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피난 시절부터 시작된 60년 전통의 파육개장 맛집, 부민옥

기사 요약글

1980~90년대는 다동의 전성시대 한때 이 집 손님의 평균연령이 70대라는 설이 있었다. 30, 40년 단골이 아니면 대우도 못 받는다는 말도 있었다. 오십 넘은 나도 슬쩍 들어가서 조용히(?) 먹고 나오는 집이었다. 그러다가 덜컥 <수요미식회>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다. 그 덕에 젊은이들이 조금 보인다.

기사 내용

“방송이 평균연령을 엄청 내려줬지. 하하. 그런데도 젊은 친구들은 들어오려다가 멈칫하더라고.”

 

김승철 사장의 말이다. 그와 건물 이층에 올라간다. 그가 가리키는 다동의 풍경이 보인다. 앞에는 삼성화재 건물이, 그 밑으로는 어색한 도시계획으로 생긴 이도 저도 아닌 길이 애매하게 나 있다. 이 동네의 지형도도 많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다동과 무교동이 갖던 힘이 많이 빠졌지. 예전엔 비어홀에 온갖 식당에 주점까지 참 대단했지. 월급쟁이들 놀이터로 이만한 데가 있었나.”

 

1960~70년대를 다룬 소설을 보면 늘 등장하는 무대가 이곳이다. 월급쟁이들이 누런 서류 봉투를 끼고, 아니면 도시락 가방을 들고 대포에 한잔하던 곳. 김원우의 소설 <무기질 청년>에는 이 동네의 ‘여급’이 나오는 ‘비어홀’이 등장한다. 비어홀은 일본이 도쿄 올림픽을 전후해 호황기를 맞으면서 급격히 늘어난 주점 형태로 그것이 한국에서도 재현되었다. 맥주를 마시기는 하되, 칸막이가 있고 여직원이 시중을 드는 형태였다.

 

다동의 전성시대는 아마도 1980~90년대가 아닌가 한다. 길 건너에 삼성 본사가 있었고, 온갖 은행의 본점과 주요 지점이 근처에 포진했다. 게다가 한다하는 언론사인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스포츠서울의 직원들이 모두 이곳의 손님이었다.

 

“말도 못하게 장사가 잘되었지. 점심 저녁 밀어닥치는 손님으로 가게가 꽉 차 있었어.” 그는 나와 연배가 같아 자연스럽게 말을 놓는다.

 

 

 
 

노장이 된 옛 손님과의 만남

 
 

마침 이층 방에서 어른들이 왁자하다. 정기 모임이다. 한국은행 오비(OB) 모임이다. 청춘을 묻은 동네에서 그들은 은퇴하고도 여전히 만난다. 당연히 추억이 서린 부민옥이다. 가게를 지키는 김승철 사장에게 반말을 툭 던진다. “막내, 잘 지냈어” 아, 이 ‘그림’ 참 대단하다. 이제 노장이 된 옛 손님과 중년의 깊은 자락에 든 옛 가겟집 막내의 만남이다.

 

내게도 부민옥 시절이 있었다. 단골은 아니었지만 양곰탕과 양무침 같은 걸 먹으러 다녔다. 해장에 이만한 게 없었다. 옆집 ‘용금옥’도 갔고, ‘북엇국집’과 ‘내강’이라는 자그마한 비빔밥집도 다녔다. 요즘은 나도 노장(?)이라 방을 차지한 노익장이 없는 홀에서 양무침과 부산찜에 소주 한잔을 마신다.

 

그의 부친 김상희 씨(1923년생. 10년 전 작고)는 이북에서 월남해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 은행원이었다. 아내 송영준 씨(1929년생)를 만나서 부산에서 딸 둘, 서울로 이주해 아들 둘을 낳았다. 서울 이주는 1956년도의 일. 부민옥 간판에 써 있는 개업 연도다.

 

 

 
 

부민옥, 상호에 담긴 의미

 

 

부민옥. 부유할 부(富)에 백성 민(民), 집 옥(屋)이다. 깊은 뜻이 있어 보인다. 그렇게 생각해서 물으면 싱거워진다.

 

“응, 부산 부민동에서 어머니가 장사를 시작했거든.”

 

원래 외할머니가 음식 솜씨가 좋으셨다. 두 분이 부민동에서 밥장사를 했다. 그래서 서울로 온 뒤, 상호를 그리 지었다. 그러니까 이 60여 년 노포는 부산 피난 시절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어머니가 장사 욕심이 많고 외할머니가 솜씨가 있으니 메뉴도 많았어. 삼계탕, 돼지탕 같은 것도 했고. 그게 서울 요식업의 한 유행이기도 했을 거야. 뚝배기로 파는 음식이 아주 많았지. 육개장도 그때의 메뉴였고. 처음엔 음식만 했어. 술집이 아니었지. 점차 직장인들 회식이 많아지면서 술안주가 잘 나갔던 것이지.”

 

그래서 한창때는 삼겹살도 굽고, 주물럭 같은 것도 있었다. 1980~90년대 초반 정도까지 서울 직장인들이 이런 메뉴를 먹었다고 보면 된다.

 

“가스레인지를 탁자에 올리고 철판에 알루미늄포일 깔고 구웠어. 나중에 없앴어. 그 대신 양무침 같은 우리 집의 독보적 메뉴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어. 이걸로 거의 평정을 한 거지.”

 

부산찜도 인기를 끌었다. 해물 있는 거 넣고 부산 피난 시절에 해 먹던 요리다. 원래 이름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부산찜’이라는 멋진 이름을 얻었고, 지금은 주력 메뉴 중 하나다.

 

이때 나이 드신 홀 ‘언니’가 지나가신다. 오래된 직원이 많은 곳이다. 환갑을 훌쩍 넘긴 분들이 흔하다. “근속 기간이 얼마나 되어요” 그 ‘언니’에게 내가 물었다. 언니가 사장에게 편하게 되묻는다.

 

“내가 여기 제일 오래된 건 아니고 홀에서는 두 번째일걸? (사장에게) 왜 뚱보 언니 기억나지? 그 언니가 그때 있었지. 1987년도에 입사했어.”

 

얼추 30년은 되신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주방에도 두 분 계신다.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는 진짜 이모 같은 분들.

 

 

 
 

부민옥의 자부심, 육개장

 

 

이 집의 돈은 안주가 벌어주지만 자부심은 육개장이다. 가게 시작부터 있던 원조 메뉴다. 대파를 넉넉히 넣되, 완전 영남식으로 아주 달지도 않고 시원한 쪽이다. 그는 ‘주방 아주머니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대파를 엄청나게 손질해야 하고, 맑고 시원한 국물을 내기 위해 고기도 잘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염색을 안 하는 이유가 있어. 손님들이 무조건 반말을 하거든. 머리 하야니까 좀 덜해(웃음). 물론 단골들은 다 알지. 어이 작은 사장, 아들내미 이리 와봐! 이러신다고. 크흐."

 

그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술이 식었다. 다시 부민옥의 역사 속 이야기가 천일야화처럼 끝도 없이 이어졌다. 부민옥. 이 독특한 노포의 한 세기를 듣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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