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XUAL INSTINCT 섹스
아버지를 용서합니다?
“아오이 소라를 필두로 한 일본 AV로 저의 하반신이 친일에 물들어가듯, 아버지도<뽕><산딸기>
<애마부인>에 열광하던 혈기 왕성함이 있었다는 거 알아요. 그리고 아버지의 그 꿈틀거리는 성욕이 있어서 제가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도 인정해요. 그래도 종마 같은 흑인 남자와 백옥 같은 피부의
백인 여자가 합체하는 현장을 보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싫어요.”
고향에 다녀온 20대 후반의 후배가 성스러운 표정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아버지의 컴퓨터‘내 문서– 다운로드’ 폴더에 정직하게 저장된 살색 동영상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지만 조용히 가슴에 묻고 서울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비록 아버지께서 지엄한 국법과 강상의 도리를 어기셨지만, 나으시고 기르신 은혜가 하해와 같으니, 범인 은닉에 대한 가혹한 추궁이 있더라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온화하지만 다부진 표정이었다.
가만히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진심을 느끼고 나도 충심을 담아 대꾸했다. 지. 랄. 한. 다.
50대, 60대의 컴퓨터에 살색 파일이 좀 있는 게 뭐가 문제냐?
박형준 시인의<성(城)에서 2>의 한 부분이다. 이 시는 야한 동영상을 보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어떤지 단적으로 나타낸다. 나이 든 이들의 뜨거운 욕망 또는 그 욕망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초리를 다룬 작품은 이 밖에도 얼마든지 있다. 누구도 세월을 비껴갈 수 없거늘 어린것들은 왜 어르신들의 성욕에 혐오감까지 드러낼까? 30대만큼은 아니어도 40대에도 욕망은 존재하며, 40대에는 못 미쳐도 50대에도 성욕은 존재한다. 60대, 70대가 돼도 마찬가지다. 순도 높은 성욕은 아닐지 몰라도 사람의 체온에 대한 갈증은 지속된다. 사회적 시선이나 건강 때문에 청춘 시절처럼 짝짓기를 위해 유랑하지 않고, 모니터 속에서 성적 판타지를 간접 체험할 뿐이다.
포르노 스타가 된 노인
중년을 넘어선 장년과 노인의 성적인 욕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 도쿠다 시게오(田重男). 1934년생인 도쿠다 시게오는 여행사 에이전트로 일하다 60세에 정년퇴직한 후 제2의 직업을 찾다가 어찌어찌하여 포르노 배우가 됐다. 업계에 처음 입문했을 때 그는 포르노 속의 그저 그런 기능성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엑스트라답게 화면을 스쳐갔다. 카메라앵글에는 그의 얼굴보다 정액이 오래 잡혔다. 하지만 한 포르노 연출자가 노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일본에서 노인 포르노가 새로운 장르로 각광받을 것이라며 도쿠다 시게오를 주연으로 기용했다. 꽃띠 처자도 어지간히 예뻐야 주인공에 등극하는데 주름살 가득한 노인이 커버를 장식하게 된 것이다.
2004년도부터 발매된<노인> 시리즈로 도쿠다의 고정 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살을 섞고 섞고 또 섞어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살색을 만들어야 하는 업계 생활이 그의 심장에 퍽이나 자극적이었던 듯싶다. 2005년, 그는 심근경색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이듬해<금지된 노인 간호>가 대박을 터뜨렸다.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효심 지극한 병 수발에 원기를 지나치게 회복한다는 내용이었다. 도쿠다 시게오는 일본 포르노 역사에서 온몸을 하얗게 불사를 정도로 열심히 활약했다. 2008년까지 350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했으며, 미국의 시사 주간지<타임>과 CNN에서까지 그를 집중 조명했다. 도쿠다는 수백 명의 AV 스타들과 관계를 가졌는데, 그 가운데에는 그가 74세에 합체한 71세의 여배우 이토 후지코도 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이들은 새로운 장르가 완전히 자리 잡게 만들었다. 현재 일본에서 제작되는 포르노의 20~30%는 중년 이상의 어르신이 활약하는 진짜‘어른 영화’다.
볼거리 가득한 세상의 개척자
어른들이 어른 영화에 관심을 갖는 건 역사적으로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옛날에는 영화를 보려면 극장에 가야 했다. 개인의 욕망이 공적인 장소에서만 해소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가정에서 영화를 틀 수 있는 비디오 플레이어(VTR)가 출시됐다. 공적인 장소에서 포르노를 보는 게 퍽이나 부끄러웠던 이들에겐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비디오 콘텐츠 가운데 포르노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포르노가 비디오 플레이어의 대중화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건 이미 공증된 사실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비디오 플레이어가 대중화됐으니, 당시 20대 열혈 청춘과 30~40대 구매 능력자는 이제 50대에서 80대 사이가 됐다. P2P 사이트에 음란물을 퍼뜨리던 노인이 체포되어 화제가 된 일이 있는데 놀랄 일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거다.
시청권을 허하라
사람과 가장 닮았다는 피그미침팬지는 종족 번식과 상관없이 쾌락을 찾아 성관계를 맺는다. 몸이 말을 안 들을 때에는 나무 막대기 같은 도구를 이용해 유희를 즐기기도 하고, 시원한 그늘에 누워 다른 피그미침팬지의 라이브 포르노를 즐기기도 한다. 피그미침팬지에게도 주어진 권리, 포르노의 시청권이 어르신에겐 허락되지 않는단 말인가? 여전히 욕망이 존재하고,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실천 능력도 있고, 심지어 포르노 시장을 개척한 원년 멤버이기도 한 세대다. 지하철 한구석에 어른을 위한 포르노 시청석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요즘 학생들이‘D 드라이브 - EBS 강의– 6월 강의 01– 역사 Chapter 4– 조선 건국의 의의’ 폴더를 통해 인체의 신비를 탐구하는 것처럼, 그저‘내 컴퓨터’ 속의‘내 폴더’에 있는 살색 동영상을 남몰래 슬쩍 즐기겠단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