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라서 더 폼 나는 삶, 자기만의 방식으로 빛나는 아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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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라서 더 폼 나는 삶, 자기만의 방식으로 빛나는 아재들
 

예선을 거치고 결선의 삶, 화가 이수동


“예전에 배우 손숙 씨가 자기 나이가 너무 좋다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이제 제가 그 나이에 진입하고 보니 그게 맞는 말이라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 전시를 안 하고 그림만 그려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이 팔리고 안 팔리고의 문제를 떠나 제 그림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냥 얻게 된 깨달음은 아니었다. 고백하건대 그는 ‘솔드 아웃 작가’라는 타이틀이 솔직히 부담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숙제 같았다고 했다. 주변에선 ‘인기 작가’라고 치켜세웠지만, 인기를 좇다가는 중요한 걸 놓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그는 질주를 멈추었다. 그리고 가만히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 이외에 다른 것이라곤 없었던 삶이었다. 초기의 화풍은 무겁고 어두웠다. 어느 날 친구가 그림을 사 갔는데 친구의 딸이 그의 작품을 보고 울었다는 말에 작정하고 화풍을 바꾸었다. ‘행복을 그리는 화가’가 되면서 그는 자신의 인생 또한 ‘행복하거나 가만히 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자부해왔다. 작정하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차고 넘치는 삶을 덜어 내는 방향으로 인생은 흘러갔다.

“전시를 덜 하더라도 사람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설령 전보다 곤궁해지더라도 괜찮아요. 저는 차도 없고, 골프도 안 치고, 요리까지 배웠으니 이만하면 사는 데 문제없죠. 저는 아저씨지만 아직도 ‘폼’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오히려 가득 채우지 않았는데도 더 폼 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누구나 지혜로워지지는 않을 터. 그는 젊은 시절 누구보다 다채롭게 살아봤기 때문에 초연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온갖 예선전을 다 거치고 결선에 오르니, 1등을 하고 기록을 잘 내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님을 깨닫게 되는 역설이랄까.

“예선을 거치면서 내 삶에 대한 빅데이터가 많이 쌓였어요. 그래서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어떤 게 소중한지에 대한 판단이 가능하죠. 물론 아련한 청춘의 한 장면이 왜 없겠어요. 그래도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몸의 근육은 비록 쇠했지만, 그 대신 생각의 근육, 마인드의 근육이 단단해졌거든요. 중요한 건 그런 거예요.”

 

 

철들지 않은 남자,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윤대현

“<중년의 발견>이라는 번역서를 보면 인간 생의 전반은 생물학적 2세를 낳는 데 집중하고, 후반은 문화에 집중한다고 돼 있어요. 나이 들면서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심리 변화가 일어나는 거죠. 신체 기능들은 떨어지는 반면 감성은 점점 더 강력해지는 겁니다. 나이 든 어른들이 분노가 많아지는 것도 감성적이어서 그런 거예요. 이 때문에 강력해지는 감성을 자연과 문화를 즐기는 쪽으로 습득하고 발전시키면 젊은 시절의 행복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인생 선배들의 나이 듦에 대한 고민과 하소연을 듣다 보니 인생은 성취감이 다가 아니라는 것, 후반의 나이를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물론 직접적인 계기도 있었다. 7년 전, 소진증후군이 찾아온 것.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이게 뭐지 싶더군요. 약도 먹어보고 했지만, 근본적 문제는 충전 없이 일하는 시스템만 돌리며 산 탓이었어요. 우리 뇌는 일하는 시스템과 충전하는 시스템이 끊임없이 경쟁하는데, 우리는 대체로 일하는 시스템만 돌리며 살고 있죠. 어쩌다 충전 시스템이 더 활발해지려고 하면, 일하는 시스템이 불안을 가중시켜버려요. ‘너 지금 놀면 끝이야’ 하고 말이죠.”

그때부터 그는 충전 시스템을 작동시켜 이른바 ‘취미와의 소개팅’을 시작했다.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으므로,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어 두루 찾아보고 만나보는 과정이 필요했다. 자전거도 타봤다가 수영도 했다가 기타도 배워봤다가, 그렇게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겪고 스트레스도 받아가며 정착하게 된 장르가 바로 수영과 록 밴드 활동이다.

“제가 취미를 권하면 많은 분들이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고 반문하는데, 제 경험상 보면 마음의 우선순위가 문제일 뿐, 절대 시간은 없더라고요. 남자들의 경우 술 마시는 시간만 줄여도 충분할걸요. 저도 취미를 갖게 되면서 술이 줄었고 삶은 더욱 풍성해졌어요. 어릴 땐 알지 못했던 즐거움이죠.”

윤 교수는 자기 나이에 자부심을 갖기 위해서는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 높아야 한다며 의사로서의 충고도 잊지 않았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목적’에서 운동을 하고 젊은 친구들을 사귀는 거라면 그건 자존심에 불과할 뿐, 진짜 자존감은‘너네들의 나이가 절대 부럽지 않아’라는 자세라고 했다.

“나이는 받아들여야 하는 거예요. 생물학적으로 거스를 수 없어요. 다만, 그걸 인정하면서 문화도 즐기고 취미도 갖고 운동도 하다 보면, 자연스레 건강해지고 외모도 젊어지면서 자신만의 경쟁력이 생기는 거죠.”

 

 


 

견고하게 쌓아올린 40대의 찬란함, KBS 아나운서 윤인구

“지금도 마음은 신인 같아요. 그때 그 마음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이젠 회사 막내들을 보면 저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생각하게 돼요.”

일찍부터 예능과 교양을 두루 오가며 오랫동안 스타 아나운서로 살아온 그는 ‘KBS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을 한결같이 지켜내며 자신만의 견고한 자리를 만들어왔다. 지난해 말, 아나운서 대상 시상식에서 받은 ‘대상’의 의미는 맏형으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충실히 해낸 그에게 주는 존경이자 감사의 표시였을 터다. 그는 스스로를 두고 ‘늦된 사람’이라 했다. 의외로 낯가림도 심한 데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마다 워밍업이 필요해 적응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1년 차 방송인으로 살 수 있었던 건 그런 자신을 이해하고 기다려준 좋은 스태프를 만났기 때문이라며 주변에 공을 돌렸다.
 

“방송인으로서 보더라도, 20대 때는 할까 말까 망설이던 말을 30대 때는 용기 내어 할 수 있었고, 40대가 된 후에는 제 삶의 경험들까지 보태 말할 수 있게 됐으니 더욱 풍성해졌죠.”

방송인으로서 또 중년의 남자로서 지금이 빛나는 시기라는 데는 주저함이 없지만, 다만 녹록지 않은 방송 환경에 처한 후배 아나운서들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과 책임감이 교차한다. 얼마 전, 제19대 KBS 아나운서협회장이 된 후 취임사에서‘아나운心’을 이야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저라고 왜 위기가 없었겠어요. 크고 작은 부침도 많이 겪었죠.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저를 버티게 한 힘이었죠. 후배들이 스스로 얼마나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자존감을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저도 옆에서 최선을 다해 도울 거고요.”

지금 자신의 어깨에 놓인 많은 부담마저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며, 무한 긍정을 발산하는 이 남자. 그나저나 자유로운 영혼의 에너지를 요즘은 무엇으로 대체하고 있을까. 대답은 아이들이었다.

“얼마 전 큰아이와 함께 처음으로 동네 목욕탕에 갔는데 기분이 남다르더라고요. 아이들과 그렇게 살을 비비면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감사해요.”

강렬함으로 치자면, 젊은 날의 그 장면들을 따라갈 순 없겠지만, 나와 가족, 나아가 동료들과 시청자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보듬을 줄 아는 지금이 그의 삶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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