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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철도 타고 떠나는 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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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으로 여행을 떠나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혼자가 되고 싶을 때마다 바다는 습관처럼 떠오르는 비상약과도 같다. 공항철도를 타고 우선 영종도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시원한 인천 앞바다가 코앞이다. 이야기가 이어지듯 발걸음은 영종도와 용유도로, 다시 잠진도와 무의도 그리고 실미도까지 가닿았다. 공항철도. 참 쉬운 여행법.

공항철도를 타고 늘 공항에 갔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하지만 이번엔 공항철도를 타고 섬으로 가는 길, 해외출장을 가던 길과 똑같은 풍경에 묘하게 설렌다. 영종대교를 건너고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 사이에서 카메라 하나를 들고 가뿐하게 여행을 시작해본다. 공항철도의 마지막 종착역은 인천국제공항이 아닌 용유역. 그곳에서 채 1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거잠포 선착장이 있다. 그곳부터 시내버스가 양쪽으로 파란 바닷길을 달려 잠진도로 이끈다. 이렇게 조금씩 육지와 멀어지며 더 깊숙한 바다로 들어간다. 잠진도에서 무의도로 향하는 배에 오르니 승용차들 사이에 번호도 없는 마을버스가 있다. 낯선 모습에 호기심이 일어 물어보니 어차피 섬 안에서만 운행하는 버스인데 번호가 있어 뭐하냐는 답이 돌아온다. 그 말이 맞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길에도 나가는 길에도 하나의 선착장 밖에 없는 것을. 다음 역이 바로 인천 앞바다인 것을.

 

섬 전체가 하나의 휴양지, 무의도

인천공항이 있는 용유도 곁엔 사계절 섬 전체에서 테마 관광이 가능한 무의도가 있다. 무의도 위쪽에는 실미도가 있고 아래로는 소무의도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전국 20대 우수 해수욕장 중 하나로 선정된 하나개 해수욕장이 있는 무의도는 도심과 멀지 않아 항상 사랑받는 해변이다. 서해안답게 갯벌체험이 가능하고 잔잔한 바다에서 해수욕도 즐길 수 있다. 큰 무리 선착장에서 시작해 가벼운 트레킹도 즐길 수 있다는 말에 늦가을 오후의 햇살 아래를 기분 좋게 걸어보았다. 자연생태 관찰로를 지나 하나개 해수욕장과 드라마 촬영장을 지나며 걷는 길.

하늘은 높고 물이 멀리 달아난 바닷가 모래사장에는 갈매기들이 모여들었다. 246미터의 호룡곡산과 236미터의 국사봉을 품고 있는 무의도는 고래바위, 부처바위 등 괴암절벽의 비경도 가지고 있어 등산객들도 꾸준히 찾아온다. 북적이는 여름철 피서객들과 함께 처음 만났던 무의도와는 전혀 다른 차분한 모습이 오히려 반가웠다. 뱃사람들이 고기잡이를 하다 해무 사이로 바라보면 섬의 모습이 마치 장군복을 입고 춤을 추는 것 같아 보였다는 무의도. 하얗게 눈이 내린 무의도의 풍경이야말로 아름다운 무녀 같지 않을까. 겨울에 다시 이 섬을 찾아올 이유가 생겼다.

INFO. 무의도 트레킹 코스

호룡곡산과 국사봉 두 개의 봉우리를 모두 조망할 수 있어 더욱 장관인 무의도 트레킹. 고래바위와 마당바위, 부처바위를 지나 정상에 오르면 인천국제공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서해안 위로 금빛 낙조를 만날 수도 있다. 큰무리 선착장-국사봉-구름다리-호룡곡산-하나개해수욕장의 순서가 가장 무난하다.

 

또 다른 바닷길, 실미도

무의도에는 크게 두 곳의 해수욕장이 있다. 하나개 해수욕장과 실미도와 맞닿아 있는 실미 해수욕장이다. 하루 두 번 썰물 때가 되면 갯벌로 연결되어 실미도까지 걸어 갈 수 있다. 사실 실미도는 섬 대부분이 해발 80미터 이하의 야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쉬어갈만한 평온한 휴양지를 떠올리면 조금 곤란하다. 그저 물때에 맞춰 실미해수욕장을 끼고 호젓한 산책을 즐긴다고 생각하면 딱 좋을 거리이다.

천만 영화에 기록된<실미도>라는 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지 어쩌면 이곳은 그저 무의도에 딸린 조그만 섬에 불과했다. 하지만 소설을 토대로 제작된 한 편의 영화로 실미도라는 이름은 이제 널리 알려졌다. 마침 실미 해수욕장에 도착한 시간은 썰물 때. 바다가 실미도로 향하는 길을 내어준 고마운 시간이다. 영화 속 내용을 떠올리지 않는다고 해도 실미도로 걸어 들어가는 길은 충분히 쓸쓸했다. 여름이 아닌 다른 계절에 바다를 찾는 이에겐 너무나도 적격인 고즈넉한 바닷가의 풍경. 어느 새 10년도 훌쩍 지나버린 빛바랜 영화 포스터도 실미도 풍경의 한 부분이 되어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좋다. 적당한 바람과 쓸쓸함이 전해주는 여유. 바다가 내어준 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실미도 여행은 충분하다.

TIP. 영화 속 진실

1968년 북한의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한 반격으로 중앙정보부가 창설한 북파부대원이 실제로 지옥훈련을 했던 실미도. 배동호의 소설<실미도>가 발표되고 이 소설을 토대로 각색한 영화<실미도>를 통해 이 섬의 아픈 역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보다 좋을 필요는 없다. 소무의도

잠진도에서 배를 타고 무의도로 들어오는 길에서 만난 번호도 없던 마을버스의 마지막 정거장은 바로 광명항이었다. 광명항은 소무의로 들어가는 인도교 옆에 위치한 항으로 자그마한 규모의 조용한 항이다. 광명항에 도착하자 다리 너머 소무의도가 뜻밖의 선물처럼 연결되어 있다. 적당히 북적거리는 광명항의 흥겨움과 한낮의 햇살곁,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너무나도 깨끗한 섬 하나가 내려앉아 있었다. 섬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찾아온 길. 그러나 박물관을 찾기도 전, 섬의 입구에서 자연의 쾌청한 조화 앞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300여 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 면적은 작지만 살림살이가 부유하기로 알려진 섬이었다는 소무의도. 그곳으로 향하는 인도교를 건넌다는 것은‘무의바다 누리길’을 걷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총 8개의 구간으로 되어 있는 무의바다 누리길. 구간은 꽤 많아 보이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다. 마을의 골목은 키 작은 담들이 모여 아기자기함을 더했다. 무의바다 누리길 중간에 만나는 몽여 해변길에서‘섬 이야기 박물관’과 마주쳤다. 해변을 마주 본 박물관은 소무의도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박물관은 그 이름처럼 섬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평일이지만 무의바다 누리길을 오가는 이들이 꽤 많았다. 이렇게 보물 같은 트레킹 코스가 공항 곁에 있었다니. 더군다나 카메라에 담은 섬 주변의 바다 빛깔은 서해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이 깊고 푸르렀다. 소무의도에 숨겨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어느새 해도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섬 이야기 박물관’이 들려주는 소무의도의 세 가지 풍경

  1. 백범 김구, 소무의도를 찾다 : 부유했던 소무의도는 일제 강점기 독립자금을 많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6년 11월경 백범 김구 선생이 방문해 무의초등학교 분교 막사 앞에서 시국강연회를 개최했다. 비록 육지와 떨어져 있는 곳에 살고 있지만 독립을 향한 섬 주민들의 열정은 어느 곳보다 뜨거웠다고 전해진다.
  2. 문학작품 속 소무의도 : 함세덕의 희극작품‘무의도 기행’의 배경이 되었던 곳, 소무의도. 1938년 17세의 어린소년인‘천명’. 그의 고달픈 삶과 절망적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식민지 시대 무의도 사람들의 슬픈 현실을 여실히 담아냈다.
  3. ‘떼무리’가 진짜 이름이었던 시절 : 조선 말기에 간행된‘조선지리지’에 소무의도는‘떼무리’라는 이름으로 기록된다. 바로 옆대 무의도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면 본섬 일부가 떨어져 나가 생긴 섬이거나‘대나무로 엮어 만든 배’만 하다고 여겨져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그렇지만 지금은 소무의도가 정확한 지명이다.

 

가끔은 이런 하루, 용유도

소무의도를 걷고 들어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다시 인천공항이 있는 용유도로 향했다. 용유도 또한 왕산과 을왕리, 마시안 해변 등 아름다운 해안선을 가지고 있는 섬이다. 아무래도 배를 타지 않고 드라이브가 가능하기 때문에 안쪽의 섬들에 비하면 데이트 코스로 가볍게 오가는 이들이 많은 편이다. 다시 용유도로 돌아오니 마시안 해변에 황금빛 석양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오후 5시, 싱싱한 해산물보단 따뜻한 커피가 더욱 잘 어울리는 시간. 해변을 스크린처럼 두르고 있는 바닷가의 한 카페는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조금 더 추워지기 전에 테라스에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마지막 한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들고 테라스에 앉아 좁은 시야로는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서해의 무수한 섬들을 상상해 본다.

저 황금빛 바다 너머 자월도와 덕적도 그리고 굴업도가 있을 것이다. 떠나면 그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쉽게 길을 나서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실제 거리보다 훨씬 멀다고 느끼는 마음의 거리 때문은 아니었을지. 매일 타고 오르는 지하철에서 노선만 바꿔 탔을 뿐인데 오늘 하루는 전혀 다른 곳을 여행한 기분이 들었다. 공항철도를 타고 다시 집으로 오는 길, 지하철에서 퇴근하는 사람들과 맞물렸다. 참 즉흥적이었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인천의 작은 섬들과의 만남. 소설가 구보씨가 경성의 거리를 하염없이 걷듯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던 인천 앞바다의 섬들. 그래 가끔은 이런 하루조차 보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INFO. AREX STAMP TOUR

공항철도 타고 떠나는 스탬프 투어가 국내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열리고 있다. 스탬프 투어 장소에 비치되어 있는 리플릿을 수령해 투어 장소에 방문 후 인증샷 촬영을 하며 여행을 즐긴다. 안내센터에서 확인 후 받은 스탬프 5개 이상을 모아 성공 스탬프를 찍으면 기념품을 수령할 수 있다. 기념품 수령은 서울역 공항철도 지하 2층이며 자세한 내용은 트래블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T. 02-364-0211

 

자기부상 열차타고 바다로

한국에도 자기부상열차를 타볼 수 있는 구간이 생겼다. 바로 인천국제공항에서 용유까지 총 6개 역의 구간. 운임 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편도 12분으로 편리하게 이용이 가능하다. 공항철도 인천국제공항역에서 하차 후 교통 센터 2층으로 가면 이용할 수 있다.

 

공항 가는 길, 시크릿 촬영지

언젠가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붉은 갯벌 같은 특이한 광경을 보았다.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간 풍경이라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리고 처음으로‘여행’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공항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게 된 오늘, 그곳이 운염도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달려보지 않았을 것만 같은 길을 구불구불 따라 운염도로 향했다. 이대로 계속 가도 되는 것일까. 해 질 녘 한적한 바닷가엔 가끔 공항철도가 오갈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공항버스에서 보았던 붉은 습지는 착각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쯤 거짓말처럼 칠면초 군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전체가 녹색인 칠면초도 있고 아래는 녹색, 위에는 붉은 색인 칠면초도 있다. 칠면초 군락 곁에는 물기 없이 쩍쩍 갈라진 뻘흙이 아직 채 덜 마른 바닷물과 함께 하늘을 떠받들고 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거대한 붉은 융단을 깔아놓은 듯 신비로운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한 채 한참을 서 있었다.

푸르지도 붉지도 탁하지도 않은 오묘한 빛깔이 신비한 기운을 전해주는 곳. 순천도 아닌 인천에서 만난 이 낯선 풍경이 좋다. 하늘, 칠면초, 바다, 뻘흙. 몇 가지의 자연 이외에는 시야를 거스르는 게 아무것도 없는 이 단순한 자연이 좋다. 다시 공항으로 가는 그 어떤 날, 운염도의 이 신비한 광경을 다시 보기 위해 창가 곁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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