자연에서 만난 맛의 경험이 인생을 좌우한다

바테


거제도 지세포항을 끼고 있는 나지막한 산 중턱에 자리한 바테는 40년 넘게 자연농법으로 일군 농장을 일반인에게 개방한 자연 놀이터다. 방문객에게 쉴 수 있는 오두막을 내주고, 산 곳곳에서 자라는 다양한 수의 과실나무와 산나물을 채취해 갈 수 있는 공간이다. 지역의 생산자들은 철마다 바테에 모여 플리마켓을 열기도 하고, 요리 연구가들은 산에서 자란 재료로 쿠킹 클래스를 열어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시간을 마련한다.

산 곳곳을 누비며 따고 캐는 경험, 도시에서는 쉽게 누릴 수 없어요. 이곳은 건강한 바람과 햇빛을 쐰 과일을 따고, 산나물과 약초를 캐고, 닭을 키우고, 한때는 돼지까지 길렀던 가족의 자급자족 농장이었죠. 도시 생활을 하며 맛있다는 음식들은 다 찾아 먹어봤지만 혀가 아니라 몸이 원하는 음식은 따로 있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우리만 좋은 곳을 누릴 게 아니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가족이 소중히 지켜온 농장이 있는 거제도로 돌아와 뛰놀 수 있는 교육을 하는 국제학교를 짓고‘밭에 가자’는 뜻의 바테도 오픈했습니다. 무뎌진 맛에 대한 감각을 자연 가까이에서 느끼고, 표현하고, 공유하는 게 무엇보다 좋은 경험이죠.

모양은 모났지만 과일들의 빛깔이 탐스러워요. 농약이나 퇴비를 주지 않으니 흠집도 많고 크기도 작지만, 스스로 뿌리를 통해 에너지를 더 많이 흡수해 자라죠. 향도 진하고 과육도 단단해요. 또 과수원에 비해 새들이 쪼아 먹은 과일이 훨씬 많은데, 새들이 쪼아놓은 부분을 도려내고 먹으면 더 달아요. 동물이 맛있는 열매를 먼저 알아본다는 자연의 섭리를 느낄 수 있죠. 시중에서 판매되는 과일이나 산지에서 직배송되는 과일도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게 좋아요.

산에서 직접 허브를 따고 먹어보는 방식이 프랑스의 미각 교육과 닮았어요. 숲속에 고사리, 죽순, 칡 같은 약초와 나물이 많아 방문자들 중 중년들은 보물 창고 같다고 하세요. 지난 쿠킹 클래스 때 어머니의 레시피로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었는데, 이렇게 생산지에서 하나의 식재료에 대한 맛을 탐구해보는 경험을 늘려가는 게 중요해요.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껴봐야‘나는 이렇게 먹어보고 싶다’는 주관이 생기고, 왜 건강한 맛이 좋은지를 몸소 느낄 수 있으니까요.

 


1. 선반 한쪽을 가득 메운 곡식과 견과류.
2. 품절 대란을 일으킨 마켓 레이지 헤븐의 들깨가래떡.
3. 마트에서 구입한 노란 파프리카와 자연농법으로 키운 주황 파프리카. 생김새부터 다르다.
4. 올 초에 농사에 도전해 직접 수확한 농산물. 농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무른 과일, 느린 배송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이유

마켓 레이지 헤븐


고창 일대의 자연 재배 농작물을 선별해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온라인 플랫폼 마켓 레이지 헤븐의 안리안. 인터뷰에 앞서 그녀는 자연농법으로 기른 파프리카와 셀러리를 마트에서 구입한 것과 함께 썰어주었다. 자연농법 채소들은 씹자마자 짠맛이 강하게 올라오더니 이내 향긋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에 비해 마트에서 사 온 채소는 싱겁다. 땅에서 스스로 자라려니 아등바등 힘을 쓰느라 섬유질 밀도가 높고 단단해지기 때문이란다.

도시 생활을 하다 보면 먹거리만은 친환경, 유기농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원래 패션쇼 기획을 했어요. 점심엔 지인들과 파인 다이닝에 가고 저녁이면 편의점 샌드위치와 요구르트를 먹는 일상이었죠. 내가 먹는 것이 모여 나를 만든다는데,‘이런 삶이 진짜가 맞는 걸까?’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그래서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남편과 전국을 여행하다가 고창에서 임성규 농부를 만났죠.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분이에요. 땅의 기운대로 농사를 짓고 철마다 나는 것을 먹는. 비료, 퇴비 없이 지은 농부님의 농산물을 먹어보니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에게 이런 삶, 이런 식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었죠.

마켓 레이지 헤븐에서 파는 과일, 채소는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에요. 우리가 먹는 채소와 과일은 모두 유통 구조에 따라 결정돼요. 사람들이 무르거나 깨진 과일은 쳐다보지 않아서 단단한 품종만 유통하죠. 반듯하게, 예쁘게 키우려면 퇴비와 농약을 피하기 어렵고요. 자연농법으로 기른 과일과 채소는 옹골차지만 모양은 삐뚤빼뚤하죠.

흠 없고 반듯한 과일, 채소를 고르는 습관이 선택의 폭을 좁힌 거네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토마토는 20~30%만 익은 상태에서 수확해 유통과정에서 후숙하는데, 소비자가 겉모양에 조금만 덜 연연해하면 더 숙성된, 더 맛있는 토마토를 맛볼 수 있어요. 저희는 80%까지 숙성시켜 더 영양가 있는 과일을 판매해요. 일일이 검수해서 배송하는데도 과일이 물렀다고 연락하는 분들이 있죠. 이럴 때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과일과 채소는 모양이 아니라 냄새를 맡아보고 골라야 하는데 말이죠.
 


1. 땅파는 까망돼지 네 농가 중 분천농장의 백승일 농부.
2. 엄마 돼지의 젖을 먹고 있는 태어난 지 4일 된 아기 돼지들.
3. 농장에서 닭도 함께 키우고 있는 이혜영 농부. 마음을 들여 키워서인지 닭들이 반려동물처럼 사람을 쫓아다닌다.
4. 정육점과 식당을 담당하고 있는 강성길 농부.


유기농·무항생제 마크에 의존하는 사이 놓치고 있는 것

땅파는 까망돼지


땅파는 까망돼지는 경상북도 봉화에서 자연 양돈으로 흙돼지를 키우는 소농들이 운영하는 정육 브랜드다. 농장을 운영하는 3개 농가, 정육점과 식당을 운영하는 1개 농가가 함께 생산부터 유통까지 자체적으로 진행한다. GMO, 항생제 사료를 먹이지 않고 돼지의 본성을 최대한 지켜가며 키운다.

농장 크기 대비 돼지가 많지 않아요. 좁은 축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들은 서로의 꼬리를 물어요. 그래서 꼬리와 이빨도 자르고 항생제, 호르몬제도 맞히죠. 결국 면역력이 약해져서 구제역 같은 재앙이 일어나면 사람에게까지 그 피해가 돌아오는 거예요. 소규모로 농장을 운영하면 돼지를 상품이 아닌 가축으로 기를 수 있어요. 출하량도 한 농가당 1년에 100마리 이하로 정했지요.

돼지 가족이 같이 있는 모습은 처음 봐요. 강아지, 고양이를 기르듯 이름도 불러주고 교감하면서 키워요. 도축하는 날에는 마음이 안 좋지만 어린이, 환자 등 고기의 영양소가 꼭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먹거리로 키우는 거라고 마음을 다지죠. 그 대신 돼지가 살아 있는 동안 땅 뒤집고 흙도 먹는 본성을 최대한 발휘하며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요. 이렇게 귀한 생명을 먹는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100원, 200원 싸다고 아무거나 먹기엔 사는 사람도, 팔리는 돼지의 생명도 귀하잖아요. 가격, 마블링 같은 결과보다 어떤 항생제를 맞고 어떻게 길렀는지 과정 전체를 눈여겨봐주었으면 좋겠어요.

고기가 채소보다 쌀만큼 흔한데, 소비자 입장에선 인증마크에 의존해 구입할 수밖에 없어요. 무엇보다 농가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생산자와 교류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고요. 휴가 때 생산자에게 농장 구경을 하고 싶다고 연락해볼 수도 있잖아요. 요새는 생산자 정보가 열려 있어서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다 알 수 있어요. 도시 생활이 너무 바쁘고 피곤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내가 무엇을 먹고 있나 좀 고민해보자는 거죠.

 


 

1. 식품영양학 학위를 따고, 일본의 명란 공장에서 숙련한 장종수 대표.
2. 소스는 주로 고춧가루를 섞어 조미하는 게 원칙. 평균 1주일의 유통기한을 감안한 가장 낮은 염도인 4도를 유지한다.
3. 부산 초량동에 자리한 쇼룸 데어더하우스에서는 명란을 활용한 요리를 배워보는 쿠킹 클래스에 참여할 수 있다.
4. 국내에서는 최초로 짜 먹는 명란을 출시해 보관의 편리성을 높였다.


가공식품은 무조건 해롭다는 건 편견

덕화명란


대한민국 수산제조 1호 명장으로 인정받은 장석준 명장이 40년째 이끌어온 브랜드로 지금은 아들 장종수 대표가 이어받았다. 숙성 명란을 많이 소비하는 일본의 마트 브랜드로 진출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짜 먹는 명란을 출시하고 명란 요리를 만들어보는 쇼룸‘데어더하우스’를 오픈하는 등 젓갈 위주였던 명란을 한층 현대적인 수산물 가공식품으로 소비하게 하는 변화를 이끌고 있다.

요즘 명란이 들어간 메뉴가 식당에서 자주 보여요. 일본에서 명란을 빵, 파스타, 덮밥 등에 다양하게 활용하지만 명란은 우리 고유의 식재료이자 숙성 식품이에요. 일제강점기 시절 동해안의 명란을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우리 할머니 세대가 고춧가루와 소금으로 염장한 이야기가 전해지니까요.

숙성 명란의 맛은 어떻게 결정되나요? 염지할 때 물 온도와 시간을 어느 정도에 맞추는지, 소금과 고춧가루, 육수 등이 섞인 조미액을 어떻게 제조하는지, 몇 도의 온도에서 얼마나 숙성하는지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지죠.

가공식품을 만들며 고민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가공식품은 요리에서 출발하잖아요. 일본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며 오직 명란만 100년 이상 연구해온‘후쿠야’ 같은 브랜드가 참 부러웠어요. 쇼룸이라는 공간을 만든 것도 단순히 판매가 아닌 명란을 요리로 경험하길 바라서였죠.

수산물을 먹을 때면 해양 오염 뉴스가 떠올라 걱정되기도 해요. 명란은 수산물 쿼터제가 가장 잘 이뤄지는 수산물이고, 중금속오염 면에서도 안전한 어종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명태는 다 자란 것도 30~40cm로 작은 편인 데다 명란은 알의 막이 오염을 막기 때문이죠. 또한 러시아, 미국 정부에서는 개체수도 관리하고 매해 조달량을 계획해요. 다른 어종도 개체수를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환경오염은 수산업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모두 고민해야 할 과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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