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삶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맞이할 수 있을까? 죽음학의 권위자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에게 웰엔딩에 대해 물었다.
최준식 교수는 한국학자, 종교학자로 오랫동안 죽음을 연구해왔다. 10여 년 전 한국죽음학회를 발족한 이후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과 인간의식연구센터 등을 이끌어온 그는 최근 우리 사회에 웰엔딩을 전파하기 위해 경복궁역 인근에 ‘세잘학교’를 세웠다.
웰리빙, 웰에이징, 웰엔딩 이 세 가지를 잘하자는 취지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즐겁게 인생을 향유하고 인간다운 임종을 맞기 위한 준비 방법을 알려주는 학교다.
그는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으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죽음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어차피 한 번 죽을 거니 쿨하게 죽음과 대면하자고 한다.
죽음학계에서는 사후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나요?
외국에선 사후 세계에 대한 연구가 무척 활발합니다. 인간의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의사들이 권위자들이지요. 있고 없고를 떠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관심 없는 이 사회가 상식적이지 않아요.
해외여행을 갈 때 어떻게 하세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얻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또 무엇을 봐야 할지를 정합니다. 낯선 곳에 가니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해외여행과는 비교도 안 되게 생소한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완전히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데도 말이지요. 물론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의미가 없을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만일 죽어서 사후 세계가 있으면 어쩌렵니까?’ 죽으면 다 끝이라 생각하고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왔는데 그때는 어찌하겠냐는 것이지요. 일종의 확률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확률로 보면 사후 세계는 있거나 없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후 세계가 있다고 믿고 준비하면 어떤 ‘경우의 수’로든 문제가 없지요. 그래서 죽음과 사후 세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웰다잉이 아니라 웰엔딩인가요?
다잉에는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그래서 ‘삶을 잘 마무리하자’는 의미로 엔딩이 더 적합합니다.
죽음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이번 생애의 마무리로서 단지 몸을 벗는 것에 불과합니다. 육체를 벗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사람들이 왜 두려워하고, 왜 슬퍼할까요? 내세에 대한 확신이 없어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육체를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홀가분해요. 먹을 것 걱정 없고,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 없고, 암에 걸릴 걱정 안 해도 되는데 말이지요.
더 중요한 건 죽음은 마지막 성장의 기회입니다. 내 삶이 6개월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지난 삶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내가 평생 추구했던 것들이 아무 의미 없어 보입니다. 평생 쌓아온 것들이 내 삶을 연장시키지도 않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지도 않지요. 평소에는 이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다가 죽음이 임박하면 그제야 이런 세속적인 것들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대부분 내 삶은 의미가 있었는가, 나는 훌륭한 아버지 혹은 남편이었는가, 자신이 제대로 살았는지 점검해 봅니다.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 것이지요. 그간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다 제쳐놓았던,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들입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짧은 기간 일취월장할 수 있는, 삶의 지평선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요.
성장의 기회로 여기면 삶의 태도가 바뀌겠는데요.
여행을 다녀온 후 느끼는 기분과 비슷합니다. 오랜 여행 끝에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차분히 정리되고 사물이 새롭게 보이잖아요. 생생하게 보이기 때문이지요.
주위가 그렇게 보이니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고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집니다. 여유로워지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게 되지요.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세계 고등 종교도 모두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르치잖아요. 그래서 죽음이 마지막 성장의 기회라는 것입니다.
어떤 죽음이 웰엔딩인가요?
일본 어딘가에 ‘꼴깍사’라는 절이 있답니다. 이 절이 유명하게 된 것은 이 절에서 빌면 ‘꼴깍’ 보내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잘 때 아무 고통 없이 임종할 수 있다는 것인데, 얼마나 죽음이 두렵고 아픈 게 싫으면 그렇게 빌까요?
그런데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9988234’,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만 아프다가 죽고 싶다고 말하잖아요. 이런 죽음이 좋은 마무리일까요? 본인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남은 가족은 어떨까요? 이별을 제대로 하지 못한 허망함과 슬픔에 힘겨워할 수밖에 없지요.
가장 이상적인 임종 모습은 우선 임종이 임박한 순간까지 건강해야 합니다. 몸은 노화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제가 있습니다만, 의식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임종이 코앞에 닥쳐오면 2주나 한 달 정도만 건강이 나빠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동안 가족뿐 아니라 친한 사람들과 충분하게 이별을 나누는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이런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죽음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세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에요. 이에 대한 답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될 것입니다.
죽음도 삶의 내용이나 질이 제대로 받쳐줄 때 완성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것이 좋아요.
죽음학 강의가 요양원에서 인기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그분들은 죽음이 가까이 오니 직면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 준비 외에 다른 준비도 필요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꼭 해야 할 일이 유언장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사전장례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이지요.
유언장은 미리 써놓는 것이 좋습니다. 내용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써놓고 매년 개정하는 것도 방법이지요.
유언장에는 어떤 내용을 담을까요?
딱히 정해진 양식은 없지만, 추천한다면 먼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임종하기를 원하는지 적습니다.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인데 사람에 따라 장기 기증이나 시신 기증 여부도 밝힐 수 있지요.
유언장 마지막에는 자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적습니다.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도 평소에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자서전을 써서 자식들에게 남기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장례식에 대한 내용도 밝혀두세요. 일본이나 미국 등은 결혼식처럼 특정한 날을 잡아 정식으로 사람들을 초청해서 장례식을 치릅니다. 아쉽게 우리나라는 문상은 있지만 정작 장례식은 없어요. 2박 3일 동안 그저 문상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를지, 문상을 받을지 아니면 따로 교회나 절 같은 데서 장례식을 할지, 아예 장례식이 필요 없다든지 하는 등의 견해를 유언장에 쓰는 것이지요. 이왕이면 적극적으로 자신의 장례식을 디자인하는 것이 좋고요. 예비부부가 자신들의 결혼식을 디자인하듯 장례식도 내 뜻에 따라 절차와 방식을 정하는 겁니다.
장례식은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까요?
일단 자신이 초청하고 싶은 사람을 선정해 보세요. 자식들이 그분들을 초청할 수 있도록 연락처를 적어놓는 것은 필수이고요.
다음은 식순인데 각 순서를 맡을 사람들을 확실하게 적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조사는 누구에게 부탁하고 조가는 누가 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요. 종교 신자라면 자신이 듣고 싶은 성구를 명시하고 누가 그것을 읽어주면 좋을지 적어두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있어요. 나의 마지막 인사를 남기세요. 건강할 때 직접 마지막 인사를 미리 녹음하거나 녹화해두는 것입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한평생 살면서 어떤 마음으로 살았고, 주위로부터 어떤 은덕을 입었는지 말해보세요.
또 신세 진 분들에게 세세하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자기가 잘못한 분들에게는 진실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면 좋겠지요. 이런 영상을 장례식 당일 마지막 순서로 보여준다면 훈훈한 장례식이 되지 않을까요? 추모객도 유족도 큰 위안을 받을 겁니다.
생의 마지막을 의미 있게 보내고 가는 방법이네요.
실제 일본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화장장으로 가는 버스의 TV 모니터에 고인이 나타난 겁니다. 돌아가신 분이 나타났으니 문상객들이 깜짝 놀랐지요.
고인은 궂은 날씨에 자신의 마지막 길에 동행해 줘 고맙다는 메시지와 함께, 사는 동안 고마웠던 사람과 미안했던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마지막 말은 자신이 먼저 가지만, 다시 만날 것을 고대한다고 남겼지요.
그런데 고인이 어떻게 궂은 날씨라는 걸 알았을까요? 날씨에 따라 여러 버전으로 녹화해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마지막을 디자인한다면 본인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어 좋고 친지나 지인은 고인을 좋은 기분으로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장례식장에 고인의 일대기를 담은 영상을 틀면 어떨까요? 혹은 고인의 유품을 진열해놓을 수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방법을 추천해 주세요.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죽음을 다룬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좋습니다.
영화를 몇 편 추천하자면 본인이 암에 걸려서 죽는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엔딩 노트>, 암에 걸린 주인공이 어떻게 자신의 임종을 맞이하는지를 그린 <살다>, 엄마가 암으로 죽는 과정을 굉장히 리얼하게 다룬 <도쿄 타워>, 죽은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어린 소년과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를 그린 <식스 센스> 같은 영화가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보세요. 피하고 피하다가 죽음에 끌려가지 말고 적극적으로 어떻게 하면 생의 마무리를 잘할지 차분하게 고민해 보세요. 그러면 지금 삶도 즐거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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