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로이와 세로토레

기사 요약글

탱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축구선수 마라도나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기사 내용

누구나 남미의 어딘가를 떠올리지 않을까. 그러나 붉은 열정의 나라 아르헨티나 남부에 위치한 피츠로이와 세로토레를 걷고 나면 남미를 떠올리는 단어가 좀 더 낭만적으로 바뀔 것이다.

바람의 땅

아르헨티나는 세계 8위의 면적을 가진 나라로 남미 대륙에서는 브라질 다음으로 넓은 땅이다. 이 광대한 나라의 남부에 위치한 파타고니아 지역에는 로스 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이 펼쳐져 있다. 공원에서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가 가장 유명하지만 트레커들에게는 두 개의 명산이 특히 사랑받는다. 바로 파타고니아 최고봉인 피츠로이(Fitzroy)와 인근에 있는 세로토레(Cerro Torre)다. 소수의 전문 산악인은 두 명산의 위험한 수직 바위산을 즐겨 오르지만, 다수의 일반 트레커는 그 근처까지 다녀오는 두 개의 트레킹 코스를 걷는 것만으로도 극도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 각각 하루씩 당일치기로 호수와 빙하와 만년설을 둘러보는 루트다.


트레킹 시작점인 엘찰텐 마을에서 최소 2박 3일을 머물면서 이틀간 트레킹을 한다. 두 코스 모두 하루 8~9시간이 소요된다. 멀리 우뚝 솟은 설산이 점점 눈앞에 가까워지며 시시각각 변하는 그 운치가 대단하다. 설산 바로 아래에 도착하면 만년설에 뒤덮인 빙하와 호수 앞에서 잠시 넋을 잃기도 한다. 대부분 설산은 아래보다 봉우리 부분이 눈과 빙하로 덮인 게 정상이다. 그러나 파타고니아의 고산들은 반대로 봉우리는 발가벗은 민둥산인 데 반해 중턱 아랫부분이 빙하로 둘러싸여 있다. 갈색의 화강암 봉우리는 알몸을 그대로 드러낸 채 아랫부분만 두꺼운 빙하에 둘러싸여 호수까지 이어진다. 그런 풍경이 이곳이 바람의 땅임을 일깨운다. 파타고니아의 거센 바람이 고산 봉우리에 내린 눈을 얼어붙게 할 틈도 주지 않고 주변으로 흩날려버리기 때문이다.

 

피츠로이 트레킹
21km,10시간

해발 400m인 엘찰텐 마을에서 해발 1200m에 가까운 로스트레스 호수까지 오르는 게 목표다. 호수 뒤의 피츠로이산(해발 3405m)을 바라보다 내려오는 왕복 코스다. 도중에 해발 750m인 피츠로이 전망대까지만 갔다가, 카프리 호수로 돌아오는 반쪽짜리 간이 코스도 있다. 부엘타스강의 계곡길을 따라 걷다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면‘Sendero Al Fitz Roy’라고 쓰여진 코스 입구를 지난다. 능선을 올라가는 숲길은 대체로 완만하다. 3km 지점을 지나면 삼거리다. 왼쪽으로는 카프리 호수, 오른쪽으로는 피츠로이 전망대가 있다.

잠시 후 전망대 이정표가 나타나면 멀리 피츠로이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좌우에 포인세노트(해발 3002m)와 메르모스(해발 2732m) 같은 뾰족뾰족한 바위산을 거느린 피츠로이가 저 혼자 한가운데에 송곳니처럼 툭 솟아 있다. 거대한 구름이 송곳니 주변을 감싸며 신비감을 더하고, 하얀 빙하가 호위 무사들처럼 그 밑부분을 감싸고 있다.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이곳을 전망대로 칭한 이유를 쉽게 납득할 수 있다.

맑은 연둣빛의 블랑코강을 건너면 비로소 가팔라진다. 파타고니아가 바람의 땅임을 새삼 실감할 수 있는 구간이다. 이마에서 떨어진 땀방울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거센 찬바람을 맞아 으깨지며 공중에 날린다. 하이라이트 구간인 돌너덜길을 한 시간 이상 오르면 드디어 로스트레스 호수다. 그리고 그 앞에 피츠로이 봉이 장쾌하게 서 있다.

구름에 가려 있는 때가 많아서인지 피츠로이는‘연기를 뿜는 산’이란 뜻으로‘세로 찰텐(Cerro Chalten)’으로 불리기도 한다. 뒤를 돌아보면 엘찰텐 마을 쪽으로 파타고니아의 거친 대지가 장엄한 풍광을 자랑한다. 호수 위치에서 2000m 이상을 수직으로 치솟은 피츠로이 봉우리는 구름 모자를 벗은 모습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하얀 구름 모자가 벗겨지기를 기다리는 트레커들은 바람을 피해 호숫가 앞 너럭바위 사이에 자리를 깔고 앉는다. 대개는 한두 시간 이상을 그런 자세로 기다리다가 운 좋게 말끔한 봉우리를 보고 내려가는 이도 있고, 끝내 보지 못하고 내려가는 이들도 있다. 빙하 호수는 늘 굳게 얼어 있어서 항상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하산할 때 돌너덜길을 내려간 후부터는 올라온 길이 아닌 그 옆 카프리 호수를 지나는 길로 우회하는 것이 새롭고 좋다.

 

세로토레 트레킹
왕복 24km,8시간

해발 3128m의 세로토레 앞에 있는 토레 호수까지 다녀오는 여정이다. 고도차 200m 남짓을 오르내리는 수준이라 평지나 다름없다. 카스카다 마르가리타 전망대를 지나 피츠로이강과 만나 세로토레 전망대에 이르면 날카로운 뾰족 바위산 세로토레가 처음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오르막이 끝나면 한동안 평지가 계속된다. 고원지대가 아닌데도 주변 초목들은 바싹 말라가는 듯 도무지 생기가 없다. 갈수록 고사목들도 눈에 띄게 늘어난다. 아고스티니 캠핑장을 지나 오르막을 지나면 이윽고 토레 호수가 발아래 펼쳐진다. 엘찰텐 마을을 떠난 지 4시간 만이다. 뾰족뾰족 송곳처럼 솟아오른 고봉들이 높고 낮게 열 지어 선 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가 세로토레다. 피츠로이보다 300m 정도 낮지만‘거대한 탑’이란 이름에서 풍기듯, 사람이 오르기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험준한 고봉으로 악명이 높다.

세로토레는 그 오른쪽 옆으로 세 개 형제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다. 토레 에헤르(Torre Egger), 푼타 에론(Punta Herron), 세로 스탄드아르트(Cerro Standhart) 순이다. 산 아래 호수 맞은편까지 내려온 빙하는 금방이라도 거대한 얼음 절벽을 허물어트리며 호수를 덮을 듯 거대하다. 호수 뒤에 펼쳐진 세로토레와 그의 형제봉들이 빙하와 어우러진 멋진 전경을 감상했으면, 이제는 그들 곁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차례다.

호수 오른쪽으로 능선 언덕을 올라선다. 암석과 바위 부스러기들로만 이뤄진 완벽한 돌너덜길이다. 파타고니아의 바람은 전날의 피츠로이 이상으로 거세다. 몸을 완전히 숙인 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바람에 흔들려 호수 쪽으로 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가차 없이 빙하호로 추락한다. 한 시간 가까이를 허리 숙여 올라가면 토레 호수의 맨 끝 쪽, 마에스트리 전망대에 도착한다. 호수 아래에서 능선을 따라 2.5km에 불과하지만 시간은 많이 걸린다. 추락 위험이 있으니 더 이상 나아가지 말라는 경고문도 있다. 전망대 아래까지 차가운 혀를 늘어뜨린 그란데 빙하가 계곡처럼 수직으로 깎여 있어 보기만 해도 으스스한 느낌이다.

 

찾아가는 교통편 :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비행기로 엘칼라파테(3시간 소요)까지 가서, 버스로 갈아탄 후 세 시간이면 트레킹 관문인 엘찰텐 마을에 도착한다. 이 마을에서 피츠로이와 세로토레를 각각 하루씩 트레킹한다.

최저 비용 : 엘칼라파테까지 항공료 20만원, 엘찰텐까지 버스 왕복 7만원, 숙박은 최소 4박으로 다인실 기준 하루 2만원씩 총 8만원이 든다.

숙박 : 엘찰텐 마을에는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 등 숙소도 많고, 트레킹 코스 주변에 캠핑장도 여럿 있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 : 우리나라가 겨울일 때 이곳은 여름이다.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적기다. 바람의 땅으로 불리는 만큼 여름철에도 그다지 덥지 않고 시원하다. 강풍이 부는 겨울철에는 피츠로이 정점에 오르는 구간과 세로토레 호수 전망대 구간에서 특히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기타 여행 팁 : 엘칼라파테에 하루나 이틀 머물 때는 모레노 빙하를 관광하는 게 좋다. 쉽게 갈 수 있는 남미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건에 따라 1인당 10~20만원 선이다.

 

도보 여행가 이영철
퇴직 후 5년 동안 자신이 선정한‘세계 10대 트레일’을 모두 종주했다.<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동해안 해파랑길><영국을 걷다><투르 드 몽블랑> 4권의 여행서를 출간했다. 그의 여행 기록은 블로그 누들스 라이브러리(blog.naver.com/noodles819)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