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걸어도, 뮤지엄 산을 산책하자

기사 요약글

달리기보다는 걷기, 말수 줄이고 관조하기, 행동은 느릿느릿. 이 모든 게 어우러진 뮤지엄 산을 산책한 이유다.

기사 내용

 

출처: 네이버 지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8년작 <걸어도 걸어도>를 아는지. 영화는 가족의 죽음을 통해 남은 사람들이 ‘상실’을 어떻게 치유하며 살아가는지 세심하게 그려 낸다. 해가 지고 바뀌는 것을 하나가 끝나고 하나가 새로 시작되는 개념이 아닌,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는 이치로 깨달은 사람은 죽음과 삶이 서로 다르지 않음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걸어도 걸어도>는 새로운 마음을 먹되 들뜨지 않고 뭔가 시작해야 할 때 생각나는 영화다.

강원도 원주에 뮤지엄 산(Space Art Nature)이 있다. 이곳은 노출콘크리트의 대가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으로 단순히 노출콘크리트라는 통속적 수사로 한정하기에는 이면에 풍성한 이야기가 많은 건축이다. 뮤지엄의 시작점은 주차장과 연결된 웰컴센터, 반환점은 독보적인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전용 미술관이다. 시작점과 반환점 사이에는 특징적인 몇 개의 정원과 전시 공간, 산책로로 이루어져 있다. 통상적인 전시관처럼 누군가 정해놓은 동선으로 움직이는 공간이 아닌 것이다. .

 

 

 

 

시작과 끝이 없는 기묘한 산책로

 

주차장과 연결된 웰컴센터는 메인 드라마의 애피타이저다. 원형으로 휘어진 벽을 따라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 가공되지 않은 자연미의 석축 벽, 구조를 지탱하는 노출콘크리트가 부담스럽지 않은 비율로 버무려져 산책자를 맞이한다.

웰컴센터를 벗어나 뮤지엄의 입구로 걸어가는 300여 미터의 여정은 얕고 넓게 펼쳐진 패랭이꽃밭과 위로 높이 솟은 백색 자작나무 숲인데 서로 극단적 대비를 이루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이색적인 배치다.

자작나무 숲과 산책로의 가벽 뒤에는 워터 가든이 숨어 있다. 뮤지엄 건물을 물 위에 띄운 배처럼 보이게 하는 수 공간은 주변 자연의 풍경과 계절의 색채까지 정직하게 담아내는 거대한 바닥 거울이다. 만약 혼자 워터 가든을 걷게 된다면 잠시 눈을 감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 사각거리는 나무 소리, 수면 위를 스치는 바람 소리, 알 수 없는 편안한 백색소음이 지친 머리를 상쾌하게 해줄 것이다.

 

 

 

 

자연과 나를 연결하는 경험

 

안도 다다오는 어떤 프로젝트에서든 지역의 토속 재료와 특유의 노출콘크리트를 기반으로 사각형, 삼각형의 기본 기하학 조형을 조합해 독창적 공간을 만들어 낸다. 워터 가든에 깔린 돌은 서산의 해미석이다.

뮤지엄 입구를 지나면 삼각형으로 뚫린 하늘을 볼 수 있는 돌 무더기 마당이 있다. 뮤지엄의 중간에서 앞과 뒤를 연결하며 산책자들이 잠시 한숨을 돌리게 하는 공간이다. 땅과 하늘, 돌과 콘크리트, 사람을 동시에 연결해주는 여백의 공간으로 건축가의 의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눈 오는 날 삼각형 돌 마당에서 하늘을 보면 건축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본관을 빠져나오면 신라 고분을 모티프로 한 스톤 가든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는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관이 있다. 제임스 터렐은 자신만의 공간과 빛을 만들어 낸다. 공간과 빛은 체험의 대상이다. 글로 그런 체험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건 어렵다. 그의 공간은 바닥과 벽의 구분이 없다. 벽과 천장의 구분도 없다. 안과 밖, 어둠과 빛의 구분도 없다. 제임스 터렐을 알고 나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해왔던 현실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른다.

 

 

 

 

 

좋은 산책이란

 

예술을 체험하는 시간이란 잠자던 감각의 체험이 풍부하게 일어나는 시간이다. 도시에서는 결코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것들, 삶의 배경과 바탕으로 존재했지만 잊고 있거나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만나는 시간이다. 뮤지엄 산에는 계절과 풀, 나무, 꽃, 물, 하늘, 돌, 콘크리트, 철, 빛, 그림자, 공간, 날씨 그리고 사람이 있다. 삶을 이루고 세상을 이루는 것들에 대해 애쓰지 않고도 편하게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다. 꽤 걸어본 사람들은 이미 아는 사실이지만 ‘걸어도 걸어도’ 인생은 매사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 늘 이런 식이다. 언제나 조금씩 어긋나고 한발씩 늦고 그 시간이 지나면 되돌릴 수 없이, 그저 흘러가는 것이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뮤지엄 산을 통해 그런 시간들을 공간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걷다 보면 우리도 그 진리를 다시 깨닫게 된다.

 

 

최준석

건축사사무소 NAAU LAB을 운영하며 꿈도 많고 말도 많은 분들의 집과 공간을 설계 중이다. <서울 건축 만담><어떤 건축> 등의 저서를 펴냈고, 다양한 매체에 꾸준히 건축과 공간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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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성기 매거진, 네이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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