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메르스 공포’를 앓고 있다.
한 번 뚫린 방역망의 대가가 엄혹하다. 사태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사태의 후유증을 극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하다. 메르스 사태에서 우리 사회가 깨달아야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인 도법 스님과 박태균 식품의약 전문 칼럼니스트, 소종섭 전<시사저널> 편집국장이 대담을 나눴다.
Q. 그동안 대한민국은 수준 높은 의료 기술과 진료 시스템을 갖춘 의료 선진국으로 불려왔습니다. 그런데 왜 메르스에 어이없이 뚫렸을까요?
박태균
의료 선진국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습니다. 삼성서울병원만 봐도 초일류 병원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번에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누구나 거기서 치료받고 싶어 하고 또 거기서 부모님을 치료받게 하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깨졌어요. 겉은 화려하지만 가장 중요한 감염 관리 면에서 굉장히 많은 허점이 노출되었습니다. 메르스에 뚫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병을 너무 가볍게 봤기 때문이에요. 메르스에 대해 우리는 아직 잘 모릅니다. 잠복기가 정확히 며칠인지, 치사율이 얼마나 되는지 등에 대해 조금씩 밝혀 나가는 과정에 있어요. 당국자들이나 의사들은 설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우리한테까지 올까, 오더라도 큰 피해 없이 적당히 끝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에서도 금방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그 정도는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감염내과 전문가들이 정부에 잘못된 시그널을 준 것이죠.
소종섭
상황이 이렇게 된 바탕에는 관료들의 안이한 인식과 눈치 보기도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관료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모두 위만 바라보며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 시간이 걸려 골든타임을 놓친 것입니다. 이러한 관료 사회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청와대가 권력을 분산 운용하고 인사권 등을 부처에 전면적으로 돌려주는 인사와 행정에서의 쇄신이 필요합니다.
도법
저는 종교인으로서 이번 현상을 보며 두 가지를 느꼈어요. 하나는 개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의 관리능력이 참 허술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정한 힘이라는 것은 절제, 절도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자기 절제라는 측면에서 많이 약하구나 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관리가 잘되더라도 절제가 약하다 보니 지나치게 불안에 휩싸여버리는 것입니다. 국가나 병원이 있다 하더라도 궁극적인 삶의 주체는 자기 자신입니다. 깊이 성찰하고 고민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Q. 메르스가 처음 발병한 것은 2012년으로, 3년이나 지났는데 그에 대한 연구나 우리나라에 유입됐을 경우에 대한 대비책 등이 전혀 논의되지 않았나요?
박태균
했어야 하는데 안 했습니다. 사건 이후 메르스와 관련한 국내 연구 논문을 찾아보니 단 한 편도 없었어요. 사스를 겪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중국에는 관련 논문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만큼 무감각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리와 교류도 하고 있으니 발병 상황이 어떻고, 어떻게 대처했는지 등을 한 번이라도 살펴봤다면 지금처럼 우왕좌왕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스를 이겼다, 에볼라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등으로 과신했던 것이지요.
Q. ‘메르스 공포’가 커진 원인은 무엇일까요?
박태균
잘 관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어느 정도 공포심을 극복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우리 사회가, 정부가, 질병에 대해 잘 관리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이 더 커진 것이지요.
도법
정부가 책임져야 할 단위에서 신뢰를 주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정부가 그러니까 대중은 자연스럽게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평소에 삶을 성찰한다면 개인이나 사회가 차분, 침착, 지혜롭게 해법을 모색해갈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어요. 이것이 바로 사회적 힘이지요. 정부가 잘못한 것만이 전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가 모든 문제를 잘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사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취약한 모습을 드러냈어요. 특히 개인의 성찰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토대가 갖춰져야 사회가 안정적이고 건강하게 갈 수 있다고 봐요. 우리 사회가 삶의 문제에 좀 더 깊이 성찰하고 천착할 필요가 있어요. 지나치게 경쟁 중심으로 달리다 보니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주체적으로, 절도 있게, 균형 있게, 다룰 수 있는 힘이 있어요.
박태균
위기관리 능력도 중요합니다. 위기관리가 안 되면 처음에 시작할 때 허둥대게 됩니다. 골든타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지요. 20년 동안 명성을 쌓은 삼성서울병원이 위기관리가 안 되니 한순간에 위기를 맞지 않았습니까? 위기관리는 타이틀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적인 훈련과 교육이 필요합니다. 어떤 기업, 어떤 단체든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위기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명운이 갈리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소종섭
위기관리에는 3대 원칙이 있어요. 긴급성, 일관성, 개방성입니다. 한마디로 빠르게 대처하고 메시지의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건 삼성이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이런 기초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아 사태가 더욱 커진 측면이 있어요. 위기관리는 사전 예방과 예측력에 바탕을 두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Q. 삼성서울병원의 이름이 늦게 공개되는 등 이와 관련해 관료와 삼성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박태균
의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가 삼성을 너무 믿었다고 봐야지요. 그동안 감염은 중소 병원의 문제였는데 사실은 큰 병원이 더 문제라는 것을 국민이 알게 됐어요. 뚫리면 피해도 더 크지요.
도법
대중이 그동안 믿고 기대했던 곳이 삼성 아니었습니까? 그게 무너지니 불안한 것이지요. 최고가 무너졌으니 갈 데가 없는 것입니다.
소종섭
어떤 경우에는 정부보다 삼성을 더 신뢰하는 듯한 분위기도 있었잖아요. 이번 일을 겪으며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이 무색해졌어요. 이런 현상이 국민의 자신감, 자부심 등을 떨어뜨리는 효과로 파생된 것 같아요. 정부도 그렇고 삼성도 믿을 수 없네 하는 자조감이 퍼지는 것이지요. 국격과 자신감이 함께 하락했다고 볼 수 있어요.
박태균
병원 이름을 공개하느냐 마느냐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만약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삼성이 계속 영업을 했다면 상상하기 힘든 상황까지 맞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이 있는데 메르스 환자가 투숙한 사실이 알려지자 제주도 신라호텔은 아예 호텔을 폐쇄해버렸어요. 한편으로는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적절한 경계를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는 한데 너무 겁을 내지 않나 싶기도 해요.
Q. 이번 사태를 통해 새롭게 부각된 것이 병원 내 감염 문제입니다. 어느 정도 심각하다고 봐야 할까요?
박태균
바이러스는 눈에 안 보여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염될 수 있어요. 이번 사건으로 위험성이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은 위험한 환자들이 오는 곳인데 병상이 바짝 붙어 있어요. 저라도 바로 옆에 호흡기 환자가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요. 감염 위험이 있는 폐렴 환자의 경우는 격리해서 치료해야 합니다. 각종 의료 기기도 소독 등 감염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나라 최고 병원인 삼성서울병원에 음압 병실이 없다는 것은 충격적입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병원 감염이 연 10만 명에 육박합니다. 환자가 응급실 들어가면 보호자도 못 들어가게 하고 격리시키는 식으로 관리하는 데도 그래요.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병원에서 감염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해요.
도법
현대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새로운 문명사적인 성찰과 반성,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시대정신인데 우리는 거기까지 못 가고 있어요. 이 점을 깊이 있게 짚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많이 나오는 것이 대체의학 이야기입니다. 병균을 감당해낼 수 있도록 일상 속에서 면역력을 길러 체질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길러 내지 않으면 비슷한 상황이 계속될 것입니다.
Q. 메르스 사태는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십니까?
박태균
종식이라는 표현은 세계보건기구에서 마지막 환자가 0이 됐을 때부터 두 번의 잠복기가 끝나는 시기로 봅니다. 약 한 달 정도지요. 그러니까 6월 말 마지막 환자가 발생한다고 하면 7월 말에 종식된다고 보면 됩니다. 100% 자신은 할 수 없지만 장마가 오면 외부 환경에서는 바이러스가 오래 살기 어렵습니다. 묻어 있는 것을 씻어 내는 효과가 있다고 할까요. 바이러스 자체가 활성이 떨어져요. 그러니 가을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의료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삼성서울병원이 생긴 지 20년이 됐는데 이렇게 타격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병원 내 감염 문제는 좋은 교훈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되는 분들을 구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처럼 반복한다면 새로운 바이러스가 와서 또 경종을 울릴 테니까요.
도법
경험으로 보면 이런 상황이 일상화할 가능성이 있어요. 종합적으로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지 않다 보니 이쪽 보면 저쪽을 놓치는 식입니다. 현상만 다를 뿐이지 늘 존재하는 문제예요. 또 다른 형태의 변화된 문제라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9・11 테러를 보세요. 막강한 공권력과 방어력이 있으면 평화는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깨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함께 살아야 할 동반자입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편을 만들고 적을 제거하면 우리는 괜찮다는 것은 잘못된 세계관이에요. 그렇다면 어떻게 새롭게 할 것인가? 첫째, 인간이 지켜야 할 금도가 있습니다. 특히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그렇지요. 해도 괜찮은 일이 있고 정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넘어서고 있어요. 성찰을 통해 다시 깨달아야 할 것은 자연의 가치입니다. 어떻게 자연과 함께할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악순환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둘째는 식생활, 몸생활입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육식을 많이 하고 있어요. 육식은 여러 가지 음식 중 한 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식처럼 되고 있어요. 육식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중 하나 정도로 해야 합니다. 몸생활과 관련해서는 몸을 써야 신체적, 정신적, 전인적 인격이 형성되고 그런 삶이 가능해집니다. 지금은 몸 대신 눈이나 손, 머리를 씁니다. 균형이 파괴되고 있어요.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삶의 방식과 문화를 바꿔야 앞으로 이와 비슷한 상황을 다루는 데 힘이 될 것입니다.
박태균
중요한 말씀입니다. 대부분 질병이 인수공통 질병입니다. 사람도 걸리지만 동물도 걸려요. 환경오염, 산림 파괴 등으로 인해 동물들의 먹거리가 없어지다 보니 동물들이 자꾸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옵니다. 접촉이 많아지는 것이지요. 원래 사람과 동물 사이에는 뛰어넘기 힘든 벽이 있었습니다. 종간 장벽이 높았어요. 이것이 지금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도시화, 환경 파괴 등등 때문이지요. 이번 일을 계기로 인수공통 전염병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전염병에도 성골, 진골, 육두품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골은 말 그대로 신종입니다. 메르스 같은 것이지요. 온 국민이 불안해합니다. 결핵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습니까? 그런데 결핵 때문에 밖에 못 나가는 사람이 있나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과도한 측면이 있어요. 이번 일을 보면서 천연두(두창), 탄저균 등이 생물 무기화되어 퍼진다면 그 공포심이 나라를 마비시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이러스 테러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도 메르스 사태가 주는 한 교훈입니다.
도법 스님
남원 실상사 주지, 귀농전문학교 교장, 생명평화 탁발순례단 단장을 지냈다. 환경과 생명 살리기에 헌신하고 있으며 현재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망설일 것 없네 당장 부처로 살게나><지금 당장,><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등이 있다.
박태균
식품의약 칼럼니스트. 서울대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회장이다. 저서로 <먹으면 좋은 음식 먹어야 사는 음식><100% 신종플루 예방법> 등이 있다.
소종섭
고려대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 기자,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지냈다. TV조선, 채널 A, MBN 등에 출연하며 시사평론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권력의 민낯><백제의 혼 부여의 얼><누가 내게 길을 묻는다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