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그리고 부부의 의미

기사 요약글

은퇴는 누구나 겪는 인생의 과정이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지는 개인마다 다릅니다. 철저한 대비와 계획을 세워놓은 경우도 있지만, 막막한 심정으로 떠밀리듯 은퇴를 맞는 경우도 있죠. 이에 <전성기>는 한국샌더스은퇴학교 조관일 교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습니다. 그 역시 은퇴에 얽힌 복잡다단한 감정을 겪은 뒤 현재 은퇴자를 위한 교육에 뜻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기사 내용

 

 

 

“왜 이렇게 어지럽지?”

 

 

아내가 자리에 누운 채 힘없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노후에 아내와 단둘이 살면서 나타난 증세다. 집 안 어디에선가 아내의 웃음소리가 들리면(대개 아내 혼자서 TV를 보다가 깔깔대며 웃는 경우다) 마음이 편안한 반면에 힘겹거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리면 불안한 요즘이다.

 

아내의 감정에 따라 내 기분이 좌우되는 것이다. 그렇게 늙어간다. 뭐 그 정도까지 아내에게 예속되어 예민하냐고? 그렇다면 이렇게 대꾸할 수밖에 없다. “당신도 늙어보라”고.

 

워낙 부지런한 성격이라 이부자리에서 몸을 뭉개는 경우를 보지 못했기에 아내가 자리에 그냥 누워 있다는 것은 비상 상황임을 의미한다. 그날 그랬다. “왜 이렇게 으슬으슬 춥지?” 아내의 그 말에 이마를 짚어봤는데 몹시 뜨거웠다.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하고 체온을 재봤더니 맙소사! 39도가 넘었다. 서둘러 병원 응급실로 직행했고 시시각각 혈압이 떨어졌다. 의사가 진단한 병명은 패혈증이었다. 패혈증! 그것의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아는지라 정신이 아뜩했다. 그나마 조금의 희망을 갖게 한 것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일찍 응급실로 오기 잘했다”는 의사의 말이었다.

 

그날 밤, 아내 곁을 뜬눈으로 지키며 수시로 체온과 혈압을 체크했고 그때마다 간호사를 불러들여야 했다. 다음 날 어렵사리 간병인을 구해놓고 예정된 강의(때로는 부모님 상을 당해도 강의를 취소할 수 없는 게 강사의 애환이다)를 소화했지만 머릿속은 별별 상상으로 가득했다. 만약 아내가 잘못된다면? 상상이 그것에 이르자 눈물이 글썽였다.

 

나의 방정맞은 상상력은 점점 더 극을 향해 달렸고 현실감이 더해져 마치 불행한 일이 당장 눈앞에 벌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 생각을 곰곰 되씹으며 불안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위급한 증세는 일주일쯤 지나 잡혔고 10여 일 만에 아내는 퇴원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끼고 깨달은 바가 적지 않다. 때때로 시련은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다. 흔히들 100세 시대에는 늙어서도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일이란 것도 누군가 나를 기다리며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의를 끝내고 아내가 없는 빈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나를 기다리고 지켜보는 사람의 가치와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했다. 또 하나 떠오른 것은 언젠가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다. 그 책이 무슨 책인지 찾으려고 서가를 뒤졌으나 찾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내용은 대충 이랬다.

 

 

 
 

‘우리가 성공하려고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렇다. 그것이 실감 있게 다가왔다. 그동안 내가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며 50권에 이르는 책을 낼 만큼 치열하게 살아온 그 바탕은 다름 아닌 아내에게 자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서였음을 알게 됐다. 주위에 세상 사람이 제아무리 많아도 나의 성공과 자랑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받아줄 사람은 바로 아내요, 그이가 내 삶의 진정한 동력이었던 것이다. ‘싸나이’답지 않게 너무 감상적이라고? 아내에게 꼭 매여 사는 공처가 아니냐고? 아무려면 어떠냐. 그게 바로 나요, 그렇게 맞고 있는 노후인 것을….

 

차제에 당신을 기다리며 지켜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당신은 누구에게 성공을 자랑하고 싶은지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아내의 패혈증은 내게 그런 기회를 주고 사라졌다. 시련이 꼭 고통인 것만은 아니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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