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를 만나고 나서야 사람의 온기가 뭔지 이해하게 됐죠.
SBS 드라마 <대박>의 숙종으로 돌아온 최민수. 언제부턴가 그의 이름 세 글자에서 사람들은 기인(奇人) 내지는 트러블 메이커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덥수룩한 수염에 헝클어진 머리, 가죽 바지와 현란한 그래픽의 셔츠. 겉모습만 놓고 보면 최민수는 분명 ‘센’ 사람이다. 도저히 길들 것 같지 않은 이 남자는 그러나, 일하는 아내를 위해 설거지와 빨래를 자청하는 다정한 남편이고 두 아들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따뜻한 아빠다. 결혼 생각 0%, 한때 무인도에서 원목을 만지며 살아갈 계획을 세웠을 만큼 독특한 최민수를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빠로 꿇어앉힌 사람은 아내 강주은. 하나의 문에 하나의 열쇠만이 맞는 것처럼 서로에게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어버린 이들 부부 이야기.
TV조선의 < 엄마가 뭐길래> 프로그램을 보면 최민수 씨가 부인을 위해 이벤트를 곧잘 준비하더라고요. 그 방송을 통해 가족들의 적나라한 일상이 그대로 노출되던데 어떤 계기로 방송을 결정했어요?
강 우리 가족의 실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남자가 저렇게 센데 혹시 맞고 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시는 분들까지 계셨지만, 우린 정말 화목하거든요. 20년 넘게 꽉 찬 결혼 생활을 했고 식구들 모두 행복해하니 이 정도면 잘못 살진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부부가 소통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데, 우리 부부처럼 이런 말도 안 되는 소통법도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최 집사람이 외동딸이니까, 캐나다에 계신 부모님에게 드리는 선물 차원에서 방송을 한 면도 있어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니까 어떻게 사는지가 잘 보이거든. ‘우리 잘 살고 있어요’라고 애써 얘기하는 건 너무 뻘쭘하잖아.
아내가 화장실 청소로 고생할까 봐 볼일을 앉아서 본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왜 유독 아내 앞에서만 순해지세요?
최난 원래부터 축축한 화장실을 굉장히 싫어해요. 마님이 힘들까 봐 그랬다면 너무 재미없고, 그냥 앉으라고 시켜서 그랬다고 합시다. 사실 남자에게는 고독감, 외로움에 대한 근원적 고민이 있어요. 항상 그 해답을 찾고 싶어 하지. 나는 지루하고 구태의연한 걸 엄청 싫어해. 그래서 항상 노래를 부르든 가죽공예를 하든 뭔가 하면서 해답을 찾고자 하는데 와이프는 항상 현명한 답을 제시해줘요. 그래서 나한텐 신이고 뮤즈이죠. 이 사람 뒤만 쫓아가도 충분히 삶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최민수 씨는 결혼으로 얻은 게 이만큼 많은데 강주은 씨는 어떠세요?
강 전 너무 억울하죠(웃음). 왜 가만히 잘 살고 있는 나를 건드렸을까? 만날 확률이 전혀 없는 사람들인데 (1993년 5월 미스코리아 캐나다 대표로 출전한 강주은은 대회 현장에서 행사 게스트로 초대된 최민수를 처음 만났다). 처음에는 웬 모르는 남자가 저렇게 잘난 척을 하나 싶었어요. 그 후로 며칠 뒤 방송국에서 우연히 재회했는데 만난 지 3시간 만에 청혼하더라고요. <엄마의 바다> 촬영으로 바빴을 텐데 주말마다 캐나다로 찾아와 저희 부모님과 식사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최 그러니까 내가 미쳤지. 난 내가 결혼을 안 할 줄 알았어. 우리 아버지가 결혼을 네 번 해서 엄마가 네 분이잖아요. 솔직히 여자에 관심이 없었어요. 내 머리를 만족시킬 여자를 본 적도 없고. 그냥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 같은 걸 사서 원목 가구나 만들며 살려고 했거든요. 1년에 반 정도 한국 들어와서 영화나 드라마 찍고. 나머지는 원주민들이랑 어울려 살고. 불행하게도(웃음) 내가 22년 전 결혼하면서 지금은 용돈 받으며 살고 있지요.
한 번도 아내에게 실망한 적 없어요?
최 한 번도 없어. 실망할 기회를 안 줘요. 난 단 1초라도 상대가 거짓의 눈빛을 보이면 금방 알아채거든. 그런데 집사람은 어떤 순간에도 거짓이 없어요. 결혼 초기에 “우리가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라 넘어지기도 할 거다, 물론 아프겠지만 그게 고마울 때가 있을 거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유성이 엄마는 그걸 더 폭넓게 해석하더라고요. 남편이고 아빠지만 내 자신을 다 내려놔도 된다는 믿음을 줬어요. 세상이 너를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넌 나의 전부이고 지켜야 할 사람이라는 얘기를 해줘서 고마웠어요. 와이프를 만나고 나서야 사람의 온기가 뭔지 이해하게 됐죠.
두 아들을 두고 있죠. 자식들로부터 ‘아빠는 나의 영웅이다’‘부모님처럼 결혼 생활을 하고 싶다’는 최고의 찬사를 들었어요. 존경받는 부모의 비결이 뭔가요?
강 큰아들이 자신의 어릴 적 성장 비디오를 보고 “아빠, 엄마는 어떻게 내가 아기였을 때나 어른일 때나 나를 대하는 게 똑같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만큼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한 인격체로 존중했어요. ‘우리가 부모니까 무조건 우리 말을 들어야 해.’ 저는 그런 강요를 한 적이 없거든요.
최 나도 그렇지만 애들 엄마도 공부해라, 돈 많이 벌어라 이런 얘긴 절대 안 했어요. 고생은 하겠지만 네가 원하는 걸 해라, 하고 싶은 걸 해야 행복하다, 늘 그런 말을 했죠. 나는 학교를 왜 보내는지도 잘 모르겠어. 진짜 필요한 공부는 사회 경험에서 쌓이는데.
늘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 같은데, 언제 가장 즐거우세요?
최 사람들이 안 하는 걸 할 때가 가장 즐겁지. 내 나이 되면 다들 돈 벌려고, 폼 잡으려고 뭘 하잖아요. 나는 그냥 나를 갖고 노는 게 즐거워. 배고플 때 막 먹다가 귀찮아지면 몸에 밥을 한참 안 주기도 하고. 그렇게 두 달을 굶어봤어.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한번 보는 거지. 술도 그래서 끊었어요. 술을 마시면 신경이 마비되잖아. 그걸 기분 좋다고들 하고. 말인즉 자기를 잃어버릴 때 좋다고 하는 것밖에 더 돼? 뭔가 내가 당하는 느낌이라 자존심 상해서 술도 끊어버렸어. 한 10년이 넘었지? 지금도 1년에 서너 번 비가 올 때나 느낌이 올 때 딱 한 잔 마셔요. 술은 처음 한 잔이 제일 맛있어.
마지막으로‘늙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 나는 그런 게 뭔지 모르겠어. 나는 그냥 나야. 철들지 않고 인생을 살아야 더 재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