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육아? 난 '격대교육' 중이라고!

기사 요약글

지난해 정년퇴직을 맞이한 60대 허창선씨. 아내와 함께 5살짜리 손녀딸을 돌보고 있는 그는 요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기분이다. 딸과 똑 닮은 손녀딸을 볼 때마다 다시 젊은 아빠가 된 착각 마저 든다는 것. 과거 바쁜 업무로 딸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더해지면서 허씨는 의욕적으로 손녀딸을 ‘케어’하고 있다. 조부모의 격대교육, 맞벌이 육아의 최선책

기사 내용

 

 

 

유치원 데려가기, 유기농 간식 챙기기 같은 ‘케어’와 더불어 그가 요즘 한창 관심을 쏟고 있는 건 아이의 교육이다.

 

육아 커뮤니티에 가입해 ‘눈팅’까지 하는 ‘열혈할아버지’ 허씨는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 조차 ‘수저 제대로 놓기’, ‘소리 내서 씹지 않기’ 등의 예법을 가르치며 아이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손녀딸에게 ‘apple', 'sky’ 같은 단어를 읽어주면서부터는 인터넷에서 영어 발음을 찾아 들을 정도다.

 

이런 지극정성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아이는 틈만 나면 할아버지의 목을 끌어 안는다. 현대판 ‘격대교육’의 좋은 예다.

 

 

 

 

격대교육이란 한 대를 걸러 조부모가 손자 손녀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을 뜻한다. 핵가족화 되면서 한때 이런 풍토가 약해지긴 했으나 맞벌이가 필수로 여겨지는 요즘 새삼 그 중요성이 재조명 되고 있다.

 

문제는 모든 조부모가 앞의 허씨 같지 않다는 점이다. 며느리가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살림을 합친 김 할머니는 요즘 울컥 할 때가 많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손자를 위해 간식을 해대고, 집안을 치우지만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만 든다.

 

‘아이가 사투리를 따라 한다’, ‘간식에 설탕을 너무 많이 넣는다’는 등 들릴 듯 말 듯한 며느리의 푸념에 속이 상하기도 여러 번. 한가하게 운동이나 여행을 다니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내가 왜 사서 고생인가’ 싶어 부아가 치민다.

 

며느리 윤씨도 불만이 있긴 마찬가지. “그런데 까지 돈을 쓰냐”며 아이 과외 활동에 은근히 제동을 거는가 하면 퇴근하고 돌아온 자신에게 “아이고 허리야, 힘들어 죽겠다”는 식의 푸념을 늘어놓는 시어머니가 얄밉다. 이렇게 아이 양육에 대해 조부모나 자식이나 서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은 게 사실.

 

맞벌이 가구 중 절반 가량인 250만여 가구가 ‘황혼육아’를 하고 있는 만큼 국가에서도 이런 스트레스 관리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조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세살마을 부모교육 커리큘럼에 ‘자녀와 갈등해소 방법’ 등이 포함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격대교육에 대한 우려는 존재하지만 사실 격대교육의 장점은 그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없이 증명돼 왔다.

 

 

 

 

부모의 이혼으로 외조부모 밑에서 자란 버락 오바마가 자신이 편견 없이 자랄 수 있었던 이유로 외할머니의 가르침을 꼽은 점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어린 오바마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할머니는 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빌 게이츠 역시 현재 자신을 만든 건 할머니와의 대화와 독서라고 밝힌바 있다.

 

사생아로 태어나 늘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죽는 날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넌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어”라는 격려를 전했던 할머니 덕에 훗날 세계적인 위인이 된다. 동화 같은 일들이지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조부모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아이일수록 성적이 좋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성취감을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예부터 조부모 곁에서 예의범절을 배우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았던 우리 선조들 역시 격대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퇴계 이황은 44세 때부터 세상을 뜰 때까지 무려 16년 간 125통의 편지를 보내 손자를 교육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육아일기로 꼽히는‘양아록’은 할아버지의 손에 쓰여졌다. 맞벌이가 점점 일반화 되어가는 상황에서 앞으로 조부모에게 맡겨지는 아이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엄마 손’을 대체하는 ‘차선’책으로 이해하는 시각도 있지만 조부모가 보여주는 한량없는 사랑을 떠올리면 오히려 ‘최선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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