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낯선 사람 HELLO, STRANGER

기사 요약글

'난민'에 대한 찬반 논쟁, 제주도 시민들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기사 내용

예멘에 내전이 발발한 건 2015년. 많은 예멘인이 전쟁을 피해 말레이시아로 향했다. 무비자로 90일간 체류할 수 있는 데다 같은 이슬람 문화권 국가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새로운 땅’으로 제주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무비자로 30일간 머물 수 있는 데다 말레이시아에 비해 난민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제주-말레이시아 간 저가 직항 노선이 열리면서 제주행을 택한 예멘인의 수가 급증했다.

이에 외교부는 예멘을 무비자 입국 가능국에서 제외했지만, 그 전에 제주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한 난민 460여 명은 우리 정부의 ‘반가운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정부에서는 그들에게 특별히 어업, 농축산업, 요식업 등에 취업을 허락한 상황. 제주도 시민들로서는 하루아침에 ‘예멘 난민’이라는 낯선 이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게 된 셈이다. 찬성과 반대가 만만찮은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에서 제주도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제주도는 2002년 관광 활성화를 위해 외국인이 비자 없이 한 달간 체류할 수 있는 무사증 제도를 도입했다.

 

1만 1000명
법무부는 현재 제주도 내 불법체류자의 수를 1만 100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도 시내에서 어렵지 않게 예멘 난민들을 볼 수 있었다.

사는 사람은 불안해요

솔직히 제주도 사람도 아니면서 난민 문제를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요. 나도 다른 지역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사람 좋은 얼굴로 받아주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람(난민)들과 생활권이 같아진단 말이에요. 제주도에 불법으로 체류하는 중국인들 꽤 많은 거 아시죠? 중국인들이 처음 제주도에 유입되기 시작할 때도 비슷했어요. ‘겪어보지 않고 괜한 차별 하면 안 된다’ 했지만 우려가 현실이 됐잖아요. 자기들끼리 싸우다 살인을 저지르지 않나, 자동차 경적 때문에 한국 사람을 집단 폭행하지 않나, 여기 무서운 일들 많아요.
_제주도 토박이 50대 김수옥(가명) 씨
 

난민들, 일 열심히 잘하던데요?

요트 엔진 수리업체를 하는 우리 매제가 얼마 전 예멘 난민을 채용했는데 그렇게 성실하고 일을 잘할 수가 없더래요. ‘금방 그만둔다, 참을성 없다’는 식의 얘기도 더러 있다지만, 어느 사회든 성실한 사람이 있는 반면, 게으름 피우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걸 일률적으로 말하긴 좀 어렵지 않나 싶어요.
_건설업에 종사한다는 김태훈 씨(왼쪽)
 

답답해서 일 못 시켜요

우리도 매일 사람 구하는 게 일인데 마음 같아서야 얼른 시켜주고 싶죠. 그런데 말이 안 통하면 결국 오래 같이 일 못 해요. 배에서 고기 잡아 올리기 시작하면 눈치껏 빠릿빠릿하게 굴어야 하는데 한국 사람도 잘 못하는 걸 외국 사람이 어떻게 잘해요? 한 달 170만원씩 기본급을 줘야 하는데 불쌍하다고 턱턱 사람을 쓸 수 있겠어요?
_승진호 선장 7년 차 김동순 씨
 

22만 명
난민 신청 허가를 폐지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올라온 지 5일 만에 22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한국 사람과 같은 대우요? 형평성에 어긋나죠

요즘같이 허탈할 때가 없어요. 뱃일하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결국 예멘 난민은 물론이고 베트남, 중국, 스리랑카 등에서 온 외국인을 쓸 수밖에 없는데, 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 데려다 ‘사회적 약자’랍시고 한국 사람과 똑같은 대우를 하라는 게 나는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최저시급 인상이야 누구보다 찬성하지만 그 혜택이 우리나라 사람한테 가야지 왜 외국인 노동자한테까지 가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가 그렇게 잘살아요? ‘불쌍한 사람’이 뭐 한국에는 없답니까? 배 타는 걸 무슨 ‘거쳐가는 다리’쯤으로 생각하는 것도 기분 나빠요. 동남아 사람을 대상으로 한국 취업을 알선하는 사람들 얘기가 육지 가서 일하려면 취업비자 받고 하는 데 2~3년 넘게 걸리지만, 배를 타겠다고 하면 비자가 금방 나온대요. 잠깐 배 타며 눈치보다 느슨해졌다 싶으면 도망가는 거지.
_뱃사람으로 산 지 30년이 넘었다는 선원 현대수 씨
 

학부모들은 예민하죠

어린이집 학부형 단체 채팅방이 있는데 다들 요즘 불안해서 못살겠다는 식이에요. 큰애가 다니는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들어와 그 사람들이 축구를 했다는데, 멋모르는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요.
너무 과민한 반응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미리 조심하는 게 일 터지고 후회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요.
_제주도 정착 5년 차 신하영(가명) 씨


식당 갔다 황당했어요

신제주 쪽 식당에 갔는데 그 사람들(예멘 난민)이 일하다 말고 한쪽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더라고요. 사장이나 손님이나 다들 어색해서 혼났어요. 한두 번이야 그저 신기하게 볼 수 있어도 늘 저런 식이면 저걸 왜 다 봐주고 있어야 하나 싶지 않을까요?
_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장순종 씨
 

역지사지하면 답 나오죠

난민이 범죄를 많이 일으킬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라고 봐요. 몇 년 겪어보니 사람 다 똑같거든요. 잘해주면 정 붙이려 들고, 막 대하면 앙심 품죠. 우리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지 미리부터 색안경 낄 것까진 없는 것 같아요.
_수년째 외국인과 한배를 타고 있다는 오항석(가명) 씨
 

외면받는 마음 내가 잘 알죠

제주도는 섬 특유의 폐쇄성이 있어요. 타지 사람이 보이면 경계부터 하고 어지간해서는 마음을 잘 안 열죠. 저도 텃새깨나 당했거든요. 한국 사람들끼리도 그런데 생김새부터 다른 외국인한테는 어떻겠어요. 그 마음 잘 아니까 저는 그래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_부산 출신이라는 이영자 씨
 

제주도가 망가졌어요

딸 셋 키우는 나로서는 찬성할 이유가 없죠. 요즘 애들한테 난민들 많이 모인다는 시청 쪽으로는 절대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게 일이에요. 혹시 가더라도 치마는 입지 말아라, 눈도 마주치지 말아라 하죠. 장전초등학교에 주민 동의 없이 난민 캠프를 세웠다가 학부모들이 등교 거부까지 하겠다고 한 거 아시죠? 민심이 그 정도예요. 언제부터 제주도가 이렇게 망가졌는지 모르겠지만 하도 신원 불분명한 외국인이 많이 돌아다녀서 요즘 세화 쪽에는 어두워지면 집 밖으로 절대 안 나간다는 소리가 있어요. 대낮에도 마찬가지예요. 예전 같으면 혼자 충분히 다녔던 올레길도 요즘은 일행 없으면 갈 생각 안 해요.

그러고 보니 제주도에 온 난민이 주로 젊은 남자라면서요? 남자로 태어났으면 조국에 남아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다 도망쳐 오면 뭐 뾰족한 수 있어요? 본인들 말처럼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면 남은 가족들은요? 거기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얘기처럼 들려 솔직히 진정성은 없어 보여요.
_등산 마니아라는 고명순 씨


*예멘 난민이 주로 청년들인 이유는 징집을 피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대거 빠져나간 청년들이 한번에 입국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통제가 될까요?

진짜 난민인지 아닌지 정부에서 제대로 거를 순 있을까요? 심사받기 전까지만‘착한 척’하다 난민 지위가 생기면 본색 드러낸다잖아요. 유튜브 보니까 유럽에서도 그쪽(이슬람) 사람들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꽤 있다던데…. 솔직히 우리 세금으로 그 사람들 거두는 것도 못마땅하고요. 외국인 간염 치료하느라 190억원 썼다는 뉴스 보고 차라리 우리나라 사람들을 도와주지 싶었거든요.
_3년에 한 번은 제주를 찾는다는 관광객 김중혁(가명) 씨
 

쉬운 일만 찾으면 되겠어요?

난민이 대거 들어왔다는 뉴스가 나온 지 얼마 안 돼 성산항 쪽에 취업하러 100명도 넘게 왔었어요. 어떤 배에는 네 명씩 예멘 난민들이 탔죠. 그런데 뱃멀미 때문에 얼마 못 가 죄 그만두더라고요. 멀미가 아무리 심해도 며칠 버티면 또 적응이 되는데 고생하겠다고 온 사람들이 그거 못 버티고 가버리니 솔직히 진짜 일할 마음이 있나 싶었죠. 여기 대우가 나쁘지 않거든요. 날 좋을 때만 조업을 나가기 때문에 한 달 평균 20일 좀 넘게 일하는데 기본급 약 160만원에 고기 한 상자당 2000원씩 수당 붙죠, 갈치 외에 다른 잡어는 다 가져가라고 챙겨줘요. 경력이 좀 된 외국인 선원들은 한 달에 300만원도 넘게 받아요. 거기다 숙식, 옷 다 제공하니 착실히 모으면 돈이 꽤 된다고요. 한국 사람에 비해 일을 더 시키거나 부당 대우를 하는 것도 전혀 없으니 이 정도면 마음 붙이고 일할 만한데 그 사람들 안 해요. 쉽게 말해 편한 일만 하겠다는 심보지. 살아보겠다고 오는 난민은 받아줘야 하지만, 와서 제대로 발붙이고 살려면 약은 척은 하지 말아야 할 거예요.
_귀순 가수랑 이름이 똑같다던 세원호 선장 김용 씨
 

가족조차도 입장이 달라요

딸: ‘톨레랑스(관용)’를 외치던 프랑스에서도 난민 때문에 사건, 사고가 많아지자 반이슬람, 반난민 정서가 커지고 있다잖아요.
엄마: 전쟁 때문에 목숨이 위태롭다는데 내치는 게 능사는 아닐 것 같아요. 앞으로 난민 수용 문제는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 무조건‘안 돼’ 거부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나마 부작용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다들 생각해볼 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_단란하게 둘이 여행 왔다는 배현숙, 김소영 모녀
 

모슬렘에 대한 편견을 자제해주세요

말레이시아 사람들을 주로 가이드하고 있어요.
안타까운 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슬렘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죠. 여성을 함부로 대한다는 식의 얘기들이 있지만 오히려 남녀 간의 유별이 심하다면 심한 편이거든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일반화해 매도하는 건 너무 폭력적이지 않을까요?
_관광 가이드 박윤아 씨
 

예멘 난민의 체류를 허가합니다

지난 9월 14일 예멘인 가운데 23명이 인도적 체류를 허가받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들은 임신부, 미성년자, 부상자 등으로 한국이‘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포용한 덕분에 1년간 제주도를 포함한 국내 모든 지역에 머물 수 있게 됐다. 물론 난민 지위가 인정된 것은 아니라서 예멘 상황이 좋아지면 체류 허가가 취소될 수도 있다. 남아 있는 예멘인 440여 명에 대한 심사 결과가 다음 달로 예정된 가운데, 체류를 허가받은 23명이 제주가 아닌 타 도시 이전을 희망한 상황. 여전히 뜨거운 불씨로 남은 난민 허용, 반대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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