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의 중년 나기

기사 요약글

“우리 중년들 즐겁고 건강하게 삽시다. 스왝~”

기사 내용


화보 촬영을 끝내고 <헤이데이> 독자들에게 영상 메시지를 띄우던 이종원. 촬영 내내 진지했던 그에게서 갑자기 ‘스왝’이라는 말이 나오자 모든 스태프가 크게 웃었다. 드라마 <학교 2017>에서는 젠틀하지만 냉정한 이사장 역으로, 예능 <둥지탈출>에서는 자상한 아버지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는 그는 의외의 웃음을 선물하며 즐겁게 일할 줄 아는 남자다.

 

어깨를 다쳐 수술했다던데, 드라마 촬영이 무리 아닌가요?
두 달 전에 어깨 염증으로 수술했는데 회복이 좀 더디네요. 촬영에는 지장이 없어서 다행이지요. 또래 배우 중에 저와 비슷한 통증으로 고생하는 분이 꽤 있어요. 나이가 드니 자연스럽 게 몸에 잔고장이 생기는 거지요.

세월이 가져온 몸의 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나요?
몸의 고장도 어떻게 보면 그동안 내 몸을 열심히 사용한 후유증이 아닐까요? 거부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잖아요.<광수생각>의 박광수 작가와 친구예요. 둘이서 숫자가 주는 위기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50세는 우리 주변에서 봤을 때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인생의 궤도에 오른 나이잖아요. 예전에 내가 밑에서 올려다봤던 50세는 굉장히 커 보였어요. 지금 50 세인 나도 그럴까? 그런데 외모든 삶이든 과거에 비해 변한 게 별로 없더라고요.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더라고요.

숫자를 개의치 않겠다는 거군요?
‘너는 지금 50대야.’ 대개 숫자 이야기는 내가 아니라 남들이 하는 말이에요. 남들이 주는 불안감인 거죠. 그래서 숫자에 의미를 두지 않고 살기로 했어요.

매년 한두 편의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해요. 오랫동안 꾸준함을 유지하는 비결은 뭔가요?
배우로서도, 생활인으로서도 지나가는 것을 붙잡거나 당기려고 하지 않아요. 큰 욕심도 없어요. 오히려 올라가는 것보다 유 지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요. 배우로서 어느 정도 잘나가던 30 대 초반에 그런 생각을 굳혔죠. 내가 오래갈 수 있는 캐릭터는 뭘까? 결국 내 캐릭터는 내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결정 된다고 봤죠. 그것이 자기 관리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역할을 많이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런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했어요. 덕분에 지금 일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고요. 내게 일이 주어지는 것은 내가 필요한 사람이란 거잖아요. 일을 통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아요.

인생을 계획적으로 사는 편인가요?
10년, 20년 먼 미래의 그림을 그리지는 않아요. 길게 1년 정도만 봐요. 지금은 내년 봄까지의 계획을 세워놨고요.

계획을 짤 때 우선순위는요?
당연히 1순위는 가족이지요. 그다음에 나. 그리고 일이지요. 중년 남자는 가족에게서 사랑받길 원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아요. 우리 집 서열이 있어요. 서열 1위는 큰딸, 2위는 아들 성준, 3위 아내, 4위 강아지, 5위 나. 강아지보다 못한 아버지죠. 아마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버지 서열이 이렇지 않을까요? 스스로 참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가족에게 얼마나 위로받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우울해지고 의욕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중년이 그런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공감대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아들과는 좋은 영화가 나오면 같이 보고, 일하는 아내와는 주말에 어떻게든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하고요. 가족과 같이 보낼 수 있는 뭔가를 찾으려고 노력해요.

<둥지탈출>에서 아빠를 꼭 닮은 아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춘기라 출연이 부담됐을 텐데요?
제안을 받았을 때 가족을 공개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 아들도 안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들에게 의견을 물으니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아내와 고민하면서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더 크겠다고 생각했어요. 방송에 출연하면 밖에서의 생활이 조심스러워지니 절제를 배울 수 있잖아요. 관련 기사 댓글에 금수저 이야기가 나올 줄은 알았죠. 아들이 배우를 할 생각은 없어서 그런 비판에 개의치 않아요. 이왕 출연한 거 앞으로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들을 보면 제 인생과 비슷해요. 저도 중학교 2학년 때 키가 180cm를 넘었어요. 중학교 3학년인 성준이도 180cm가 넘어요. 얘가 뭘 조심해야 될지, 제 인생과 비교가 되더라고요.‘내가 중고등학교 때 어떻게 했지?’ 생각하면서 조언해요. 아들이 절 닮아 운동을 좋아해요. 운동에 빠지면 무척 재미있어하고요. 제가 그랬듯, 운동이 인생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요?
운동을 많이 해요. 야구, 축구, 골프 등 공으로 하는 운동을 무척 즐겨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라 팀으로 여럿이 같이하는 운동이지요. 운동도 좋아하지만 공감대가 있는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좋아요. 어제도 제가 소속된 야구팀과 함께 장애인들을 찾아가 시간을 보내고 왔어요. 쌓인 스트레스를 그렇게 풀어요. 그리고 작품이 끝나면 한 달 정도는 공백기를 가져요. 바로 일이 잡히면 성격상 불안해서 쉬지를 못하거든요. 이번에는 드라마가 9월 초에 끝나 그 뒤의 스케줄은 안 잡았죠. 그때는 주로 해외로 떠나요. 혼자 가거나 친구들과 함께 가죠. 그 휴식만큼은 아내가 이해해줘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복잡한 생각을 지우는 저만의 방법이죠. 내일의 대사를 외우기 위해 오늘 대사를 잊듯, 다음을 위해 이전 것을 비우고 내려놓고 돌아와요.

일상에서 내게 위안이 되는 장소는 어딘가요?
자동차 안이에요. 저는 집에서 드라마 대본을 못 외워요. 새벽에 대본을 들고 주차장으로 갑니다. 차에서 외우면 잘 외워져요. 나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이 자동차 안이 아닌가 싶어요. 배우로서도, 생활인으로서도 지나가는 것을 붙잡거나 당기려고 하지 않아요. 큰 욕심도 없어요. 오히려 올라가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요. 배우로서 어느 정도 잘나가던 30대 초반에 그런 생각을 굳혔죠. 내가 오래갈 수 있는 캐릭터는 뭘까? 결국 내 캐릭터는 내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봤죠. 그것이 자기관리입니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데, 그만큼 ‘나’에 대해서 잘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네요.
저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에 대해 잘 알고 있죠. 이종원은 한마디로 말해 단순하고 직설적인 사람이에요. 장점이자 단점이지요. 어떤 일이든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빨라요. 그렇다고 즉흥적이지는 않아요. 순간순간 빨리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지요.

할까 말까 고민할 때 주로 하는 편인가요?
일단 하지요. 결혼 이후에는 가족들을 고려해 못한 부분도 꽤 있지만 그래도 제 기본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인생에서 뭔가를 결정할 때 판단 기준은 뭔가요?
첫 번째는 내 주관이에요. 주관이란 살아오는 동안 여러 경험이 쌓여 얻어진 생각이지요. 두 번째는 주위의 조언이죠. 다만 주위의 조언이 나를 설득하지 못할 때는 따르지 않아요. 살면서 우여곡절도 있었지요. 그렇지만 크게 남들에게 피해 주고 살지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몸조심해라’ ‘잘 다녀와라’가 아니라 ‘남에게 피해 주지 마라’ 였어요. 남을 배려하라는 의미도 있지만, 어머니께서는 ‘남들과는 거리를 적정하게 유지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고 너무 많은 관심을 갖다 보면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누군가 피해를 입는 경우도 생기잖아요. 어머니의 그 말씀이 몸에 밴 거지요.

적정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뭔가요?
어려운 자리는 안가요. 쉽게 말해 양복을 입고 가는 자리는 피합니다. 학교 선후배 중에 정관계에 계시는 분도 꽤 있어요. 친분은 있지만 그런 분들이 부르는 행사는 안 가죠. 가식적으로 있어야 하니까요. 가면 불편할게 뻔한데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요? 우연히 그런 자리에 참석했더라도 그곳에서 명함을 받으면 돌아서서 버려요.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가까이하는 사람은 말 많은 사람보다는 말이 없는 사람이에요. 들어주는 사람, 나보다는 내 주변의 상대까지 생각해주는 사람이에요. 내 가족들의 생일까지 기억해주는 친구들이 몇몇 있어요. 같이 나이 들어가며 삶을 동행하는 친구 들이지요.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요?
외모로는 조지 클루니처럼 늙는 것이 제 목표고요. 지금 이 모습에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자연스럽게 늙고 싶어요. 외적인 변화를 굳이 막으려고 하지 않아요. 저는 화장품이 없어요. 향수도 없고 그 흔한 스킨로션도 없고요. 옷 색깔도 흰 색, 회색, 검은색 딱 세 종류예요. 복잡한 걸 싫어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꾸미기보다 있는 그대로,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삶을 좋아해요.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알고, 나 자신을 지키며 나이 들고 싶어요.

자신의 10년 뒤를 그려본 적 있나요?
많이 상상해봤지요. 아내와 상의도 자주 했고요. 아내는 나이가 들수록 도시에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도시에서 멀지 않은 자연으로 나가고 싶어요. 케이블TV <나는 자연인이다> 에 보면 그런 분들 많아요. 60세면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인데, 저도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에 귀의하는 삶을 꿈꿔봅니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건 없습니까?
몇 년 전만 해도 골프를 좋아해 죽기 전에 세계 100대 골프장 투어를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뭔가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것 역시 또 다른 욕심이지 않을까요? 그 대신 오늘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해요. 사람들은 저의 전성기를 모델 시절로 생각할 겁니다. 외모의 젊음과 인기로 따지면 그럴 수 있지요. 그러나 저는 지금 이 순간을 제 전성기라고 생각하며 살아요.

 

이날 촬영은 여느 촬영보다 빨리 끝났다. ‘짧고 굵게, 그 순간 최대한 집중한다.’ 이것이 이종원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한때 최고의 모델이지 않았던가. 오랜만에 모델 시절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며 촬영 소감을 말한 이종원. 이제는 웃으며 옛 기억을 말하는 그에게 나이에서 오는 여유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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