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곧 이름이 된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나름대로 살기

기사 요약글

전라북도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 ‘김용택 시인의 생가’

기사 내용

표지판을 따라가니 자그마한 기와집이 호젓하게 서 있었다. 생가는 소박하고 인상적이었다. 여느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기와집에 돌담이 정겨웠다. 마당에는 수선화를 비롯한 봄꽃들이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구석구석을 살피던 중 서재에 걸린 편액에 눈이 고정됐다. ‘회문재(回文齋)’. ‘글이 돌아오는 집’이란 의미가 마치 시인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섬진강의 상쾌한 물소리를 들으며 시를 짓고 있는 시인을 상상하던 중 어린아이의 맑은 웃음을 머금은 시인이 다가와 “편액이 예쁘죠”라며 인사를 건넨다. “예전에 친구들이 ‘관란헌(觀瀾軒)’이란 편액을 달아줬어요. ‘물결을 보는 곳’이란 뜻인데, 회문재가 이 집과 더 잘 어울리지 않나요? 달아놓고 나서 기분이 굉장히 좋았어요. 제가 평생 교직에 몸담았던 덕치초등학교 뒷산이 회문산이라 인연도 있고요.” 그는 1년 전 전주에서 이곳으로 내려왔다.

고향 집에 다시 돌아온 것이 몇 년 만인가요?

아내와 아이들이 1996년엔가 전주로 이사를 했는데, 나는 한동안 어머니도 계시고 학교도 있어서 전주와 고향 집을 오가며 살다가 2008년 퇴직한 해에 전주로 갔어요. 가족들은 20년 만이고, 나는 9년 만에 돌아온 셈이군요.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섬진강으로 여행을 왔다가 이곳에 들러 김용택 시인과 촬영한 인증 사진이 많더군요.

자전거길이고 걷기 코스라 주말에는 사람이 굉장히 많이 오죠. 지나가다 ‘김용택 시인의 집’이란 푯말을 보고 찾아오세요. 집에 있으면 만나게 되죠. 아쉬운 점도 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사진만 그냥 찍고 가버려요. 사찰에 가면 안내판이 있잖아요. 적어도 그 안내판 정도는 읽는 것이 기본이듯, 시인의 집에 왔으면 생각도 좀 해야지 그냥 훑고 지나가는 거죠. ‘인증 사진’이란 묘한 여행 문화가 형성됐어요.
 

평생 고향에서 살았는데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나요?

고향이기도 하고 제 시의 고향이잖아요.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자라서 여기서 평생 선생을 하고 글도 쓰고 글을 써서 유명해지고요. 이름 앞에 감히 지명이 붙는다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요.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 이곳에 살면서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언어가 있어요. 가령 농사짓는 사람들이 자연에게 이야기하면, 그 말을 잘 들었다가 받아쓴 거지요. 그렇게 자연이 말하는 것을 받아쓰고, 자연이 말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니 여기서 계속 사는 거지요.
 

이곳에서 어떻게 보내나요?

주로 강연을 많이 다니고요. 집에 있는 날에는 오전 3~4시 사이에 일어나요.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을 일기로 씁니다. 날이 밝으면 카메라를 들고 산책하러 나갑니다. 1시간 정도 걸으며 자연을 찍고 낮에는 화초도 기르고 텃밭도 가꾸고요. 저녁 8시면 잡니다.
 

자연의 시계에 맞춰 자연을 관찰하며 사는데, 일상의 반복이 지루하지는 않습니까?

자연은 아까 볼 때와 지금 볼 때가 달라요. 신비로운 거지요. ‘저 자연처럼 완성될 수 있는 삶, 볼 때마다 다른 신비로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계속 바라보게 되고요. 자연이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이유겠지요. 자연은 또 모든 것을 받아들여요. 받아들여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어요. 어제와 오늘이 다른 거지요. 안 그러면 재미가 없어요. 인생이라는 것이 재미가 있어야 해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보려고 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시골 생활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전원생활을 고민하는 분들이 많은데 어디서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풀꽃, 새소리, 바람소리… 여기에 살면서 듣고 보고 만지는 모든 것이 너무 좋지만, 도시에서 살 때는 도시가 좋았어요. 시골에서는 행동도 조심해야 하는데, 도시에서는 훨씬 자유롭지요. 도시든 시골이든, 큰 집이든 작은 집이든 나름대로 그곳을 귀하게 가꾸면서 살면 돼요. 그게 사랑이고 애정이지요.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장소는 없어요. 내가 사는 곳을 잘 가꾸면 어디서 살든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어요.
 

 

9년 전 퇴직했는데, 새로운 출발점에 섰을 때 불안감이나 두려움은 없었나요?

살면서 ‘무엇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시인이 되려고 한 적도 없고요. 이렇게 깊은 시골에서 중고등학교 때 뭘 봤겠어요. 스물두 살에 처음 소설책을 봤어요. 뒤늦게 책을 보기 시작해서 글을 쓰게 된 거지요. 내재돼 있던 소년 시절의 감성이 독서를 하면서 드러나게 된 거죠. 다들 도시로 떠나 시골에 친구도 없어 외롭고 고립된 시간을 살았지요. 답답해서 생각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시를 쓰고 있었던 거지요.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면서 살았을 뿐이에요. 교사를 할 땐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좋았고, 작가로 살 땐 글을 쓰는 일이 좋은 거고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인데, 자꾸 뭘 할 것인가를 고민하니까 삶이 불안해져요. 보통 60세에 퇴직을 하니까 50세 무렵에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까’ 하며 굉장한 위기감을 느껴요. 중년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은퇴 이후 최소 20~30년을 살아야 하는데, 이 기간은 새로 인생을 시작해서 뭔가를 이루기에 충분한 시간이에요.
 

나이가 든 후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멀리 있지 않아요. 자기 일에서, 직장에서 찾아야 하는 거지요. 제가 교직에서 은퇴했지만, 선생이 편하면 얼마나 편하겠어요. 말 안 듣는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기가 그렇게 쉽지 않아요. 그러나 저는 내 직장을 싫어해본 적이 없어요. 그 일이 좋아지도록 노력하며 가꾼 겁니다. 노력하면 싫은 일도 점점 좋아져요. 요즘 직장인들 보면 자기 일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침에 일어나기 싫지, 일이 지겹지, 상사도 싫지, 돈도 안 되지…. 먹고살기 위해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마음도 확 늙어요. 싫은 일을 하면서 살면 퇴직하고 나서도 할 일이 없어요. 지금 내가 사는 삶의 내용이 10년 후에 내가 살 내용이거든요.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려고 노력해야 돼요. 좋아하면 일을 열심히 하게 돼요. 열심히 하면 일을 잘하게 되고요. 잘하는 일을 평생 하면서 사는 거지요. 내 일, 내 직장, 내 삶터를 있는 힘을 다해서 행복하게 만드는 겁니다.
 

내 일이 좋아지도록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결국 공부가 희망이에요. 저도 끊임없이 책을 읽었어요. 문학뿐 아니라, 철학, 미술, 역사, 건축 등 여러 공부를 하며 저를 가꾼 거죠. 다양한 공부를 통해서 풍부한 양식을 갖추면 그걸 풀어놓을 수 있게 돼요. 가령 건축을 공부했더니 누군가의 집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삶, 살고 있는 삶, 살아갈 삶이 보여요. 집이란 한 인간의 철학을 담고 있거든요. 이 집을 지을 때도 적용했죠. 이곳은 저와 제 가족의 삶이 기록돼 있는 생가가 주연이고 뒤에 있는 살림집은 조연이에요. 그래서 살림집이 생가보다 드러나지 않게 했죠. 기존에 있던 돌들을 버리지 않고 인근 돌담처럼 촌스럽게 쌓았고요. 집이 도드라지지 않고 마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했죠. 나름대로 알아서 건축한 것이지요.
 

‘나름대로 알아서’가 삶의 철학입니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에요. 교육이란 ‘나름대로 알아서 자기 삶을 잘 가꾸도록 돕는 것’이에요.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내가 알아서 사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죠. 왜 우리가 불행하고 힘드냐? 나름대로 안 살고 저 사람처럼 살고 싶어서 그래요. 강남에 가서 살고 싶고, 성북동 저택에서 살고 싶은 거죠.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인생은 우리와 다를까요? 그 나름대로 힘든 삶을 살아요. 어디서 살든 인간의 모든 문제는 죽기 전에는 해결이 안 돼요. 그런 걸 알면 지금 내 삶이 왜 불행하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가난하게 살라는 것은 아니지요. 나름대로 자기 삶을 가꾸다 보면 형편이 나아져요. 삶의 방식과 방법을 배워서 자기를 귀한 사람으로 가꾸니까요.
 

그렇게 살면 행복이 절로 찾아오겠습니다.

저는 농고를 나왔는데 학창 시절 받았던 최고 점수가 평균 65점이에요. 시험을 볼 때 모르면 남들처럼 찍지 않고 아예 안 썼지요. 그 점수는 내 자존심이었어요. 그러나 한 번도 누구에게 밀린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나 자신이 제일 부러울 뿐이에요.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살아온 삶이 멋지고요. 내 나름대로 사는 거지요.

진메마을을 나서기 전 마을 입구에 적힌 섬진강 시인의 시 ‘농부와 시인’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버님은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집을 지으시고 그 집에 살며
곡식을 가꾸셨다

나는 무엇으로 시를 쓰는가
나도 아버지처럼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시를 쓰고
그 시 속에서 살고 싶다

김용택 시인은 분명, 그 시 속에서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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