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커피, 술 끊기 100일 결과는?

기사 요약글

100일 동안 밀가루, 커피, 술 세 가지를 끊기로 결심했다.

기사 내용

3금을 결심하다

밀가루 음식을 자주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유독 저녁 식사 뒤에 특정 브랜드의 라면을 탐하는 편이었다. 커피믹스도 하루 한 개로 정해놓았지만 차츰 두 개 이상으로 늘어나서 고민이었다.

술은 매주 일요일 동호회 회원들과 달리기를 한 뒤에 마시는 막걸리 정도인데 기왕 결심하는 김에 슬쩍 끼워 넣었다. 설탕도 고민했지만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그 대신 음식에 들어가는 설탕은 어쩔 수 없으니 초콜릿이나 사탕, 아이스크림 등은 먹지 않기로 했다.

“그게 뭐가 어렵다고? 나는 원래부터 밀가루나 커피믹스는 입에도 안 대는데?”라고 되물을 심산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식품이나 기호품을 생각해보자. 자신이 좋아하고 그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뭔가를 100일 동안 끊는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일 것이다. 밀가루, 커피, 술 이 세 가지를 끊기로 한 것은 나 자신의 결심을 100일간 유지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일단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세운 결심을 널리 알렸다. 그래야만 중간에 목표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결론부터 말한다면,‘곰이 100일 동안 마늘을 먹은 후에 사람이 된’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곰이 즐겨 먹던 먹거리를 뿌리치고 매운 마늘만 먹으면서 버틴다는 것은 도를 닦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게다. 그러니 사람이 되고도 남을 만큼의 고행을 한 셈이다.

 

몇 번의 고비

100일 동안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처음 고비는 지인들과 유명한 만둣집에 갔을 때이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밀가루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다른 사람들이 만둣국을 주문할 때 찐만두를 주문했다. 그리고 만둣국과 같은 속도로 만두를 먹되 만두피를 남기고 만두 소만 먹었다. “뭘 그렇게까지···”라고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자신의 결심을 지키기 어렵다.

재미있는 것은 지인들의 반응이었다. 만두피를 남기는 이유를 궁금해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아무도 모르는 게 아닌가.‘내가 생각한 것만큼 남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는 속설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한번은 생일 축하 파티에 갔을 때였다. 생일을 맞은 지인이 케이크의 촛불을 끈 다음 일일이 케이크를 나눠주었다. 입에 대면 녹을 것 같은 생크림케이크였지만 눈을 질끈 감고 참았다.

이번에도 다른 사람들은 내 생각과 달리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고비는 연이어 찾아왔다.

5월 중순 강원도에 친구들과 같이 휴가를 갔을 때였다.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3대째 내려오는 유명 막국숫집이었다. 주인장을 불러서 “밀가루 알레르기가 있는데 밀가루가 섞여 있느냐”고 물었더니 10%쯤 섞였다고 한다. 순수 메밀만으로는 막국수를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 ‘언제 여기 다시 와보겠어? 그리고 밀가루가 10% 정도 섞인 막국수는 괜찮지 않을까?’ 마음속 악마의 속삭임이 있었지만 유혹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보쌈이라는 대체 메뉴가 있었기 때문이다.

계족산 맨발마라톤에 참가했을 때가 최대 고비였다. 더위를 참으면서 중간 간식 지점까지 달려갔더니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나눠주는 게 아닌가. 마라톤대회 때 먹는 아이스크림은 달콤하고 시원해서 정신이 번쩍 나는 맛이다. 내미는 손길을 마다하고 물 한 컵을 마시고 달리는데 내내 아이스크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커피와 막걸리를 참는 것도 생각 외로 힘들었다. 초기에는 커피믹스의 바스락거리는 봉지 소리에도 군침이 저절로 넘어갔다. 막걸리는 일요일 마라톤 동호회 정기 모임 뒤가 문제였다. 달리기를 끝낸 뒤 마시는 막걸리는 갈증과 더위를 한꺼번에 해소해주는 사이다 같은 맛이다. “딱 한 잔만 마셔보라”는 회원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또 뿌리쳤다.

 

드디어 100일 후, 결과는?

드디어 밀가루, 커피, 술 등 세 가지 끊기 100일 작전이 끝났다. 다이어트를 위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몸무게가 2kg가량 빠졌다. 체구가 작은 편이어서 그 정도 줄었는데도 “많이 날씬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몸무게가 줄어들면서 달리기 속도 또한 빨라졌음은 물론이다.

2017년도 어느새 반년이 훌쩍 지나갔다. 밀가루든 뭐든, 건강에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특정 식품이나 기호품을 일정 기간 끊는 목표를 정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성공적으로 끝낼 수만 있다면 몸 상태가 훨씬 좋아진다. 음식이나 생활을 절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덤이다.

 

이영란

매일경제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한국능률협회 미디어부국장, 뉴스월드 기획국장을 역임했다. 12년 전 마라톤을 시작해 풀코스 50여 회, 울트라(100km) 2회를 완주했다. 풀코스 최고 기록은 3시간 27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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