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나전성기재단

PROBLEM & SOLUTION 위기 탈출 손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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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절대로 네 애들 안 봐준다.” 혹시 결혼을 앞둔 자녀에게 미리 선전포고를 하고 있진 않은가?

지금 이 시각 백일 된 손자를 등에 엎고 허리를 두들기는 김 여사도, 나이 환갑에 돌잡이 손녀를 쫓아다니며 이유식을 떠먹이는 박 선생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2012년 서울시가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서울 거주 60대 이상이 가장 기피하고 싶은 노후 생활로 ‘손주 양육’을 꼽았을 정도. 그러나 핏덩어리를 껴안고 출근할 날을 세고 있는 딸, 며느리를 보면 그 철벽 같은 마음이 금방 무너져 내린다. ‘그만두고 살림이나 하거라’ 하는 배짱을 부리자니 외벌이의 고충이 너무 크고, 한 달에 150만원이 넘는 베이비시터를 쓰게 놔두자니 내 속이 더 쓰리다. 뾰족한 수가 없으니 결국 내가 짊어지고 갈 수밖에. 그렇게 ‘마지못해’ 황혼 육아에 돌입하는 집이 무려 250만 가구다. 오죽하면 한 온라인 서점에서 발표한 60대 이상, 베스트셀러 도서 순위 중 10위 안에 육아 서적이 3권이나 올라 있었겠는가. ‘잘 접히고 잘 펴지는’ 유모차, 색깔로 적정 온도를 표시하는 젖병, 허리 굽히지 않고 아이를 씻길 수 있는 무릎 보호 매트 등 ‘시니어 친화적인’ 유아용품이 쏟아지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아무리 너나없이 손주를 돌보는 세상이라지만 ‘노세~ 노세~ 이제 좀 놀아보세~’ 해야 할 나이에 집에 틀어박혀 하루 평균 9시간씩 아이를 돌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뼈 빠지게 제 새끼 돌봐줬더니 고마운 줄도 모르고 ‘이런 거 먹이지 말라’며 타박을 하질 않나, 애 보느라 계모임 ‘왕따’가 되질 않나. 안 그래도 아픈 허리와 팔목은 점점 더 고질병이 돼가는 중이니 가끔 누구 좋으라고 이 짓을 하나 싶다. 육아 스트레스를 겪다 둘째를 임신한 며느리에게 수면제를 먹여 사망하게 한 시어머니가 등장했을 만큼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오죽하면 국립국어원이 ‘손주병’이라는 신조어를 다 만들어 냈을까. 과연 적극적으로 상황을 개선해나가는 50+는 그중 얼마나 될까? 대부분 ‘남들도 으레 그렇게 살겠거니’ ‘이 또한 지나가리니’ 하며 하루하루 벙어리 냉가슴 앓듯 살진 않는지.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작은 시도가 묵직한 변화를 일궈낼 수 있으니 ‘어머머 이거 내 얘기잖아’ 싶은 다음의 사례와 해결책을 눈여겨보자.

 

 

“나는 그렇게 안 키웠다”

아들보다 연봉을 족히 두 배는 더 받는 능력 있는 며느리를 둔 덕(?)에 손자는 당연히 내 차지가 됐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예쁜 내 새끼인데 어련히 잘 챙겨 먹일까 싶지만 며느리는‘이유식에 간이 들어가면 안 된다. 유기농 설탕만 써야 한다’며 이상한 고집을 부린다. 우리 애들은 놀이터 흙을 퍼 먹고 컸어도 이렇게 건강하고만. 하여간 유난이다. “어머님 때와 달라요”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는데 그놈의‘기응환’ 때문에 사단이 나고 말았다. 소파에서 굴러떨어진 아이가 하도 울어서 겁이나 기응환을 사다 먹였더니 며느리는 제 새끼한테 무슨 사약을 갖다 먹인 것처럼 화를 낸다. 육아책에 써 있길 그건 신경안정제나 마찬가지라면서. 중학교 동창 하나가 아이 손을 따줬다 며느리랑 대판 싸웠다기에 내심 둘 다 못난 사람 취급을 했는데 막상 내가 무안을 당하고 보니 황당하다.
 

→ 문제는 양육 방식의 차이 :요즘 방식도 인정하고 양육 분담도 해라

‘옛날엔 다 그렇게 했다’는 말이 신세대 며느리, 딸의 귀에 ‘조상의 지혜’로 들리길 바란다면 그건 욕심이다. 그들은 활자화된 정보, 권위 있는 의사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인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내 육아 방식이 최선이라고 볼 수도 없다. 밥을 씹어 먹이거나 아이의 입을 행주로 닦아주던 시어머니가 어느 날 며느리의 손에 이끌려 소아과를 찾았다. 그런데 이 고얀 것이 의사 앞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위생 관념으로 지적하는 게 아니겠는가. 잠시 당황했던 시어머니는 곧 전의(?)를 되찾고 ‘우리 땐 다 그랬다’를 굽히지 않았고 의사는 딱 한마디만 했다. “그래서 그때는 한 집 걸러 하나씩 애들이 죽어 나갔죠.” 그날 이후 시어머니의 태도는 180도 변했다. 이 웃지 못할 실화에 답이 있다. 반드시 내 방식이 옳다는 생각은 버릴 것, ‘젊은 사람들의 육아 방식’을 색안경 끼고 바라볼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요즘은 TV나 책 등을 통해 육아 전문가나 의사의 정확한 해법을 들을 기회가 많아졌고, 이를 열린 마음으로 듣다 보면 꽤 설득력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때론 유난이다 싶은 정보가 있어도 ‘제 새끼 위하는 마음이겠거니’ 생각하면 속 편하다. 또 하나는 양육을 분담하는 편이 좋다. 황혼 육아를 하다 보면 음식, 교육, 수면 시간, 놀이 방식 등에서 아이 부모와 조부모가 부딪힐 가능성이 많은데 전문가들은 이때 식사, 취침 등 생활적인 면은 조부모가 맡고, 교육은 아이 부모가 맡는 식으로 역할을 나누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줄어든다고 조언한다. 이때는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철저하게 나눠 서로 영역 다툼하는 일을 최소화하는 게 좋다. 기억하자. ‘분업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도 ‘평화협정’에 꽤 도움이 된다.

 

 

“아이고 허리야”

‘뭐든 때가 있다’는 말은 생각할수록 명언이다. 젊을 때는 그 무거운 항아리를 번쩍번쩍 들어 올려도 너끈하더니 이제는 고작 7~8kg밖에 안 나가는 손자 때문에 온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을 지경이다. 허리디스크에 무릎관절염에 터널증후군에 팔다리 저림까지. 아이를 목욕시키다 팔목이 시큰거려 놓칠 뻔했을 때는 식은땀이 뻘뻘 났다. 남편이고 애들한테 매번 앓는 소리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괜찮은 척하자니 몸이 견디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다.
 

→ 문제는 만성 통증 :관리해서 예방하자

2003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팀이 4년간 일주일에 9시간 이상 손주를 돌본 60세 전후 노인 1만3392명을 조사한 결과 손주를 돌보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심장병 발병률이 55%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쇠약해진 데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감이 쌓이니 쉽게 병이 생기는 것이다.

당부하건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건강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온몸에 간과하기 힘든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면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는 방법을 추천한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말년에 맨날 앓는 소리를 할 수도 있다. 아직 팔팔하게 손자를 돌보고 있다면 장래의 ‘질환’에 대비해 스스로 건강관리에 힘쓰자.

 

 

“우울증 초기일까 겁난다”

평생 부산에서만 살던 내가 일산 딸네 집으로 원정 육아를 왔다. 덕분에 애들 아빠는 ‘홀아비 신세’로 전락했고, ‘안주인’을 잃은 집안은 점점 망가져가는 중이다. 따지고 보니 몸은 일산에 있어도 마음은 부산에 내려가 있는 ‘이 짓’을 벌써 6개월째 하는 중이다. 밖에 나가봐야 아는 사람이 있나 자유롭게 구경을 다닐 수 있나 거짓말 조금 더 보태 ‘철창 없는 감옥’에 살고 있는 셈인데 아무리 손자가 예뻐도 점점 ‘노동’이 되는 삶에 실증이 난다. 늘 2, 3차는 기본으로 달리던 내가 모든 사교 활동을 끊고 집에서 아이만 보고 있자니 여간 우울한 게 아니다. 특히 ‘카스’에 산악회며 여고 동창들의 모임 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알 수 없는 소외감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렸을 딸, 사위한테 미주알고주알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얼마 전부터는 괜히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울적해지는 게 우울증 초기 증상이 아닌지 겁이 난다.
 

→ 문제는 육아 우울증 :불만의 원인을 찾고 변화를 주자

혹시 식욕이 떨어졌는가? 잠이 오질 않는가?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시소를 타듯 하는가? 그렇다면 육아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땐 병 키우지 말고 얼른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우울증 진단을 받을 정도가 아니라면 약간의 배려와 변화만으로도 ‘속병’을 치유할 길은 얼마든지 있다. 일단 불만의 포인트를 찾아라. 그것이 고마운 줄 모르는 자식 때문인지 애한테 묶여 강제 왕따가 됐기 때문인지, 밤낮이 바뀐 손자 때문인지 말이다. 물론 복합적으로 작용한 면이 크겠지만 그래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한 가지를 찾아 여기에 변화를 주자. 예컨대 아이가 자는 시간에 의식적으로 잠을 청해 육체 피로를 최소화한다던가 짬을 내 친구들에게 전화나 카톡을 하는 방법으로 소외됐다는 느낌을 줄이는 것이다. 물론 가족의 이해와 합의가 필요한 영역도 있다. 일찍 퇴근해 저녁 시간에 온전히 쉴 수 있게 해주거나 ‘따뜻한 말 한마디’로 고된 노고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일은 자식의마음 씀씀이에 달렸다. 미리미리 신경 써주면 좋으련만 영 눈치가 없다면 자식들과 상의해 명확한 질서를 만드는 게 좋다. 둘째 주 주말은 ‘무조건 쉬는 날’이라는 식의 ‘예측 가능한 휴일’을 만들어놓으면 적어도 하루하루를 힘이 될 ‘즐거운 계획’을 세울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불평불만을 속으로만 삭이면 알아주는 사람도 없거니와 달라질 것도 없다.

 

 

“쥐꼬리만 한 월급, 섭섭하네요”

마트에서 일하는 내 친구는 한 달에 100만원을 받는다. 장례식장 도우미 알바를 하는 우리 언니도 150만원이나 받는다. 애 봐주는 나는? 월 50만원을 받는다. 그나마도 아이 과자값, 손주들 용돈을 주고 나면 땡이다. 돈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 ‘이 시간에 나가서 다른 일을 찾으면 최소한 얼마는 받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몸도 마음도 자유롭겠지?

→ 문제는 노동의 대가에 대한 불만족 :임금 인상을 요구하라

입주 베이비시터의 한 달 월급은 150~200만원선. 그들과 동일한(?) 업무를 맡고 있는 어머님들은 한 달 평균 얼마를 받을까? ‘2012년 전국 보육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적인 평균은 월 25만원 정도. 그러나 육아 커뮤니티에 올라온 관련 글로 미루어볼 때 대체로 50만원 전후의 용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 기자의 지인들도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에게 감사의 뜻으로 월 50~70만원 정도를 드리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하루 평균 9시간 정도 손주를 돌보고 있으니 월 100만원을 받는다 쳐도 시급 5천원을 조금 웃도는 정도. 이 쥐꼬리만 한 보수를 보고도 ‘민망해서’ 또는 ‘부모니까’ 그냥 감내하고 말 텐가? 불만이 없다면 몰라도 ‘짜도 너무 짜다’며 내심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임금 협상에 도전해보자. 자식들은 ‘희생이 아닌 노동’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만일 강남구, 서초구에 거주한다면 ‘손주 돌보미’ 제도를 눈여겨보자. 만 80세 이하 할머니가 일하는 며느리를 대신해 손주 둘을 키울 경우 막내가 만 15개월이 채 안 됐다면 최대 24만원까지 양육비를 받을 수 있다. 25시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이를 듣고 나면 다른 집의 방문 돌보미로도 활동할 수 있으니 도전할 만하다.

문의 :강남구 건강가정지원센터 02-3412-2222, 서초구 건강가정지원센터 02-576-2852

 

 

'황혼 육아' 중 흔히 나타나는 질병과 그 예방법(아래 텍스트 참조)


허리

누워 있는 아이를 번쩍 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아기 체중의 10~15배 충격이 허리에 가해진다. 전문가들은 무릎을 구부려 몸을 낮춘 뒤 아이를 가슴에 밀착시키고 안아 올리는 방법을 추천한다. 무거운 아기를 장시간 안고 있는 건 척추에 악영향을 주므로 가급적 뒤로 업는 방법을 추천한다.

무릎

욕실 바닥은 미끄러우니 반드시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고, 아기를 목욕 시킬 때는 공중목욕탕에서 쓰는 작은 의자에 앉아 무릎관절에 부담을 덜자.

손목

평소 스트레칭으로 뻐근한 손목을 풀어주고, 혹시 통증이 느껴진다면 따뜻한 수건이나 핫 팩을 이용해 찜질을 하자. 주먹을 쥐기 힘들 정도라면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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